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 요인이 외교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에는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경우에 국가 지도자들이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해서 ‘국가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해왔기 때문에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최고정책 결정자들이 국내 정치 차원의 판단을 외교 정책에 적용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국내 정치 중요성이 더 커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국내 정치가 날이 갈수록 극단적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이한 성격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협상도 미국 국내 정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북·미 협상을 전망하면서 미국 국내 정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절차가 됐다.
미국 국내 정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트럼프 대통령 개인 성격 특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어 정치 일정, 즉 대통령 선거 일정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정부 기구 수준에서 대통령 참모들의 역동성도 분석할 수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주요 변수가 되지 못한다.
국내 상황 반전 위한 외교 결정… 트럼프, 노벨상을 노리나?
북한과 미국이 전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 배경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이 주요 변수였다. 2018년 3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이 특사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권유했는데, 그는 현장에서 즉시 수락했다. 내용과 형식에서 기존 상식과 통념에 어긋나는 결정이다. 그 결정의 배경에는 하루 전 미국 언론에서 성추문 관련 뉴스가 대서특필된 상황과 관련이 있다. 성추문 관련 뉴스를 압도할 수 있는 더 큰 뉴스가 필요했기 때문에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는 해석이다.
기존 외교 분야 엘리트들로부터 문외한 취급을 받은 것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불만을 과격하게 표출한 행동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 추진 결정 이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한 것은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장기간 잠재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 나선 이유도 국내 정치 상황과 관련이 있다. 미국 정치권의 주요 관심사는 러시아 정부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협력했다는 의혹을 조사해온 특검 발표가 임박했다는 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과 관련한 뉴스를 불쾌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불쾌한 뉴스를 덮기 위한 더 큰 뉴스가 필요했기 때문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했다는 설명이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로 끝난 것이 미국의 국내 정치 영향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과 같은 시기에 미 의회가 자신의 예전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을 불러서 청문회를 여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면서, 회담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청문회 일정이 하노이 회담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면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노벨상을 받는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관심을 보인 적이 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촉발된 탄핵 논란, 2020년 대선 위해 북핵 합의 도출 가능성
과거 미국의 외교 정책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 대통령들은 취임 초기에 북한에 대해 강경 정책을 선호했고 4년 임기 후반에는 온건 정책을 선호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유사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취임 직후 2017년에서 2018년 초까지 강력한 압박을 추진했지만, 2018년 상반기에 갑자기 온건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런 추세를 고려하면 앞으로 1년 남은 대통령 선거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온건 정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할 수 있다.
대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미국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이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 탄핵 논란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조 바이든 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 부당한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조사하도록 압박했다는 논란이다. 미 하원에서 탄핵 조사가 시작된 만큼 탄핵 절차가 시작된 셈이다.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탄핵안 발의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탄핵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이어서 탄핵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탄핵과 상관없이 내년 11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까지 선거판의 투쟁 소재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와 관련한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다면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저급한 지도자라고 비난하는 민주당 지도자들에 대한 반박 자료로써 북한의 핵문제를 활용해 위대한 외교 업적을 만들었다고 선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본다면 북한과의 합의에 대한 수요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과거 미국 대선 사례를 돌이켜보면 북한 문제나 한반도 문제는 주요 변수가 아니라 보조적인 요소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재개할 가능성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두려워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미국에서 북한의 위협은 여전히 통제 가능한 소규모 관심사라는 점은 여전하다. 북한이 만약 도발적 행위를 강행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단호한 군사 지도자 이미지를 만드는 방향으로 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 트럼프가 북한과 협상 지속하도록 해야
미국 국내 정치적 맥락에서 북·미 협상을 전망하면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긍정적인 요소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업적 차원에서 북한과의 협상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대통령 임기가 3년 가까이 지나고 재선 여부를 결정하는 선거가 1년 뒤로 다가온 만큼 북한과의 협상을 긍정적으로 관리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부정적인 요소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이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결단에 따라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흥미를 잃고 모든 동력이 소멸되는 시나리오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외교, 안보 분야 의 기존 엘리트는 북한과의 협상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점도 유념할 대목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대화를 중단시키려 할 것이다. 협상 타결이 된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 퇴진 이후 합의문 무효화 절차를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 보면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유지될 수 있도록 협력 관계를 최상급으로 유지하는 것이 기본 과제가 될 것이다. 동시에 민주당 세력을 중심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는 기존 엘리트에 대한 여론 관리도 공개적, 비공개적 수단을 적절하게 동원하는 방식과 수준으로 진행해야 한다. 또한 미국 국내 정치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가 갖는 중요성에 한계가 있는 만큼 과도한 기대감을 갖거나 의존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지난 9월 12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ABC방송 주관으로 3차 TV토론이 진행됐다. 대선을 앞두고 북·미가 핵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이룬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연합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