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북·미 협상 쟁점과 새로운 접근

핵 없는 번영 북한 스스로 확신해야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이후 어렵게 성사된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종료됐다. 협상 결렬 이후 미국은 북한과 좋은 논의를 했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북한은 ‘불쾌’하고 ‘역스럽다’는 거친 표현을 동원해가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실무협상은 왜 결렬됐으며, 앞으로 북·미 핵협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스톡홀름 실무협상: 북·미 탐색전, 성과 도출에 한계

스톡홀름으로 향하던 북한 김명길 대사는 베이징 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미국측에서 새로운 신호가 있었기에 큰 기대와 낙관을 가지고 가고, 결과에도 낙관한다’고 언급했다. 실무협상 전에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볼턴 보좌관이 경질되었고, 협상을 불과 며칠 앞두고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했음도 미국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은 이른바 미국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기대를 가졌던 듯하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은 미국의 제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의 협상 결렬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협상이 끝나자마자 매우 빠르게 북측 대표와 북한 외무성이 입장문을 발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미국측이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며, 하노이에서 미국이 사용했던 용어를 그대로 대갚음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결국 북한은 이번 실무협상을 3차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예비협상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역시 이번 회담에서 획기적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핵협상에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대선을 앞둔 미국으로서는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실무회담 정례화 등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것을 선거를 위한 중장기 상황관리 전략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은 비핵화 최종상태, 로드맵, 단계별 조치와 상응조치 등 실질 의제는 논의하지 못하고 종료됐다. 즉, 실무협상에 임하는 북·미의 목적이 달랐고, 양자 모두 실질적 성과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에 스톡홀름 실무협상은 처음부터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지난 6월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북·미 실무회담 재개를 합의했다. 그러나 어렵게 성사된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종료됐다. ⓒ연합

실무협상 결렬 이후 북한은 강온 양면의 모습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우선 내부적으로는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북·미 핵협상의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 또한 과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대결심을 앞두고 올랐던 백두산을 등정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한편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고문 명의의 담화 등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친분을 강조하고, 연말로 설정한 시한을 넘길 방안을 요구 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김 위원장과의 관계가 여전히 좋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미관계가 개선된 것이 자신의 치적임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은 대북제재 해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북한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상을 요약하면, 아직 북·미의 기본 입장은 변화가 없다. 양국 지도자 간 신뢰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을 비 관할 필요는 없지만, 양자 간 쟁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북·미 협상의 쟁점: 비핵화의 입구와 출구

미국은 하노이에서 최대치의 비핵화 개념을 제시했다. 핵무기는 물론이고 생화학 무기를 포함해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 전체의 폐기를 요구한 것이다. 반면 북한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라는 추상적 목표에는 합의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 자체를 의심하고 있으며, 북한은 자신들이 패전국이 아님에도 미국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및 핵시설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신고해 줄 것을 원하지만, 북한은 상호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상세한 리스트를 제공하는 것은 미국에게 폭격 리스트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미 양자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우선 미국은 생화학무기 등으로 의제를 확대하기보다 핵무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생화학무기나 중단거리 미사일 등은 중장기적으로 별도의 군축협상을 통하거나, 관련 국제기구에 북한이 가입함으로써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NPT에 비핵국가로 재가입함으로써 그 의무를 이행한다면 이를 허용해야 한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의 개념을 보다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의 포기’를 약속했던 6자회담, 9·19공동성명 수준의 비핵화 개념에는 합의해야 할 것이다.

둘째, 비핵화의 입구는 첫 단계 조치로 양자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고 하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를 최소한의 비핵화 초기 조치로 논의한 것은 매우 큰 성과였다. 영변 핵시설이 노후한 시설일 뿐만 아니라, 북한의 전체 핵능력으로 보면 미미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하지만 핵능력이 아니라 검증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영변시설의 가치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비핵화가 하루아침에 달성되는 목표가 아니라면 검증이 매우 중요하며, 영변은 북한 핵개발의 과거이자 현재를 담고 있는 시설이다.

지난 10월 7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의 북측 협상 대표로 참석한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베이징에 도착해 추후 회담 여부는 미국에 달려있다면서 미국의 입장 변화를 촉구했다. ⓒ연합

그런데 미국은 이른바 영변 플러스 알파, 즉 영변 시설 이외의 추가적 조치들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영변은 이미 6자회담이 진행되던 2000년대 초반에 부분적이지만 사찰을 시행했던 시설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더 진전된 조치를 취해 달라는 것이다. 하노이에서 북한은 영변시설 폐기 의지를 표명했으며 그것이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초기 조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북한은 미국의 상응조치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즉 자신들은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시설 일부를 해체했으며 미군 유해 송환 조치도 취했으니, 이제는 미국이 움직여야 할 차례라는 것이다.

비핵화 초기조치의 범위와 관련해서 한편으로는 북한이 취해야 할 비핵화 조치가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2018년 9월까지는 종전선언이 논의되었으나, 이후 하노이까지 북한은 제재 해제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은 체제안전 보장과 관련된 조치로 다시 초점을 옮겼다. 단기적으로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및 전략자산 도입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등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들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비핵화 초기조치는 서로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지의 문제이며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된다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우선 미국은 생화학무기 등으로 의제를 확대하기보다 핵무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 북한은 비핵화의 개념을 보다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의 포기’를 약속했던 6자회담, 9·19공동성명 수준의 비핵화 개념에는 합의해야 할 것이다.”

현안에 일희일비 말고 멀리보며 협상해야

셋째, 비핵화의 입구와 출구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입구에서 출구까지 가는 방법론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이른바 비핵화 로드맵이다. 한미 간에는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가 존재한다. 즉 비핵화 범위에 대해 포괄적으로 합의할 수 있다면, 비핵화의 이행은 단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른바 단계적·동시적 이행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북·미 간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비핵화 최종상태에 대해 미리 합의하기보다는 단계적·동시적으로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를 주고받으면서 신뢰를 구축해 최종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북한의 방안은 일반적인 군축협상의 틀을 준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핵화 최종상태에 대한 명확한 입장 없이 협상이 진행되면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 비핵화로 상황이 교착될 우려가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예컨대 비핵화 단계를 최대한 압축하고 비핵화 속도를 높여 신뢰를 제고하는 방안, 상대방이 배신할 경우에 대비한 스냅백 조항을 활용하자는 제안 등이 그것이다. 실제 국가 간 합의의 대부분이 상호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신뢰제고 혹은 배신에 대한 조치 등의 방안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매우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다.

당장의 현안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멀리 보고 차분히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 정해놓은 ‘연말’ 시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일단은 연말 이전에 실무회담을 재개하여 일정한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 2019년 10월 말 현재까지도 북한은 실무협상보다 정상회담에 미련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하노이에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무협상은 필요하다. 중기적으로는 미국의 대선 등 한미의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합의를 넘어 가시적 성과가 필수적이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보유보다 핵폐기가 더 이익이라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북한 스스로 핵이 없는 상황에서의 번영을 확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불가역적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용환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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