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평화의 길
남북에 하나씩 있는 영랑호,
언제쯤 소풍이라도
갈 수 있을까?
  속초는 설악산과 동해, 두 개의 호수를 품고 있다. 설악산과 동해도 좋지만, 자연호수 청초호와 영랑호도 속초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명소이다. 청초호와 영랑호 물가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설악산의 높은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높이 치솟은 울산바위와 달마봉의 수려하고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면 한 폭의 진경산수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청초호의 하구 쪽으로 속초항이 개발되었고, 수복 이후에는 호수를 가운데 두고 주변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1990년대에는 호수의 1/3이 매립되어 항만과 유원지가 조성되면서 호수의 면적도 많이 좁아졌다. 최근에는 호수 주변에 3~40층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하늘과 산, 바다를 가리고 있다. 경관 훼손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자랑하는 속초로서는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어 버렸다.
  속초 사람들은 다른 곳보다도 영랑호를 더 사랑한다. 1960~70년대에는 영랑호에 보트를 띄워놓고 노를 저으며 뱃놀이를 즐겼고, 어린 학생들은 호수 인근 보광사 솔숲으로 소풍을 갔다. 지금은 그 문화가 사라져 기억이 아련하지만, 1980년대 영랑호 둘레에 산책길이 생겨난 이후에는 매일 많은 시민들이 산책과 휴식을 위해 영랑호를 찾고 있다. 속초에서 영랑호는 자연경관이 살아 있는 속초시민의 마지막 휴식처라고 할 수 있다.
이상향 꿈꾸게 한 아름다운 풍광
영랑호 둘레길 ⓒ필자 제공
  영랑호는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특히, 눈 내린 다음날 아침이면 영랑호변에서 아침 햇살이 퍼져 보석같이 하얗게 빛나는 설악산 설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바람한 점 없이 맑은 날 아침에는 호수 수면에 비친 설악산 반영도 볼 수 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영랑호 둘레길은 온통 꽃 천지로 화사하다. 여름이면 설악산 중턱으로 구름이 강물처럼 흐르는 풍경을 볼 수도 있고, 가을이면 멀리 설악의 단풍과 함께 아름다운 호수길의 단풍과 갈대밭 풍경을 즐길 수도 있다.
  영랑호라는 이름은 신라 때 화랑인 영랑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졌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영랑이 동료인 술랑, 안상, 남석과 함께 금강산에서 수련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성 삼일포에서 3일 동안 놀고 난 후 신라의 수도 경주로 향하였는데, 영랑만은 이 호수의 풍광에 매료되어 더 머물다 갔다고 한다.
  영랑호는 동해안의 대표적인 석호라는 지질학적 가치, 바닷물과 민물이 드나드는 기수호로서의 생태적 가치뿐만 아니라 고생물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곳이다. 1978년 한국과 일본의 합동조사대가 영랑호의 퇴적물층에서 온전히 남아 있는 꽃가루를 발견해, 1만 7,000년 동안의 우리나라 식생과 기온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고려 말 문인인 근재 안축의 경기체가 『관동별곡』에는 영랑호가 동해안 명승지의 한곳으로 나온다. 조선시대 여러 문인들도 유람기와 한시에 영랑호에 대해 썼다. 지금은 관동팔경에 영랑호가 포함되지 않지만, 관동팔경을 처음으로 지목한 조선 중기 문신 허목은 영랑호를 관동팔경에 포함시켰다.
영랑호 둘레길 ⓒ필자 제공
  영랑호는 조선 숙종 때 문신 오도일이 쓴 『설생전』에도 나온다. 광해군 때 서울 청파리에 살던 설생은 계축옥사를 목격한 뒤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게 된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는 설생과 달리 등용되어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어느 날 영랑호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옛 친구인 설생을 만났다. 설생은 속세와 단절된 이상향인 회룡굴로 친구를 안내했다. 소설 속에 나오는 회룡굴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영랑호는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공간이다. 속세 사람인 관찰사가 다른 세상에 사는 설생을 만난 영랑호는 현실세계와 이상향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조선시대 영랑호를 찾은 문신들은 영랑호의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험한 속세와는 다른 이상향이 영랑호 저 너머 어딘가에 있으리라 꿈꿨다.
