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42021.04

유장하게 흐르는 임진강. 한반도 자연하천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필자 제공

예술로 평화

대립과 평화의 공존,
파주 적군묘지



  한반도 중부지역을 흐르는 대표적인 강은 한강과 임진강이다. 하지만 두 강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수도권을 관통하는 한강은 1980년대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거치면서 기계적인 하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물 위로는 수많은 다리들이, 물 아래로는 각종 도시 인프라 시설과 지하철이 오간다. 강변도 호안석축으로 중무장했다. 이에 비해 임진강은 아직 자연하천으로서의 유장함을 간직하고 있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장대하게 펼쳐져 있기도 하다. 4대강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서울 시계를 흐르는 한강이 뚜렷한 W자를 그리고 있다면, 경기도 파주 일대를 흐르는 임진강은 이와 반대인 M자로 흘러간다. 조용필을 비롯한 수많은 가수들이 한강을 노래했다면, 임진강을 노래한 대표적인 곡은 박세영 작사, 고종환 작곡의 ‘임진강’이다. 남한 출신들이 만들었지만 북한 노래다. 허리가 잘린 임진강의 슬픔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가히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곡이라 할 만하다.


어느 무명인 북한군 묘지.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했다. ⓒ필자 제공

환귀고국을 기다리는 적군묘지
  임진강이 M자를 그리며 흘러가는 곳은 정확하게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일대다. M자의 아랫부분을 37번 국도가 비스듬하게 자르고 지나간다. 37번 국도의 북쪽인 답곡리 55번지에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장소가 있다. 지도 검색으로는 쉽게 찾기 어려운 곳, 초행길에는 놓치고 지나가기 십상인 곳. 바로 적군묘지, 공식 명칭으로는 ‘북한군/중국군 묘지’다. 처음 이름을 들으면 누구라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곳이 있단 말인가.

  그 배경에는 국제 협약이 있다. ‘육전(陸戰)에 있어서의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협약 제17조(사망자에 관한 규정/분묘 등록기관)’가 그것이다. 규정에 의하면 충돌당사국은 적군의 시신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신원을 확인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화장을 금하며 본국으로 이송할 의무가 있다. 이 적군묘지는 이러한 규정에 의해 1996년 7월에 조성된 것이다. 제네바협약 제17조는 잘 지켜지지 않는 모양인지, 파주의 이 묘역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고 한다.

  엄연히 국제협약에 따라 만들어진 묘역이지만, 한국전쟁은 본질적으로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정서적, 심리적 영향력이 현재형인 탓에, 이곳에서는 여전히 이념과 체제의 충돌이 반복되어 왔다. 수많은 중국군의 유해가 정중한 의식과 함께 중국에 여러 차례 반환된 것과는 달리, 북한은 북한군의 유해 반환을 거부해 왔다. 게다가 남파간첩이나 무장공비 등 정규 군인이 아닌 사람들의 유해도 함께 묻혀 있는 탓에, 제네바협약의 범위를 넘어 선다는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만큼 불편하고 아픈 사연이 있는 장소다.

북향으로 놓인 적군묘지 ⓒ필자 제공
전쟁의 참상지에서 평화통일 염원의 길목으로
  막상 이곳을 찾으면 주변의 너른 들판과 잘 정비된 묘역의 상태 덕분에 뜻밖의 고요함과 평화를 느끼게 된다. 묘역은 크게 두 군데로 나뉘어 있다. 제1묘역에는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북한군의 유해가, 제2묘역에는 중국군,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남파된 북한군 등의 유해가 묻혀 있다. 기존의 중국군 유해는 대부분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앞으로도 유해가 발굴되면 일단 이곳에 안장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군 역시 마찬가지다. 이 묘역들은 그 배치가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다. 양지바른 언덕에 묘역을 조성하는 전통적 풍습과 달리 북향으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니 고향을 바라보라는 배려였다고 한다.

  묘비를 하나씩 읽어본다. ‘중국군, 무명인,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북한군 소위 조명환, 1·21 사태 무장공비’, ‘중국군 무명인, 횡성 지구 전투’, ‘북한군, 무명인,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면’. 모두 한국전쟁 당시의 크고 작은 전투의 현장이었거나, 남북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안보 관련 사건들이다. 우리가 아무 감정 없이 대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정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고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이 적군묘지에 대해 한때 ‘죽으면 그만’이라는 한국인 특유의 사생관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하는 설명도 있었으나, 알고 보면 엄연히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문명적 합의의 결과물이 아닌가.

  평화로 가는 길은 멀다. 그 과정에는 밝혀야 할 사실과 청산해야 할 업(業)들, 그리고 무엇보다 다스려야 할 감정의 장애물들이 있다. 그러나 파주 국도변의 이 적군묘지는 그래도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최소한의 인류 보편적 기준을 따라왔다는 살아 있는 증거다. 이런 점에서 이 묘지는 평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의 보루가 아닐 수 없다.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는 하얗게 칠한 비목이 줄지어 서 있는 적막한 곳이었는데, 이후 추가적인 정비사업으로 비목을 묘지석으로 대체하는 등 나름의 품위를 갖추었다. 오후 늦게 임진강 너머로 해가 질 무렵 찾아갈 것을 권한다. 인간의 잔인함과 따뜻함, 대립과 평화, 역사와 개인의 관계를 느끼고 생각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다.


황두진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