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남북유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산가족의 만남

남북한의 긴 분단은 지구상에서 가장 긴 이별을 만들어 냈다. 2018년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이산가족 상봉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피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소강국면에 따라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산 1세대들의 만남을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긴 세월이 흘러 그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신뢰 잃어버린 남북관계 현주소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방식의 변화를 위해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을 추진할 수 있는 장비를 구입하고, 이에 대해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면제허가까지 받았다. 소수의 이산가족만 직접 상봉하는 것에서 벗어나 정기적으로 더 많은 이산가족이 서로 생사 여부와 안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역시 북한과 미국 사이의 비핵화 협상 교착과 남북관계 경색으로 북측에 장비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영상편지 형식을 통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노력도 있었지만,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통일부가 2005년부터 2만여 편의 영상편지를 제작했지만 북측에 보낸 것은 2008년 시범사업으로 보낸 25편에 불과하다. 북측에 전달되지 못한 것 중 1,568편은 디지털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의 약 60%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인도적 차원의 의제인 이산가족의 직접 상봉 또는 영상 편지 교환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는 관광 형식의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북한의 호응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직접 상봉을 추진한다면 북한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며, 관광 형식으로 고향방문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비자를 발급해줘야 하는 사안이다. 이산가족의 문제 해결과 같이 인도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은 신뢰를 잃어버린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2018년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8·15 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통일부

민간 교류 통한 다각적 접근 필요

정부가 추진하는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가 추진되기 어렵다면 민간교류를 통해 이산가족이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도 열리길 바란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남북관계 속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제도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은 쉽지 않고, 이산가족에게는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이런 상황이기에 민간교류를 통한 다각적인 접근이 더욱 필요하다. 그것이 관광의 형식일 수도 있고, 고향 방문일 수도 있고, 협력 사업의 일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남북관계의 가장 중요한 인도적 사안 중 하나인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민간부문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시점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논하면서 한국사회는 한국전쟁에 따른 이산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앞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산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들이 필요에 따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은 북측 가족들과의 접촉이 차단되어 있다.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이들이 북한을 떠나면서 발생한 이산도 인도적 사안임에는 틀림이 없다.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이들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이들의 문제도 인도적 협력 차원에서 다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적 의제이지만 동시에 정치적인 문제임을 간과할 수 없다. 달리말하면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적 문제는 인도적 차원의 접근법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위기들이 정치적 의지 없이 해결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들을 실현하기 위해 남북의 정책결정자들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조속히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송영훈 송영훈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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