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42021.04

지난 3월 1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가 열렸다. Ⓒ연합

분석


국제무대로 복귀 선언한 미국,
가치외교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세계전략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미국이 추진하는 가치외교의 내용과 한계를 분석한다.



지난 3월 12일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함께 화상으로 쿼드(Quad) 정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

  “미국이 돌아왔다. 외교도 돌아왔다. 동맹도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를, 미국민을 위해 함께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기대하며 중단 없이 나아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언했다. 미국이 국제무대에 되돌아왔음을, 외교를 복원하고 동맹을 복구하여 가치를 앞세우는 미래를 추구할 것임을.

  지난 3월 3일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 명의로 된 ‘국가안보전략 중간 지침’을 발표하며 바이든 행정부의 세계전략을 공개했다. 같은 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미국 국민을 위한 외교정책’이라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우리의 가치를 반영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 기조가 ‘미국 국민을 위한 가치외교’가 될 것임을 공언한 것이다.

  이러한 선언은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3월 13일에는 ‘쿼드(미국과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의 4자 협의체)’ 첫 정상회의, 16일에는 미·일 외교·국방장관 2+2 회의(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 18일에는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 18~19일에는 미·중 고위급 회담을 열고 외교의 실행에 들어갔다.

  과연 바이든 정부의 세계전략은 무엇인가? 블링컨 국무장관이 제창한 ‘가치외교’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러한 외교안보전략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실주의적 국제주의의 복귀와
미국 국민을 위한 외교

  “국민들이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국제 안보 문제와 함께 국내의 불평등과 혼란, 노동자와 정부 사이의 단절 문제를 백악관의 테이블에 동시에 올려놔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국민들이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국제 안보 문제와 함께 국내의 불평등과 혼란, 노동자와 정부 사이의 단절 문제를 백악관의 테이블에 동시에 올려놔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보다 다자주의를 더 강조하는 블링컨 국무장관도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그의 외교연설 ‘미국 국민을 위한 외교정책’이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전염병 대유행 억제 ▲경제위기 극복 ▲민주주의 회복 ▲이민정책 ▲동맹 복원 ▲기후변화 ▲기술 분야의 리더십 확보 ▲중국 대응이라는 8대 외교 과제를 제시하면서 이러한 과제가 국내 과제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교는 국내정치’라고 선언한 것이다. 외교의 성공을 가름하는 시금석도 외교정책이 미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라고 규정했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이 반드시 미국에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미국의 모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미국인의 권리와 보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북한이 블링컨 국무장관은 바이든 정부가 선호하는 정책 수단은 외교적 해결이라고 하면서도 “미국인의 생명과 핵심 이익이 위태로울 때 무력 사용을 절대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목표와 임무가 분명하고 달성가능하며 우리 가치, 법과 일치할 때에만 군사적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효과적 외교를 위해 최강의 군대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선언한 미국의 복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외교노선의 근간이었던 현실주의적 국제주의의 복귀라고도 볼 수 있다.

3월 16일 일본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이 2+2 안전보장협의위원회를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동·남중국해에서 패권 확대를 꾀하는 중국에 대한 공동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연합

자유주의적 제도주의의 복원과
민주주의 실현

  바이든 행정부는 국익을 최우선 순위에 놓는 외교노선을 추진하면서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미국의 국익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 중간 지침’은 “미국인의 삶의 핵심에 있는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고 지켜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미국인 모두의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사회에 가해지는 위협과 싸우기 위해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을 단합시키는 것을 포함하여 해외에서도 미국의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도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그 이유로 안정적인 민주주의가 인권을 옹호할뿐더러 “미국 상품과 서비스의 안정적 시장”이라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한편 ‘국가안보전략 중간 지침’은 권위주의가 도처에서 발흥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민주주의 동맹국들 및 동반자국들과 함께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 인권을 지키고 부정부패와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신기술, 우주, 사이버 공간, 보건, 환경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새로운 합의와 기준을 구축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 이러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지위를 더욱 강화하여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우위를 누릴 수 있게 해 줄 것이라며 ‘가치외교’의 지향점을 밝혔다. 즉 ‘미국의 이익을 진전시키고 미국의 가치를 반영하는 국제기준과 합의들’을 형성하여 미국의 세계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을 일 대 일로 상대하기보다는 다국적 네트워크로 대항하겠다는 것이고, 직접적인 군사력보다는 국제규범과 제도를 형성하는 능력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주의적 제도주의를 추구하겠다는 입장은 일방주의를 내세웠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비된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국력과 군사력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안보전략 중간 지침’에서는 국제 권력분포가 미국에 유리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미국 국가안보의 뿌리라는 점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국력의 기초인 과학과 기술의 기반을 강화하고 사이버안보 등의 기간구조 및 국가안보 능력에 대한 투자를 증대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블링컨 국무장관도 같은 맥락에서 민주주의 동맹국과 동반자 국가들이 ‘승수효과’를 통해서 미국이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게 하는 ‘미국의 독특한 자산’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미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이 지역의 군사력 증강을 추구하는 ‘태평양 억제 구상’을 위해 내년 46.8억 달러를 요청했다. 2021 회계연도 예산의 두 배를 넘는 액수다.

지난 3월 18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미·중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연합

국내외 도전 직면한 가치외교의 미래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외교를 실현하는 데는 미국 스스로가 큰 도전으로 남아 있다. 흑인에 대한 폭력 및 최근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에서 나타나듯 인종갈등이 화약고로 존재하고, 지난 대선에서 보여주었듯 미국 사회는 깊이 분열되어 있다.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고 민주주의적 가치와 절차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전략적 경쟁국으로 규정한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미국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신기술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것도 하루 이틀에 이뤄질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의 동맹국들도 과거의 동맹이 아니다. 유럽에서 떨어져 나간 영국과 아시아에서 고립되고 있는 일본 정도가 미국과 손발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했고, 독일은 미국의 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가스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인도는 쿼드에 한발을 담그면서도 ‘러시아판 사드’로 불리는 S400 미사일 구입 계약을 체결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부심하고 있다.

  또한 바이든 정부가 최근 미얀마 군부가 자행하고 있는 폭압에는 말을 아끼는 대신 중국에 대해서는 유독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서도 ‘가치외교’의 창끝이 겨누는 바가 드러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3월 20일 외교안보전문기자 데이빗 생어의 분석 기사에서 ‘미·러관계는 베를린 장벽 철폐 이후 최악, 미·중관계는 국교수립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냉전시기에 겪었던 관계악화의 사이클이 되풀이될 위험성을 지적했다. 바이든 정부 외교안보팀이 스스로 인정하듯 쉽지 않은 긴 여정의 출발이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