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72022.05.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평화관리가 요구된다. 사진은 경기 파주시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연합

특집

새 정부에 바란다

한반도 평화관리 위한
새 정부의 역할과 과제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도발로 안보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다. 한반도 위기관리를 위한 새 정부의 과제를 진단한다.

지난 3월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 및 ICBM 발사중단을 선제적으로 밝힌 북한의 모라토리엄 선언이 파기됐다. 4월 17일에는 최전방 지역에서 신형전술핵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북한이 전술핵 투발 전용무기에 대한 성능시험을 하고 이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기에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위협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이는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의 전술핵 개발 선언 그리고 올해 4월 5일 김여정 부부장의 대남 핵전투 무력을 통한 타격 위협발언과 맥락을 같이한다. 돌이켜 보면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 비핵화 문제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북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다양한 대화와 논의들이 진행됐지만 북한의 태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한반도에 위기감이 더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엄중한 현실에서 한반도 위기 극복의 과제는 새 정부로 넘어갔다. 출범 직후부터 위기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새 정부의 과제와 역할을 살펴본다.
원칙을 통한 북한 비핵화와 평화관리
첫째, 북한 비핵화를 포함한 모든 한반도 문제는 원칙 있는 관계설정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자 북한의 정책전환을 기대할 수 있는 핵심 조건이다. 그동안 북한이 보여준 행태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고려할 때 원칙에 입각한 전략적 대응방안 모색은 당연하다.

1990년대 초반, 북한 핵문제가 부상한 이후 지금까지 국제사회와 한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으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북한이 핵무력을 체제 생존 보장과 자신이 처한 대내외 국면을 돌파해 나가기 위한 ‘만능의 보검’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핵억제력 강화를 통한 핵보유 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는 유지되기 어렵다. 끊임없는 핵·미사일 개발로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현실에서 핵위협과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대한 압박과 제재는 여전히 유효한 정책수단이다.

북한은 상황변화에 따라 기존의 합의를 무시하거나 자신들의 입장을 바꾸어 왔다. 그동안의 대북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북한이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 기존 합의사항을 파기하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되는 한국 정부와는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한편, 그렇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정부와는 거리를 두었다. 북한에 있어서 남북관계는 상호 불신과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닌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란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북한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더 이상 북한의 행태에 면죄부를 주지 말아야 하며,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비핵화와 개방만이 북한 체제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하도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새 정부는 원칙과 일관성 있는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고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를 조치할 시 대북 경제지원을 위한 국제공조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미동맹 및 자주국방의 강화는 한반도 평화관리에 요구되는 과제 중 하나다.
사진은 지난 3월 9일 한국 순환배치를 위한 미 기갑전투단의 철도 이동 모습 ⓒ연합
동맹 가치 강화와 힘을 통한 평화관리
둘째, 원칙 있는 평화관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미 간 동맹 가치를 강화해 서로 간의 공조가 긴밀히 유지되어야 한다. 동맹은 조약에 의해 일정한 정치적 공동행위를 약속하는 국제협정이다. 한미동맹은 원칙적으로 한국과 미국이 개별적으로 자국의 이해와 판단에 의거해 공동의 의제에 협력하기 위해 맺은 것이다.

동맹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전성과 북한의 행위를 억제하며 국제적 평안을 보장해 전쟁 위협을 감소시켜 나가야 한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취임 이후 한미동맹 강화와 글로벌 가치동맹으로서의 발전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며, 안보 중심의 전통적 동맹관계를 넘어 경제 및 산업기술 협력과 기후변화 공동대응 등의 의제를 아우르는 포괄적 동맹으로 확장해 나가길 바라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미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기에 새 정부에서는 공동의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동맹을 확고하게 다지면서 새로운 국제정세에 맞는 포괄적 한미동맹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힘을 통한 평화관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들은 강력한 힘을 완비했을 때 평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여전히 힘이 좌우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축적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상대의 선의와 우호에 기대기에는 국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국제정치의 현실과 군사력 앞에 협정이나 각서가 무력해질 때가 종종 있다.

남북 간에도 신뢰 구축을 위한 정상회담 선언문을 포함해 문서가 있지만 제대로 이행된 것은 없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 영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의 부다페스트협정이 휴지 조각이 된 것은 평화가 문서나 말로 지켜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군사력을 중심으로 한 힘과 동맹이 나라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근본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때문에 평화관리에는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난 4월 2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 화성-17형이 등장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대화와 압박이 조화된 유연한 접근 필요
셋째,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평화관리가 요구된다. 남과 북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모든 문제를 양측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북한의 태도를 고려하면 대화와 협력뿐만 아니라 압박정책이 조화된 평화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한 억지력이 최대한 유지되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3월 1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처리하되 남북 대화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도발,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단호한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는 늘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4.14.)에서도 윤 당선인은 “언제라도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고 대화채널을 열어놓는 투 트랙으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해 새 정부는 제때에 할 말을 하면서도 유연하게 남북관계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 와중에 북한과 과감하게 소통·교류·협력할 분야는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언론·문화·인적 교류를 확대하고 방송을 개방하며 특히 재난·기후 변화, 산림 협력, 농업·수자원 협력 등을 의미하는 남북 ‘그린데탕트’를 추진해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이런 입장이 북한에 잘 전달된다면 새 정부 초기에라도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미중 갈등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새로운 냉전의 세계적 질서가 구축되고 있는 국제적 현실에서 주변국과의 우호협력을 통한 평화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현재 세계 질서는 각 국가와 기업이 어느 편에 서야만 하는 선택을 강요받는 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외교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관리해야 할 것이다.

현재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관리에 대해 대내외적으로 기대가 크다. 국력의 요소에는 군사력, 경제력과 함께 내부의 국민 통합도 포함된다. 국민들은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 한국 국민은 통합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소중히 지켜온 자유와 번영·안보를 유지하고 세계 리더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새 정부가 이런 국민적 염원을 담아 한반도 평화관리의 새로운 역할을 추구하길 기대한다.

이 수 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