비움, 그 자체의 미(美)
  영랑호가 관광지로 처음 등장한 때는 일제강점기 동해북부선이 개통된 이후이다. 1937년 12월 동해북부선 간성~양양 구간이 개통되었다. 서울에서 밤 11시에 경원선을 타고 원산 바로 아래 안변에서 동해북부선으로 갈아타면 다음날 아침 10시경에 속초역에 도착했다. 속초역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영랑호변에는 여름 피서철에 운영하는 캠핑장이 들어섰다.
  1970년대 후반 영랑호 주변은 유원지로, 호수 안은 양어장으로 개발되었다. 호수 주변의 산림은 베이고 골프장과 별장시설이 들어섰다. 호수 안은 양어장이 되어 바다와 연결된 물길이 끊어지고 유료낚시터로 변했다. 영랑호 개발의 결과는 처참했다. 1990년대 중반 호수는 물고기가 살 수 없는 5등급 수질이 되어 심한 악취를 풍겼고, 몸이 휜 기형 물고기가 잡혔다. 호수인근 학교 관정에서는 오염된 지하수가 올라왔다. 호수 부영양화로 여름이면 깔따구라는 작은 날벌레가 극성을 부려 인근 주민들은 창문도 열어놓지 못했다. 결국 속초시는 1994년 영랑호 관리권을 환수하고 호수 수질개선과 복원사업에 나섰다. 지금까지 호수 준설과 하수관로 개설, 자연호안 조성, 하구 도류제 설치, 생태습지공원 조성 등 영랑호 수질개선과 복원에 500억여 원이 투입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급격한 기온변화 등으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영랑호에 얽힌 설화를 조형물로 표현한 영랑호 설화공원 ⓒ필자 제공
  그러나 다시 영랑호 개발을 둘러싸고 지역이 시끄럽다. 속초시가 철새와 백로를 관찰하는 생태탐방로라며 호수 한가운데에 다리와 수중광장을 만들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밤에도 호수한가운데에 사람들이 들어가도록 조명까지 훤하게 밝힐 계획이다. 많은 시민들은 자연호수 안에 인공구조물을 지어 사람들로 북적이면 호수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의 빈 공간을 인공물로 채워왔다. 하지만 자연호수는 채워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비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비어 있는 호수 수면 위에 푸른 하늘이 잠기고 구름이 흘러간다. 해가 저물 때 호수는 분홍빛으로 물들고, 짙은 설악산 그림자가 드리운다. 호수의 반영을 보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물에 비칠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영랑호는 사색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호수 위에 인공구조물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비어 있는 호수의 아름다움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다. 영랑호는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영랑호 주변에는 백로와 왜가리 서식지가 있고, 물가에는 오리와 물새들이 살고 있다. 겨울에는 고니를 비롯해 철새들이 찾아오는데, 그중에는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도 다수 있다. 지금은 아주 귀해진 수달과 삵도 살고 있다. 야생의 동식물도 함께 사는 호수를 굳이 인간들이 나서서 침범해야 할까 싶다.
고대의 유산이자 미래의 공간
  속초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영랑호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에 또 다른 영랑호가 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바다와 접해 우뚝 솟은 구선봉이 보이는데, 구선봉 바로 뒤에 영랑호가 있다. 이곳도 화랑 영랑이 머물다 간 곳이라고 해서 영랑호라는 이름이 붙었다. 속초 영랑호에서 북쪽 5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면적은 속초 영랑호의 2/3정도로 작다. 북한측 동해북부선의 남쪽 끝 역인 감호역에서 1.3km 거리이다. 속초 영랑호는 바다와 맞붙어 있는데, 북한의 영랑호는 해안선에서 서쪽으로 300m 떨어져 있다.
영랑호의 가을 ⓒ필자 제공
  북에서는 소풍을 ‘원족’이라고 부른다. 북에서는 남쪽 영랑호로 원족을 오고, 남에서는 북쪽 영랑호로 소풍을 가는 날은 언제쯤 가능할까? 차량으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수십 년이 지나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남북에 하나씩 있는 영랑호. 우리는 우리대로 영랑호를 잘 지켜내야 한다. 수천 년 이상을 지내온 자연호수를 관광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영랑호는 과거의 유산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통일시대 후손에게 물려줄 미래의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소중한 국토를 훼손 없이 보존하는 것도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슬기가 아닐까.
엄경선
설악신문 전문기자
속초향토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