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72022.05.

행호정에서 바라본 행주산성역사공원의 전경

접경지역 사람들

철책을 걷어내는 접경지역
고양시에서 만난 생명과 평화

접경지역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북쪽의 철책, 대규모 군사시설, 적은 인구, 낮은 생산성 등이다. 고양시는 이러한 이미지와 다르다. 신도시에 이어 인구 100만을 넘어서며 특례시가 됐다. 한강하구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가깝게 맞닿아 있지만 교통이 편리해 살기 좋은 도시형 접경지역이다. 그곳에서 평화통일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상을 위협하는 접경지역의 삶
고양시는 1기 신도시로 3호선과 경의선, 2개의 지하철 노선이 관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109만이라는 압도적 인구를 가진 지자체로 지난 1월 13일 특례시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강변에 늘어선 철책과 초소를 보기 전까지는 이곳이 접경지역임을 깨닫기 쉽지 않다. 사실 이마저도 서울과 파주를 잇는 넓은 자유로를 건너지 않는 이상 쉽게 접할 수 없는 광경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시민들은 고양이 접경지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

“지난 해 6월 북한에서 떠내려 온 지뢰가 폭발해 장항습지에서 일하던 환경정화 작업자의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어요.” 하동평 고양시협의회장은 접경지역이 아니면 발생하지 않을 사고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비로소 이곳이 접경지역임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평소에는 접경지역임을 잘 체감하지 못하는데, 북쪽으로 쭉 뻗은 자유로를 운전하다 보면 그대로 북한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북한이탈주민인 이혜란 자문위원도 평소에는 이곳이 접경지역임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유로를 달릴 때면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상상을 한다.
철책을 걷어낸 평화, 철책이 만든 생명
철책은 분단의 상징이다. 그러나 접경지역 고양은 철책을 걷어내며 다양한 평화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고양시 한강하구 철책은 1970년대 북한 무장공비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 설치됐다. 이후 42년간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되며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2012년 고양시는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철책의 일부를 제거하고 초소를 전망대로 보수하여 한강변을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이곳이 행주산성 초입에 위치한 ‘행주산성역사공원’이다. 공원에 들어서면 초소에서 전망대로 탈바꿈한 ‘행호정’을 발견할 수 있다. 위협을 감시하던 초소에서 전망대로 변신한 행호정은 평화를 관망하는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너른 잔디밭과 그 곁을 느릿하게 흘러가는 한강에는 평화의 고즈넉함만 보일 뿐 그 어떤 위협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철책을 제거하고 초소를 보수해 조성한
행주산성역사공원

행주대교 근처에 위치한 행주나루터비.
이곳을 통해 중국 등지와 무역이 이뤄졌다.


고양은 철책을 제거하는 동시에 한편에서는 철책을 보존하며 또 다른 평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분단이 만든 철책은 인간의 왕래를 차단했고 한강하구에 약 60㎢ 면적의 우리나라 최대 내륙습지를 낳았다. 이후 한강하구 습지는 국제적으로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5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 그중에서도 김포대교·일산대교 일대 약 6㎢ 면적의 고양 ‘장항습지’는 전체 면적의 10%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 습지의 70%에 달하는 법정보호 생물종이 출현해 중요한 생태환경적 가치를 지닌다. 이곳의 철책은 단순한 단절이 아닌 자연과 사람의 공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철책의 제거가 평화·통일을 향한 염원의 결과라면 철책의 보존은 자연과의 공생을 통해 또 다른 평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철책 내부 강변에서 벼농사를 짓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곳은 고양시 토지이기 때문에 농작민은 시에 사용료를 내야 하지만 이후에 시에서 수확물 전량을 매입해요. 시는 겨울이 되면 매입한 볍씨를 습지에 뿌려 월동을 위해 찾은 철새들이 체력을 비축할 수 있도록 보살핍니다. 그야말로 사람과 지역사회, 자연과 생물이 모두 공생하는 평화의 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정재훈 민주평통 고양시협의회 간사


고양시 곳곳을 소개하고 있는 정재훈 고양시협의회 간사
통일거점도시, 평화미래도시 고양
과거 행주나루터는 뱃길을 통한 무역으로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자연스레 사공과 중국 상인 및 지역 주민이 어우러져 문전성시를 이루는 소통의 장을 이루었다. 한강 하구를 철책이 가로막으면서 드나듦은 어려워졌지만, 아직 이곳에서 어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행주어촌계에는 현재 33명의 어부들이 등록되어 활동한다. 예로부터 행주어부들은 웅어를 잡았다. 임금님께 진상될 정도로 맛좋은 물고기이다. 요즘 행주어부들은 실뱀장어를 잡는다. 4월에서 6월은 실뱀장어가 잡히는 시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행주대교 아래에서 만난 박찬수 어부는 그물손질에 손놀림이 분주하다. “어제는 날이 좋아서 4시간 조업으로 1,500마리의 실뱀장어를 잡았어요. 한 마리당 3,200원에 팔리는 실뱀장어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됩니다.” 한강하구에 풍어의 계절이 흐르고 있다.

