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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여성 디아스포라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산가족의 만남

Diaspora : 빈곤, 식민지, 냉전체제, 군부독재, 글로벌 자본주의의 확산 등의 요인으로 인해 전 세계로 흩어져 자신의 규범 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 또는 그 거주지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빈곤, 식민지, 냉전체제, 군부독재, 글로벌 자본주의의 확산이라는 역사적 요인들로 인해 전 세계로 흩어진 한인 동포다. 남한 사회는 이들을 동질적인 집단으로 상상하면서 한인 디아스포라의 지역적 차이, 문화적 역동성, 정치 체제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현존을 간과해 온 측면이 있다. 재외 한인 디아스포라는 ‘한민족’의 성공신화를 증명하는 상징이나, 이미 현란한 자본주의적 현대성을 경험한 남한 사회에서는 사라진 향수를 ‘소장’하고 있는 박제화된 사람들로 재현 되어왔다. 한국은 남북한 인구의 10퍼센트가 이주를 떠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송출’ 국가다. 즉, 한반도의 국가 건설은 이주, 이산,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통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나 민족의 발전이나 민주주의가 단순히 영토 안에 존재하는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이주한 나라에서는 소수민족, 한국에서는 동포로 불렸는데 두 국가 모두로부터 잊힌 존재처럼 취급되었던 한인 디아스포라와 조우가 이뤄진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한인 디아스포라와의 조우

‘강제이주’ 혹은 정치적 목적으로 유민의 길을 걸었던 중국, 일본,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의 한인들이 1990년대 이후 고향 방문, 귀환, 영구귀국, 유학, 이주 노동, 결혼의 형태로 한국에 정착하고 있다. 동북아 사회주의 국가 출신인 한민족 디아스포라와의 조우가 흥미로운 점은 오랜 냉전체제하에서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로 인해 오랜 단절의 역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권의 정치적 재분할과 개혁개방으로 가능해진 만남은 그간의 ‘시간적 지체’를 극복하고 동북아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과 역사를 복기하여 한반도의 ‘현재’를 구성하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체제 경쟁과 분열로 얼룩진 한반도의 평화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과의 조우가 평등한 대화와 교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에 귀환한 구 사회주의 국가 출신 동포들은 ‘가난한 동포’ 혹은 ‘이주 노동자’로 낙인찍히고 이들에 대한 문화적 오인과 폭력이 교정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고향’ 또는 ‘모국’, ‘조국’에 대한 막연하고 열정적인 감정은 곧 남한 사람들의 무관심 그리고 냉대와 마주한다. 이들은 남한에서 언어, 외모, 생활양식과 감정, 정서 간의 연결적 균질이 깨진 채 어색하고 낯선 관계로 남아 있다.

지난 9월 27일 개최된 동북아코리안여성 평화회의 ⓒ사단법인 조각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지적인 응답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필자는 지난 몇 년간 ‘조각보’라는 단체에서 동북아 한인 디아스포라 여성들과 교류하고 이들의 ‘삶이야기’를 청취하는 <피스테이블>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구성해 온 발전주의 국가의 ‘국민 됨’이 얼마나 협소하고 편협한 세계관을 갖게 했는지 자성할 수 있었다.

북향민, 고려인, 중국동포, 사할린 동포, 그리고 남한 여성 등이 참여한 삶이야기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주와 이동이라는 경계넘기가 어떻게 의식의 확장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동북아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서사는 고향, 집, 민족, 국가라는 시원적 경계를 넘어 남한, 북한, 중국,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일본, 사할린 등의 전 지구적 장소를 관통하는 포괄적 서사다. 이들은 빈곤, 민족해방, 여성해방, 경제적 위기, 정치적 탄압, 냉전, 가속화되는 삶의 불안정성을 마주하고 상쇄하기 위해 이동과 정착을 반복하며 유연성을 획득했다.

여성들의 경계 넘기와 디아스포라 의식의 구성

이들의 이야기는 대단한 ‘영웅’ 서사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란 의미는 거대 질서를 구획해왔던 다양한 권력, 폭력, 남성 엘리트 관점에 대항하는 민초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구체적인 역사, 즉 미시적 역사를 의미한다. 특히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기록은 정치 리더나 성공한 경제인 등 엘리트 남성에게만 주목해왔기 때문에 동북아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삶이야기는 이야기, 수다, 소문, 전승의 방식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다. 아래로부터의 경험은 경계 설정을 통한 세력 다툼이나 ‘차이’에 대한 진압과는 구별되는 수용적 관점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송 라브렌티 감독의 영화 <고려사람>은 소비에트 연방의 이민족 통제 정책과 한국의 민족주의에 맞서 살아남은 고려인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고려인 집단 거주지는 한인들만의 폐쇄적 공동체가 아니었다. 이들은 다른 종족 및 민족들과 공동 노동을 하면서, ‘생존’의 위기를 해결했다. 이 과정을 통해 경계를 해체하면서 종족 간 사회적 네트워크와 상호참조체제를 구성해갔다. 주변의 다양한 소수 민족들은 고려인들이 부르는 노래를 함께 불렀고 음식을 나눴다. 고려인은 강제이주를 당한 ‘추방된 존재’였지만, 다른 종족과 상호의존하며 정서적 교감을 하며 언어를 습득하고 소통했다. 실제 이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민족의 문화를 지켜냈을 뿐 아니라, 편협하거나 배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다른 종족들과 교류하고 협동했다. 이런 점에서 동북아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서사는 하위주체들의 경계 넘기를 통해 구성되는 창발적 성격을 담고 있다.

