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842022.02.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나토와 러시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연합

국제

우크라이나 사태와
나토-러시아 갈등의 본질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러시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심상찮다.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 전쟁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원은 냉전 종식 이후 나토(NATO)의 동진정책과 이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대응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상징되는 냉전 종식 이후 중·동유럽지역으로의 나토 동진정책과 그 과정에서 전개된 나토와 러시아의 협력과 갈등의 이중주를 되돌아봐야 한다.
나토, 러시아에 ‘신규 회원국 영토에 나토 군사력 불배치’ 약속하며 협력관계 유지
1990년대 초반 격변의 유럽 정세에서 나토의 동진정책을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은 미국이나 나토가 아니라 나토의 대항 동맹이었던 바르샤바조약기구(WTO)의 회원국인 폴란드, 헝가리, 체코였다. 이들은 1990년 6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장래 문제 논의를 계기로 헝가리의 비세그라드(Visegrad)에서 회동하여 비세그라드 그룹을 결성했다. 1991년 1월 비세그라드 국가들은 부다페스트에서 회동하여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이어 1992년 5월 프라하에서 비세그라드 국가들은 나토 가입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이를 자신들의 공식적인 국가안보전략임을 밝혔다. 나토 회원국이 되고자 하는 비세그라드 국가들의 국가안보결정은 이후 나토가 중·동유럽지역으로 진출하는 나토 확대의 촉매제가 됐다. 나토는 1994년 브뤼셀 정상회담에서 중·동유럽지역으로의 확대정책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확대전략으로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PfP, Partnership for Peace)’를 수립했다.

나토의 동진전략으로 수립된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는 중·동유럽으로의 나토 확대를 고무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와 나토 확대에 따른 러시아의 우려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1997년 5월 파리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나토와 러시아는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에 근거하여 ‘나토-러시아 상호관계, 협력, 안보에 관한 기본조약’을 체결했다. 나토는 러시아와 기본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새롭게 나토의 회원국이 된 중·동유럽 국가의 영토에 상당 규모의 나토 군사력 상주나 핵무기 배치 의도 및 계획, 이유가 없다는 점을 러시아에게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1999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의 반대보다는 러시아의 이해와 협조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나토와 러시아의 협력관계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보다 강화됐다. 2002년 로마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을 통해 나토·러시아이사회((NATO-Russia Council, NRC)가 창설됐다. 이는 나토와 러시아의 협력관계를 한 차원 높인 것이다. 비록 나토의 정책에 대한 결정권은 없지만 러시아는 이사회를 통해 나토 회원국가들과 동등하게 다양한 현안 문제를 논의할 수 있고, 나토와 러시아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 분야에서 공동 노력하는 것을 제도화한 것이다. 나토와 러시아의 협력이 유지되는 가운데, 나토는 2002년 11월 프라하 정상회담을 통해 중·동유럽 7개국(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을 대상으로 새로운 확대정책을 추진했다. 2004년 이스탄불 나토 정상회담을 통해 중·동유럽 7개국이 새롭게 나토 회원국이 됐다.
2008년 부카레스트 정상회담 계기로 나토-러시아 갈등 점화
최근 미국·나토와 러시아 간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가 처음으로 공식화된 것은 2008년 4월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이었다. 2006년 라트비아의 리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나토 확대에 기초하여 확대 정상회담으로 불린 부카레스트 정상회담에서 나토는 새로운 회원국 후보인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초대했다. 다만 미국이 구상했던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는 러시아가 아닌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주요 국가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반대의 주된 이유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새롭게 마련된 나토 확대 전략의 핵심 규정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토는 2000년에 들어와 기존의 ‘평화로운 동반자 관계’라는 확대전략 대신 새로운 확대전략으로 ‘회원자격 행동계획(Membership Action Plan: MAP)’을 마련했다. 나토의 회원자격 행동계획은 나토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한다는 약속과 더불어,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들은 일련의 제반 규정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치적 민주주의와 영토분쟁 부재 등이 중요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새로운 나토 확대전략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영토분쟁 기준에서 나토 가입의 결격사유가 있었다. 그러나 서유럽의 나토 회원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 실제 이유는 러시아의 반발과 이로 인한 나토-러시아 협력관계의 파탄을 우려한 것이었다.


나토를 주도하는 미국이 2008년 부카레스트 정상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 회원국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구상이 공개된 것을 계기로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는 협력에서 갈등 관계로 전환됐다. 2008년 4월 부카레스트 나토 정상회담 이후 러시아 푸틴 정부는 나토의 동진정책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여 왔다. 2008년 8월 조지아 내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을 둘러싼 민족 갈등이 계기가 된 러시아와 조지아의 전쟁,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돈바스)을 둘러싼 우크라이나와의 갈등 지속의 이면에는 영토분쟁을 빌미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저지하기 위한 러시아의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유럽지역에서의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오바마 행정부의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은 부시 행정부 때와는 달리 나토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푸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세력권 내에 있는 새로운 안보지형 구상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본격화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나토 동진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안보적 우려감의 또 다른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접경지역에 10만 명이 넘는 군사력을 배치해 놓은 상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도 있다는 군사적 압박을 가하면서 자신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러시아가 요구하고 있는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좌절시키고, 나토가 더 이상의 동진을 멈추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나토의 동진으로 신규 회원국이 된 중·동유럽 국가 중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들에 배치된 나토의 군사력을 철수하는 것이다. 셋째는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캄카스, 중앙아시아 등 러시아가 자신의 영향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주변지역에서 나토의 모든 군사 활동의 전면 금지이다. 네 번째는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동부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가 제시한 조건(돈바스 지역의 정전협정인 ‘민스크 협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러시아가 요구하는 사항은 냉전 종식 이후 사실상 러시아에게 불리하게 형성된 유럽의 안보지형을 새롭게 짜겠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세력권 내에 있는 새로운 유럽의 안보지형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12일 우크라이나 문제를 두고 고위급 협상을 벌인 나토와 러시아 대표단 ⓒ연합

미국과 나토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요구 사항을 결코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의 나토 무용론 발언으로 대서양동맹에 대한 미국의 신뢰성에 의구심이 높아졌던 상황을 기억한다면, 미국이 돌아왔고 동맹을 복원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러시아의 요구 사항 중 어느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가 군사 행동을 감행할 경우 다양한 영역에서 강력한 대러제재를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토 회원국의 영토에 미군 파병 등 나토의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러시아의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 결제 시스템 접근 차단, 노드스트림2 가스관 사업진행 중단, 친러 인사 자산 동결 등의 고강도 경제제재를 단행하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과 나토, 러시아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딜레마 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확실한 국제적 리더십이 부재한 G-zero 시대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에서 발생한 갈등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핵심 이해당사자들(미국과 나토, 러시아)이 지역적 전략지점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고, 해결해 나갈 것인가를 엿볼 수 있는 리트머스 테스트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향후 유럽의 안보지형과 국제질서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 향방에 따라 지금과는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다. 국제적 리더십이 부재한 G-zero 시대가 보다 심화되어 다양한 지역적 갈등의 빈도가 높아질지, 아니면 주요 강대국 간에 최소한의 협조체제가 가동되어 지역적 안정과 평화유지가 가능 할지의 여부이다.

이 수 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