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읽기
미얀마와 키프로스의 식민과 분단
지중심과 주변 나누는 식민성 극복이
평화프로세스의 열쇠
  
올해는 남과 북이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의 역사로 향할 수 있는 근본적 변화의 틀을 마련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91년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평화프로세스의 밑그림을 함께 그려냈다. 같은 해 남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하며 국제무대에서의 상호공존을 인정했고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세 기둥이 만들어진 역사적 순간이다. 비록 북한의 핵개발로 세 기둥 가운데 하나가 무너져 때로는 위태로운 순간이 반복되기도 했지만 남과 북은 장기간에 걸친 평화프로세스의 여정을 밟고 있다.
내면화된 식민성이 만들어내는 악순환
   그런데 이 평화프로세스는 한반도에 매우 견고하게 박혀 있는 ‘식민성’이라는 커다란 걸림돌을 제거하지 않으면 성취되기 어렵다. ‘식민성’은 외압구조로 작동하는 한 축과 우리 안에 내면화되어 작동하는 또 하나의 축이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외압구조란 이른바 제국의 경영 아래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국제질서의 환경이다. ‘제국’을 정의하는 다양한 요소 중 하나는 질서를 만들어내고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예컨대 일대일로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중국이 그려내는 패권질서와 한·미·일 동맹체제는 물론 쿼드까지 구성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질서 가운데에서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과 평양에서 역사적인 합의를 통해 평화프로세스의 구체적인 원칙과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 정상 간의 합의 결렬과 미국의 대북제재는 남북의 자주적 평화프로세스를 멈추게 할 만큼 강력한 외압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면화된 식민성은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결정권이 상실된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분단체제는 그 원심력에 해당하는 강대국의 입김에 의해 자주적인 판단이 금세 흔들리고 증발한다. 종북, 친미, 친중, 친일 프레임은 이러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 수사다. 식민성의 가장 큰 해악은 공동체 내부의 심사숙고를 통해서 공동체의 비전을 만들어내는 것을 막고, 편 가르기에 의해 갈등과 차별을 재생산하여 식민성이 강화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군부 쿠데타가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는 미얀마의 경우는 이러한 식민성이 그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 영국은 식민통치 과정에서 미얀마의 주류를 차지했던 버마족과 다양한 소수민족 사이를 분열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대동아공영권을 내걸고 아시아를 침략한 일본은 버마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독립운동을 지지했고, 영국은 이에 맞서기 위해 로힝야족을 앞세웠다. 미얀마의 독립운동 역사에는 그 핵심에 버마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술되겠지만, 크게 보면 영국과 일본의 전쟁에 버마족과 로힝야족이 이용되어 서로 죽이며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러한 적대적 관계는 2017년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에 대한 대규모 소탕작전으로 이어졌다. 집단학살로 인해 약 200만 명의 로힝야 인구 중 절반 가까이가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미얀마에는 70%를 차지하는 버마족과 카렌, 친, 카친, 몬 등 130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있지만 로힝야족은 소수민족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채 불법이민자 취급을 받았다.
지중해의 섬 키프로스에서 배우는 평화의 길
  시리아에서 200㎞ 떨어져 있는 지중해의 섬 키프로스 또한 내전을 경험하고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키프로스는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중동과 바다로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다양한 종교와 인종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섬이었다.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1960년에 독립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키프로스 일부는 영국 군사기지가 있는 영국령으로 분할되어 있다.
  1974년 그리스 군사정부는 그리스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친그리스계 키프로스 군인들(에노시스파, ‘에노시스’란 통합을 의미)을 부추겨, 키프로스를 그리스에 병합하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다. 키프로스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이 쿠데타에 침묵하자 키프로스의 헌법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터키가 군사개입을 했다. 결국 키프로스는 한반도와 매우 유사하게 북쪽은 터키가, 남쪽은 그리스가 지원을 하는 분단국가가 되었다. 한 동네에서 사이좋게 지내던 이슬람사원과 그리스정교회는 각각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의 상징이 되어버린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에서는 시민들이 평화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남과 북의 중립지대인 DMZ에는 남북 키프로스인들이 새로운 평화의 집을 운영하며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2003년 남북을 넘나들 수 있는 초소가 처음 열린 이후, 현재는 신분증만 있으면 왕래할 수 있고 외국인도 여권만 보여주면 출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프로스의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분단 트라우마가 식민성으로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식민성의 외압구조로서 터키와 그리스가 여전히 남과 북의 키프로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들어 남북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고 하지만 북에서 내려온 그리스계 키프로스인들과 남에서 올라온 터키계 키프로스인들 사이에는 아직도 내전의 기억과 상실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평화프로세스가 탈식민화의 과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식민성’이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차별과 분단의 심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과정이 흡수통일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는 서독이 중심이 되었고, 동독이 여기에 종속되어 동독인들의 자율성과 자부심에 상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키프로스의 평화프로세스가 조심스럽게 이루어지는 것도 남과 북이 대등하게 상호 존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기 때문이며, 이 과정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미국과 소련의 분할통치라는 외압구조에 크게 영향을 받았지만, 분단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남남갈등은 내면화된 식민성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남남갈등의 식민성을 극복하는 작업과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주변국을 설득하는 작업이 병행되는 다중적 과정이어야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기호
한신대학교
사회혁신경영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