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42021.04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

특집


다시 보는 평창 평화와
다가오는 평화의 기회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당시의 공연 ‘봄이 온다’의 감동이 언제였는가 싶을 정도로 남북관계는 급전직하로 얼어붙었다. 김여정 부부장은 “3년 전의 따뜻한 봄날은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평창올림픽에서 시작된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 3년을 돌아보며 우리에게 남은 기회의 시간을 점검한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결정적 계기는 2019년 8월이다. 그해 6월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미 회동이 성사된 날,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8월 한미군사연습이 중단된다면 북·미대화를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7월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군사연습을 중단하라고 지시하였다. 볼턴 보좌관은 그의 자서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뒤집는 과정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있다. 7월 24일 한국을 방문한 볼턴 보좌관은 에이브럼스 주한 미사령관과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와의 조찬 회동에서 한미군사연습 중단에 대한 반대의견을 이끌어내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여 8월 군사연습을 강행하게 했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이 군사연습을 극렬히 반대하고 초대형 방사포 등을 포함한 이른바 4종 세트의 미사일 발사를 이어간다. 8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을 거세게 몰아세우며 한미군사연습을 강행한 것을 후회한다고 술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한편 이 상황을 다른 차원에서 공개한 우드워드의 『분노』는 2019년 8월 6일 자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다룬다. 친서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대화와 군사연습은 병행할 수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이중 행동을 비판한다. 이어 한국 때리기에 나선 그는 “남조선의 국방장관이라는 자(정경두 장관)가 우리를 주적으로 규정”하였음을 비난하고 남조선은 더 이상 자신들에게 군사적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힐난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대칭 전략에서 자신들이 우위를 점했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장면이다. 실제 8월 16일 조평통은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 할 일”, “태산명동 서일필”이라는 망언으로 문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에 나섰다.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2018년 2월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참가자들이 촛불로 평화의 비둘기를 만들고 있다. 다시 올림픽 휴전의 계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 ⓒ연합

두 번의 군사연습 중단이 가져온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

  주지하다시피 2018년 평창 평화프로세스의 시작은 2017년 12월 19일 강릉행 열차에서의 대통령 성명이다. 한미군사연습을 연기한다는 올림픽 휴전론이 이듬해 4월의 봄날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북·미 합의에서 종전선언의 내용을 담고 있던 합의문 초안(six p.m. text)이 허물어지고, 간신히 짧은 합의문(short statement)이 싱가포르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볼턴의 초안 뒤집기 신공은 결국 종전선언을 파탄시켰고 7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마저 빈손 귀국으로 이어지게 했다.

  미군사연습을 중단시키자 김정은 위원장은 소위 러브레터로 알려진 2018년 8월 10일 자 친서를 보낸다. 북·미 간 백악관 2차 정상회담 논의가 급진전된 것도 이때였다. 이어 9월 6일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를 언급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친서가 전달되자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적극 화답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능했던 것이 바로 9·19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이후 사소한 논란으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은 해를 넘기게 되었지만 하노이 회담까지 대화의 동력은 이어졌다.

  북한이 2018년 8월 한미군사연습의 중단을 얼마나 반겼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되돌아보는 것은 지금의 상황을 반추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2018년 4월 27일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선언 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

전작권 전환과 한미군사연습 중단의 딜레마
  한미군사연습을 무조건 중단할 수는 없다. 전작권 전환이 조건에 기초하고 있고 한미 간 실행 훈련을 거쳐 기본운용능력(IOC), 완전운용능력(FOC), 완전임무수행능력(FMC) 등의 평가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위한 한미군사연습의 실행과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한미군사연습의 중단 간에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두 토끼 중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을 막을 사람은
문 대통령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북한의 속내를 읽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회군의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는 강경론을 고집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을 것이다. 우리 대통령이 나서서
4·27 3주기를 맞이하는 연설이라도
조기에 진행하여 새로운 평화프로세스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0년 8월 북한은 한미군사연습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코로나19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지휘소 훈련을 중심으로 그 규모를 축소한 덕분이었다. 반면 2021년 3월, 지난해 8월과 마찬가지로 지휘소 훈련을 중심으로 한 한미군사연습에 대해 북한은 16일과 18일 비난 성명을 쏟아 내었다. 그리고 이어진 미사일 발사….

  아마도 북한은 이번 3월의 군사연습 역시 지휘소 훈련 중심의 연습으로, 작년 8월의 군사연습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3월 8일 훈련 시작 시점에 비난 성명을 시작했을 터이다. 뒤늦게 북한이 성명을 쏟아내고 연이어 미사일을 쏘아 올린 이유는 한미군사연습 자체에 있기보다는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 말레이시아와의 단교와 문철명 송환 사태 등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미국이 발표할 대북정책 검토의 결과에 따라 북·미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을 수도 있고, 급격히 화해 국면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은 불가능해졌지만, 두 번의 평화 올림픽이라는 계기가 다가오고 있고,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도 남아 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북·미 정상이 악수하고 있다. ⓒ연합

두 번의 기회, 무엇을 할 것인가?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북한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문 대통령이 나설 것을 요구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1월 우리 대통령이 직접 첨단무기 도입이나 군사연습 강행에 대한 해명이라도 하라고 요구했다. 3월 16일 김여정 부부장은 조평통 해체와 금강산 국제관광국 폐지 건이 김정은 총비서에게 보고된 상태라고 엄포를 놓았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을 막을 사람은 문 대통령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북한의 속내를 읽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회군의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는 강경론을 고집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을 것이다. 우리 대통령이 나서서 4·27 3주기를 맞이하는 연설이라도 조기에 진행하여 새로운 평화프로세스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편 도쿄 올림픽과 베이징 올림픽을 맞아 다시 올림픽 휴전의 계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 평창 평화프로세스의 시작이 올림픽 휴전론이었다면, 2021년의 평화프로세스는 8월 한미군사연습에 대한 균형 있는 접근에서 시작될 것이다. 적절한 시점에 8월 군사연습에 대한 조치를 발표하는 것이 하반기 평화프로세스의 시작점을 알리는 팡파르가 될 것이다.

  다행히 미국은 FFVD와 CVID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싱가포르 합의문의 구절을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3월 24일 자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정상회담도 아니지만 오바마 대통령 시절의 보텀업도 아니라고 보도했다. 오바마식 보텀업이 차관보, 부차관보 수준의 대화 채널을 의미한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최소한 장관급 혹은 차관급 인사의 직접 대화를 정책 수단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공식 호칭으로 불러주는 것으로 대북정책을 시작하면 좋겠다. 지난 대선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thug’라고 비하했지만, 이제 ‘President’라는 공식 호칭으로 불러 준다면 장차관급 대화의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윤활유로 작용하지 않을까?

  실기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북한이라는 성질 급한 야생마를 말릴 길이 없을 태세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실수를 반복할 이유가 없다. 2021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평화의 불을 지피고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4자 종전선언이라는 성과를 가져온다면, 한반도 평화는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것으로 칭송될 것이다. 평화를 원하는 우리가 평화를 향해 뛰어들 때다.

이정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