“고양은 자연생태적으로 남북을 잇는 중요한 가교입니다. 장항습지를 찾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보존은 한국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남북의 습지 모두 잘 지켜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물새와 물고기처럼 자유로운 남북 교류의 가교가 되는 고양을 꿈꿉니다.”
- 이은정 (사)에코코리아 상임이사


철책을 보존해 자연생태와 인간의
공생을 유지시킨다.

막사에서 초소로
들어가기 위해 거쳤던 진입로.
현재는 일반에 개방됐다.

한강하구 모습.
허가를 받아야만 조업할 수 있다.


고양시는 어느 곳보다 다채로운 얼굴을 가진 접경지역이다. 군사보호구역, 그린벨트, 습지생태계, 농·어업지역, 물류·공업지역, 구도심, 신도시 등은 분단의 현실에서 제약이 되기도 하고, 가능성을 품은 자원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자원과 사람의 어우러짐을 꿈꾸는 고양은 통일거점도시, 평화미래도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접경지역임을 잘 체감하지 못하며 살지만 여전히 군사보호시설과 규제가 많아 어려움도 있습니다. 하루빨리 남북을 잇는 걸음이 자유로에 가득할 날이 오길 꿈꿉니다. 고양시가 사람중심 도시, 시민행복도시, 지속가능한 도시로 발돋음하면서 통일 한반도의 거점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 하동평 민주평통 고양시협의회장






+ Mini Interview in 고양 +

하동평 (민주평통 고양시협의회장, 거주 26년), 정재훈 (고양시 지명설화해설사, 거주 61년),
이은정 ((사)에코코리아 상임이사, 거주 50년), 이혜란 (국립통일교육원 통일교육강사, 거주 20년)
고양시에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이은정 | 고양시에 주 사무소가 있는 비영리민간단체 (사)에코코리아에 몸담고 있습니다. 생태보전과 생태과학의대중화, 생태교육을 통한 인식증진을 위해 시민생태 모니터링과 전문가 조사·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재훈 | 농협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다 퇴직했습니다. 우연히 행복한미래교육포럼 강의에 참여했다가 고양 토박이임에도 고양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지명설화해설사가 되어 제2의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이혜란 | 남한 정착 20년차 북한이탈주민이며 학생이자 프리랜서입니다. 19개월 아기를 키우는 초보 엄마로 교육학 박사과정 수료 후 논문 작성 중에 있습니다. 2014년부터 국립통일교육원 ‘찾아가는 학교통일교육’ 강사로서 전국 초·중·고교에 출강하고 있습니다.

하동평 | 저는 고양시에서 건설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양시는 개발 가능성이 큰 지역인데 수도권 남부지역에 비해 발전이 더딘 측면이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활성화되면 건설 분야도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합니다.
내 고향 우리 고장의 풍경
이은정 | 어린 시절 고양에는 ‘푸름’이 가득했습니다. 행주산성에 오르면 드넓게 펼쳐진 논과 논 사이를 흐르는 물길, 산 아래 마을과 마을을 잇는 경의선 열차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초여름 개구리 울음소리가 멎기 시작하면 반딧불이가 반짝이며 날아다녔지요.

정재훈 | 한강 철책은 70년대에 세운 것으로 제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없었습니다. 현재 자유로가 된 강둑을 넘기만 하면 한강에 쉽게 갈 수 있었지요. 당시에는 감조가 있고 강물도 맑던 때라 썰물 시간을 맞추면 민물조개를 한가득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혜란 | 초기 거주지 배정 시 추첨으로 고양시에 온 이후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청약에 당첨돼 고양시에 첫 내 집을 마련하게 됐는데요. 살기 좋은 고양에서 앞으로도 쭉 살고 싶습니다.
평화통일을 위한 고양시의 비전은?
이혜란 | 고양은 현재 한국의 북방 접경지역이지만 미래통일 한반도에서는 중심에 위치하게 될 도시입니다. 남북의 사람과 도시와 문화를 잇는 역할을 해낼 고양을 기대합니다.

하동평 | 개성, 평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가장 큰 도시가 바로 고양입니다. 시베리아철도가 연결돼 교통의 요충지로, 신한류국제도시로, 통일부 북한자료센터를 포함한 관련 기관의 이전으로 고양이 평화·경제특례시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접경지역의 한계를 넘어 평화통일의 거점도시로 역할 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동평 고양시협의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고양시협의회
고양시협의회(회장 하동평)의 대표적인 활동은 청소년 평화통일골든벨, 청소년 통일캠프, 고양시민 평화통일 최고위 과정, 북한이탈주민·다문화 가정과 함께하는 평화통일기행 등이다. 고양시협의회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내 다양한 시민들과 함께 통일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