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평화
감정을 잇는 통일 연극으로
‘그들’을 ‘우리’로 엮다
‘북출이’와 ‘남출이’가 어우러져 연극을 무대에 올린 지도 벌써 여섯 해다. 북출이는 고향을 북에 둔 북한이탈주민이고, 남출이는 고향이 남쪽인 사람들이다. 북출이는 남과 북이 섞여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 북한이탈주민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해 고민하던 끝에 만들어 낸 말이다.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어감이라 좋고, 북한이탈주민이라고 콕 집어내지 않아 좋다. ‘북출이의 좌충우돌’도 그런 의미를 전파하려고 붙인 2019년도 연극명이다.
탈북해 살다가 같은 고향사람끼리 우연히 만나 부둥켜안는 ‘자강도의 추억’(2016)으로 시작해서 남쪽에서 살아가는 북한이탈주민 가슴의 가시를 빼주지 않으면 새 삶을 살아가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을 알리는 ‘고슴도치’(2021) 모두 남출이와 북출이가 만든 작품이다. 그들이 만든 풍계리 진달래(2017), 장춘옥(2018), 그곳에 봄이 온다면(2019), 슈퍼스타 리동현(2020), 리중호와 김예슬이(2020)에도 분단이 낳은 한과 애달픔이 서려 있고 통일을 향한 미래 상상력이 배어 있다.
(사)새조위 연극단장과 연극 ‘북출이의 좌충우돌’ 배우들
통일 연극이 남긴 여운들
‘통일 연극’은 통일되기 힘든 사람끼리 부딪히며 만들어 내는 합작품이다. 남쪽 출신 전문 연극배우와 연극 생짜 북한 출신이 두세 달 넘게 연습해서 올리는 통합 예술이다. 주제가 북한과 통일이다 보니 북한 말투가 많이 쓰인다. 고향이 북쪽인 아마추어들의 전문성은 북한 사람 역할을 맡은 남쪽 배우들의 말투를 훈련시킬 때 발휘된다.
‘북출이의 좌충우돌’은 경기도에 있는 초·중·고 5개교를 찾아가 공연한 연극이다. 닷새간 연이은 공연으로 무대가 끝나면 바로 내일 공연할 학교에 무대를 설치하고, 배우들은 공연 당일 새벽같이 휴전선 가까운 파주에 모여 리허설하며 학생들을 맞이했다. 그리곤 다시 무대를 뜯어 오후에는 다음 공연할 구리와 군포에 있는 고등학교에 설치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배우들이 공연하는 연극을 학교에서 직접 본다는 것이 신기하고, 그곳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연극으로만 끝내지 않고, ‘통일 강연극’이란 새로운 시도를 통해 연극이 끝난 후 짧은 강연을 덧붙여 연극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양시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통일 강연극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사흘간 공연하던 중 이틀 째. “할 일 많은데 출석을 부른다니 할 수 없이 왔다. 잠이나 자야겠다.”는 참석자에게 다른 참석자가 “어제 공연 본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더라. 찡하대.”라는 말을 전하는 것을 듣고 힘이 나기도 했다. 그 여파로 서울 지역 구청 공직자를 대상으로 앙코르 공연을 하기도 했다.
경기도 각 학교에서 진행했던 ‘2019년 찾아가는 통일 강연극’
이성은 필요조건, 감성은 필수조건
통일 연극을 올리면서 논문 백 편보다 연극 한 편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딱딱한 논문보다 감성을 울리는 통일 연극이 통일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통일은 냉철한 이성도 필요하지만, 뜨거운 감성이 빠지면 사람의 통일, 마음의 통일을 이룰 수 없음을 통일 연극을 준비하면서 느꼈다.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고 생각하는 데서 진정한 평화가 시작됨을 피부로 느꼈다.
평화는 서로를 같은 격으로 대할 때 비로소 시작할 수 있고, 서로 싸운 사이라면 화해라는 과정과 시간이 꼭 필요하다. 큰 만남도 중요하지만, 작은 만남과 잦은 만남을 통해 평화 만들기, 통일 만들어 내기를 다져가야 한다. 비대면 공연이란 어려움도 이태(2년)를 견뎌냈다. 통일 연극을 주관하는 (사)새조위 연극단장으로서 평화와 통일의 감성을 연극으로 전파하기 위해 오늘도 새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연극을 만드는 동안 겪은 에피소드를 2022년 통일 연극 소재로 삼을까 생각 중이다.
북한이탈주민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연극 ‘고슴도치’의 포스터
비대면 상황을 벗어나게 되면 일곱 번째 북한사투리 노래자랑도 열 계획이다. 북한말개사 노래자랑으로 시작해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자들의 열의와 재미가 쏠쏠해진다. 남쪽 노래를 북한말로 바꿔 외워 부르면서도 노래 맛을 잘 낸 참가자를 시상하는 행사다. 이제는 외국인도 참가할 정도로 외연이 커졌다. 외국 사람이 한국 노래를 북한말로 바꿔 부르는 것이 상상이 될까? 통일 연극을 북녘 땅, 북한 주민들 앞에 올릴 때 어떠한 새로운 준비를 해야 박수를 받을까도 고민하고 있다. 뜨거운 감성을 분출시켜 분단이 남긴 흉터와 차이를 녹여 내는 것, 이것이 통일 연극의 변함없는 목표다.
김 영 수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새조위 연극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