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42021.04

지난해 3월 10일 광주 북구의 공동생활가정에서 장애 아동들이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실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연합

연간기획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돌봄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사회가 갈 길을 미래비전 차원에서 모색한다. 코로나19로 드러난 돌봄의 위기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본 기획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협력하여 진행됩니다.

지난해 4월 20일 초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온라인 입학식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

   코로나19 팬데믹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감염병 위기에 맞서 비대면 시대를 예측하고 이에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 위기는 비대면 환경의 가속화 속에서도 사회를 지탱하는 대면 돌봄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K-방역은 무엇보다 필수 대면노동인 돌봄, 보건, 의료부문 종사자들의 강도 높은 노동과 희생, 이에 동참하는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다.

코로나19가 들춰낸 돌봄의 공백
  통상적으로 돌봄은 의존적인 상황의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이런 통념은 인간은 독립적이야 한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의존적이며, 돌보는 사람도 경제적으로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돌봄을 주로 여성들이 가정에서 수행하는 자연스런 성역할로 인식하면서 돌봄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생애 과정에서 돌봄을 필요로 한다. 돌봄 없이 성장하고 활동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미국의 철학자 에바 키테이(Eva Kittay)는 ‘독립적 인간’이라는 전제의 폭력성을 지적하면서, 돌봄과 의존은 인간존재의 필수불가결한 삶의 일부이며, 문제가 있는 사회적 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돌봄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며 요구인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는 우리에게 돌봄이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노동이자 좋은 사회를 만드는 운영 원리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돌봄은 물질적·신체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공감과 배려를 형성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또 확인한 것은 돌봄의 공백과 공적 돌봄체계 구축의 시급성이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던 2020년 5월의 통계를 보면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 일상적으로 작동하던 사회적 돌봄·교육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돌봄의 위기가 심각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육아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기존에 자녀를 직접 돌보던 비율은 13%였지만, 돌봄·교육기관 휴원 이후에는 50%에 육박했고, 긴급 돌봄시스템을 이용한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특히 장애인 복지시설 등이 폐쇄되면서 자녀를 돌보던 보호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작동할 수 있는 공적돌봄체계가 미흡해 돌봄 부담이 가족에게 돌아갔으며, 가족의 돌봄마저 여의치 않은 취약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감염병으로 인한 돌봄의 위기는 모두에게 동일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가족 구성의 차이와 사회계층에 따라 영향이 달리 나타났다.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는 코로나19가 만든 네 가지 계급(①원격근무가 가능한 노동자, ②필수적 일을 해내는 노동자, ③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④잊혀진 노동자)을 제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 가운데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계층의 취약성과 필수노동자의 위험, 가족 돌봄의 공백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났다. 보건복지, 의료 인력의 자녀와 가족, 맞벌이 가구, 한부모 가구, 노인 1인 가구에서 돌봄의 공백이 여실히 드러났다.

  돌봄의 공백과 위기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공통된 진단은 이 위기가 여성과 돌봄의 위기로 표면화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재생산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는 경제활동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환경을 유지하는 돌봄 활동을 통해 재생산된다. 그동안 성장 패러다임을 기축으로 압축적 근대화를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사회재생산에 대한 인식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팬데믹 위기는 그동안 진행된 가족 및 인구학적 변화와 중첩되어 사회재생산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IMF 경제위기에서부터 2008년의 경제위기를 거치며 진행된 지구적 차원의 경제구조조정은 노동시장과 개인 및 가족의 생애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재구조화했다. 출생하여 정규교육을 이수하고 정규직 취업, 결혼, 자녀출산, 정년퇴직, 그 이후 안정된 노후로 설계되던 표준적 생활양식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2020년 10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사회서비스원 돌봄종사자들과 영상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

인구·사회의 구조 변동
  고용 불안정으로 평생직장 개념은 유효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 모두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 강고해졌다. 이와 함께 결혼, 출산을 비롯하여 가족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저출산, 만혼 및 비혼 증가,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 등은 인구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진단돼 왔지만, 노동시장의 변화와 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결혼과 가족의 의미 변화에서 비롯되는 결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고 비혼, 이혼의 증가, 저출산 경향만으로 가족의 해체나 1인 가구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혼이 증가하는 한편 재혼도 늘어나고 있으며, 독자성과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면서도 타인과 맺는 친밀성은 여전히 중시되고 있다. 따라서 가족 구성이 다양해지고 삶이 비표준화되는 가운데 성역할에 기댄 돌봄과 출산장려는 유용성을 잃어가고 있다. 변화하는 시민의 삶보다 뒤처져 있는 사회정책과 제도, 사회문화적인 편견과 관행에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돌봄정책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중장기적 계획을 만들고 한국판 뉴딜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확인하게 된 돌봄공백과 공적돌봄체계의 부족이 주요한 정책의제가 되고 있는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 돌봄의 중요성을 사회정책적 측면에서 진지하게 다뤄야할 필요가 있다. 돌봄은 감염병과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위험에서 개인의 안전을 지키고 사회의 재생산을 지속시키기 위한 필수노동이자 사회운영의 원리이다. 수사적인 차원에서 돌봄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을 넘어 돌봄 일자리를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더 튼튼한 공적돌봄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이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정책 방향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미 국제기구에서는 돌봄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18년 국제노동기구(ILO)의 돌봄노동과 직업에 관한 보고서는 돌봄의 고진로(high road)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것은 미래수요를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이루기 위한 중장기 계획이다. 국제노동기구는 돌봄노동의 낮은 질로 인해 돌봄공백이 발생한다는 문제의식 위에서 돌봄노동이 고용안정과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가 되지 않고서는 돌봄의 고진로로 가는 것은 요원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경우 2030년까지 고진로 돌봄부문 구축을 위해 200만 개 이상의 양질 일자리가 요구된다고 추산하고 있다. 돌보는 사람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대우를 실질적 정책으로 실현시켜야 한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가 제3기 인구정책태스크포스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여성과 고령자의 생산가능인구화를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1인 가구, 비혼동거, 비혼출산, 사실혼 등 다양화하는 가족 형태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제도를 정비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또한 코로나19로 확대된 돌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초등 돌봄 개선, 양성평등 근로환경 구축, 경력개발 등을 계획에 넣었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양적인 일자리 창출 기조를 넘어 지속가능한 사회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목표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사회의 기반은 돌봄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경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