디아스포라적 여성 주체를 사유화하는 것은 단순히 기존의 한민족이라는 공통적 정체성에 여성을 덧붙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기존의 디아스포라 경험, 스토리, 지식과 ‘여성 경험’을 교차함으로써, 남성주의적 서사의 중심적 위치를 해체하는 것이다.

기존의 디아스포라 담론에서 여성은 주로 모성 담론을 통해서만 등장했다. 애국자 남편을 보필하고, 남자 아이를 낳아 모국이 아닌 피난처에서도 가부장적 부계혈족주의를 계승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여성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이것은 사실 한국 가부장주의와 디아스포라 민족주의가 구축해낸 젠더 이미지다. 남성중심적 디아스포라 담론 또한 여성들을 순수혈통의 재생산자로서의 역할을 강요하며 디아스포라 여성이 이뤄낸 수많은 사회적 역할과 성취를 기록하지 않았다. 기존의 디아스포라 여성 담론은 여성들이 학생, 교사, 노동자, 사업가, 혁명가, 놀이꾼, 예술인, 경제인, 문화생산자, 이념의 생산자라는 다중의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점을 간과해왔다. 실제로 여성들은 가장 미시적인 공간인 가정의 생계를 담당할 뿐만 아니라, 각국의 사회 건설에 적극 참여한 공사영역 모두에서의 적극적인 행위자다.

두 번째로 여성들은 이야기를 통해 ‘성찰’한다. 중산층 한국 현대 여성을 연구한 인류학자 낸시 에이블먼은 여성들이 엄청난 ‘자기성찰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한다. 동북아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삶이야기도 소소한 진실을 드러낸다. 이들의 서사는 민족 해방이나 경제 개혁 등의 ‘거대한 변화’가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며, 이들이 생존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두려움 없이 나섰으나 이리저리 방황한 경험을 사실 그대로 드러낸다. 여성의 삶 자체는 영웅적이지도 그렇다고 매번 피해자적이지도 않은 복잡한 조건 즉, 다양한 기회, 모험, 위험과 거래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삶이야기는 동시에 이 여성들이 ‘덜 의존적이기 때문에’ 남성보다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이 더 크며, 자기 돌봄의 윤리가 발 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누군가에 철저히 의존하지 않은 채, 다양한 이주를 감행하고 위기를 감지하며 그 위기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구조적 폭력, 피해, 차별을 경험하지만 좌절과 낙담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풍요로운 문화적 토양 위에서 생활했던 디아스포라 여성들은 남한에 온 이후, 자본주의적 시장이 철저하게 ‘사람 가치’를 측정하는 시스템으로 진입한다. 여성들은 이주국에서 방송인, 지식인, 학자, 시인, 소설가, 혁명 영웅, 건축가, 예술인, 의사, 상인, 교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존재들이지만 한국에서는 단순 노동을 하는 ‘동포’이며 ‘이주민’으로 취급되어 하향평준화된다. 이들은 자신의 시장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체류자격을 안정화하기 위해 국가의 통치 시스템 안으로 깊숙이 편입해 들어가야 했다. 이로부터 다양한 체제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동북아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평화비전

한국에 정착한 디아스포라 동북아 여성들은 편협한 국민국가주의 및 자본이 구성한 위계화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어떻게 서로에 대한 상호인정과 공생이라는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이는 ‘하위 주체 코즈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이란 세계관과 자본주의 비판을 가능하게 했던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의 철학을 이들이 정주하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기획과 어떻게 연결시켜내는가하는 문제다. 우리는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삶이야기를 한국 사회의 문화 능력을 확장하고, 평등의 기획을 실현하는 데 어떻게 활용해가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디아스포라 여성들은 단순히 이주국 혹은 조국을 분리하여 소속을 증명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이들은 다중적 기원과 소속감, 언어, 정체성을 갖고 있다.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복수적 정체성은 이들이 이주한 지역과 한국 등 모든 곳의 사회 건설과 역사 구성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디아스포라 한인들은 영토 밖에서, 혹은 다양한 국경을 넘으면서 한반도의 식민, 전쟁, 분단, 개발과 발전이라는 역동적 변화를 온전히 경험했고 이들은 어디에나 ‘한민족’의 복수적 역사가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존재이다. 이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이러한 복수적 정체성에서 오는 유연함과 경계 넘기란 의식 때문이다. 고려인, 조선족, 북향민, 사할린 동포를 포함한 재일동포들에게 이주와 정주는 지속해서 반복된 역사였으며 이 과정에서 경계인으로서 차별을 당해왔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이런 ‘이산’의 조건은 국민 국가주의와 편협한 중심주의의 폭력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지혜를 갖게 했다. 이들은 모든 체제가 ‘무결점주의’의 인지적 오류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결국 어느 하나의 체제, 하나의 사상과 철학이 가장 우월하다는 것을 알아내기보다 체제와 사상 간의 결합이나 이해를 통해 모든 이를 포용하는 다원주의적 체제가 필요함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평화비전은 동질화가 아닌 다양한 차이 간의 적극적 대화를 통해 이뤄지는 질 높은 형태의 상호 개입과 협력의 상태를 이뤄내는 것이다.

김현미 김현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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