그린 한반도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와 남북 공동방역
바이러스는 오늘도
남북을 넘나든다
남북을 넘나드는 공통의 보건·환경 이슈를 통해 한반도 생명공동체의 중요성과 과제를 점검한다.
2021년 하반기와 2022년 초 대한민국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심각하게 진행 중이다. 2021년에는 강원도 고성, 인제, 홍천에서 사육 중인 집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이하 ASF)이 발생했고, 최근에는 영월 등 강원 남부지역, 충청북도 제천, 단양 등 일부 지역의 야생멧돼지에서 ASF가 확인됐다. 2019년 9월 발병 이후 살처분 등으로 약 3,000억 원의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양돈 사육 조건이 갈수록 엄격해지는 간접적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 전국의 양돈농가들은 질병관리 차원에서 소위 ‘8대 방역 조치’를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돼지를 키울 수 있는 상태로 변해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9년 9월 경기도 파주지역에서 첫 ASF 발생 보고 이후 ASF 중점관리지구인 경기도 북부, 강원도 북부 지역에서만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던 양돈농장 8대 방역시설 의무화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즉 ASF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셈이다.
1) 양돈장 8대 방역시설 의무화 조치: ①양돈장 입구에 외부울타리 설치 ②축사 입구에 내부울타리 설치, ③입출하대 설치 ④방역실 설치·운영 ⑤축사 입구 전실 설치 ⑥물품반입시설 설치·운영 ⑦방조망·방충망 설치 ⑧냉장 또는 냉동기능을 갖춘 폐사축(축산폐기물) 보관시설 설치
아프리카의 풍토병이 한반도로 오기까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질병 전파를 왜 막지 못했을까? 북한의 ASF 바이러스가 왜 남한으로 넘어 왔을까? 이는 지난 4~5년여 동안의 ASF 바이러스 전파경로를 추적해 보면 알 수 있다. ASF는 급성열성전염병으로, 발병하면 초기에는 70~100% 폐사를 일으키는 질병이나 소독약으로 전파를 막을 수 있다. 100여 년 전에는 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하여 그 지역의 풍토 병으로 진행되는 질병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유럽을 거쳐 러시아 서부 조지아지역, 그리고 2017~2018년에 러시아 연해주 극동지역에 전파되고, 이어 중국, 북한, 한국 등 동북아시아에 전파된 것으로 판단된다.
2018년 상반기에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ASF 유사질병이 발생하여 여러 양돈장에서 다수의 폐사돈이 발생했고, 살처분 또는 집단 매립했다는 등의 소문이 임상수의사들 사이에서 무성했다. 2018년 봄에는 중국 일부 지역 양돈장에서 괴질, 즉 ASF가 발생했다는 자강도 내 1개 농장에서만 ASF가 발생했다고 주장했 비공식적인 소문이 일었다. 공식적인 최초 발생 보고는 지난 2018년 8월이었다. 중국 방역 당국이 랴오닝성 소재 양돈장에서 ASF가 발생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 시기에 필자를 비롯한 한국의 임상수의사들 몇 명이 농림축산식품부 방역 담당에 건의하여 ASF가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갈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에도 전파될 것이라는 경고도 보내고, 이에 대한 대처를 주문했다. 특히 북한에는 ASF 진단장비나 소독시설 등이 열악하여 이에 대한 지원을 건의했다. 아울러 대한한돈협회에도 주의를 갖고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랴오닝성 소규모 농장에서의 발생 보고였고, 북한에서의 발생 보고는 없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더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2019년 2월, 북한 당국이 국제수역사무국에 자강도 소재 양돈장에서 ASF가 발생했다고 공식 보고했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노동신문에 양돈질병에 잘 대처해야 한다는 사설이 게재되는 등 북한 자강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등에서 ASF 발생으로 보이는 여러 징후가 있었다.
2019년 2월 말경 필자를 비롯한 양돈수의사들과 대한한돈협회 관계자,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로 구성된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ASF가 전파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이것을 막기 위해 남북 공동방역이 필요하고, 북한에 부족한 소독약과 질병 진단장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차적으로 시급한 소독약을 북한측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대북 지원은 성사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아쉬운 결정이었다. 이로부터 불과 7개월 뒤, 경기도 파주에서 ASF가 발생했다.
한반도 방역은 남북 공동의 일,
실질적인 공동방역으로 피해 최소화해야
필자는 여러 경로로 2019년 말 중국에서 북한측 수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자강도 내 1개 농장에서만 ASF가 발생했다고 주장했지만, 별도의 만찬 자리에서는 최소 200여 농장이 피해를 보았다고 언급했다.
북한에서는 혈액 기반의 간이진단키트를 만들어서 질병 의심 시 검사를 진행하고, 양성인 개체가 발생하면 즉시 도태 및 돈사 소독 등을 진행하는 방법으로 ASF 바이러스에 대처한다고 한다. 그러나 소독약이 풍부하지 못해서 애로사항이 많다고 했다. 당시 필자가 정제형 소독약 1박스 분량을 북한측 수의사에게 전달해 주었지만 소량이었을 뿐 충분한 양이 제대로 지원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만 2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에서는 ASF로 많은 수의 양돈장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한다. 여전히 진단장비가 부족하고 동물용 소독약 공급도 원활하지 못하다. 북한은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2월 이후 2년여 동안 국경 차단, 인적 교류 차단 등 방역수준을 최고조로 높여서 대응하고 있다. 남북한이 인적 분야에서는 코로나19 공동방역이 시급히 필요하고, 동물 분야에서는 ASF 공동방역이 여전히 필요한 시점이다. 2022년 1월 초 1년 반 만에 북한 신의주역과 중국 단둥역을 오가는 열차의 왕래가 재개됐다. 이러한 왕래를 계기로 이제라도 코로나19와 ASF 공동방역이 실질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통일부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는 중국 단둥을 경유하거나 판문점, 개성, 고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한 방역 관련 긴급물자 지원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에 방역 물자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농가의 인식 변화도 기대해 본다. 방역을 한반도 전체 공동의 일로 생각하고 정보, 방역물자, 방역전문가 등을 교류하는 실질적인 공동방역을 할 때 질병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만이 한반도에서 ASF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해야 한다.
김 준 영
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수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