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72022.05.

예술로 평화

예술을 통해 분단의 상처를 보듬다
- 극단 고래 「남북 예술 아카데미」 -

극단 고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중장기창작지원에 선정되어 <고래, 혐오의 물결을 거슬러>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극단 고래는 현재 한국과 지구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혐오의 만연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진영논리, 노사대립, 빈부격차, 세대갈등, 젠더대립 등 이분법적 대립이 갈수록 격화하고 서로에게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언행이 돌출되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으면 인류가 보여줬던 최악의 상황, 전쟁과 파괴 그리고 집단 학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뿌리, 분단에서 찾다
폭력적 언행의 기미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서슴지 않는 강대국들. 그리고 극우 세력의 노골적인 발호와 그 세력을 이용하고 부추기려는 언론과 정치세력들.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는 기후위기 앞에서도 경제성장을 더욱 강조하고 무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자본가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의 논리에 순응하며 경쟁과 대립을 그저 공정이라는 말로 미화하고 치환해 버리는 청년 세대들. 이에 극단 고래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란 질문을 던지며 담론을 만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을까?”

중장기창작사업의 첫해인 2022년 사업으로 <분단 이데올로기, 그 뿌리 깊은 상처를 보듬어>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혐오의 뿌리는 분단 이데올로기에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의 깊은 상처와 공포. 반공 교육에 의해 전후세대 무의식에 깊이 박혀 있는 분단 이데올로기. ‘빨갱이’는 혐오를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남북예술아카데미 포스터

빨갱이가 ‘일베’와 만나 무한증식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혐오 단어들이 양산되며 서로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분단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상처가 그만큼 깊고 크기 때문이다. 그 뿌리 깊은 상처와 공포 때문에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분노가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길을 찾지 못할 때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봐야 한다. 그래서 남북 대립의 뿌리를 찾아가보고자 한다. 이데올로기란 무엇일까. 거대담론이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지금, 이데올로기는 무슨 의미를 가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극단 고래는 북한 관련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는 남북 예술아카데미, 잠수정 속에서 죽어간 북한 군인들을 다룬 연극공연 <고래>, 북한을 공부하는 북한 리터러시, 백남룡의 북한 소설을 각색한 연극 <벗>을 준비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담론은 과거유물 아닌, 현대의 생존문제
남북예술아카데미는 고래 단원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 강연이다. 지난 3월 24일부터 4월 14일까지 매주 목요일 4회 강연으로 이루어졌다. 3월 24일 첫 강연은 김성경 교수의 <갈라진 마음들-분단의 사회심리학>을 통해 분단의 마음과 정동을 분석하고 공동체성 회복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았다. 3월 31일은 전영선 교수의 <북한 문화예술의 특성과 공연예술>에서는 북한 문화예술의 특성과 변천사를 살펴봤다. 4월 7일에는 김정수 교수의 <북한연극-이데올로기를 넘어>는 북한 연극의 변천과정을 따라갔다. 4월 14일 진천규 통일TV 대표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에서는 사진으로 평양 시민의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북한 관련 전문가들의 강연은 북한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해당 강연들은 북한 관련 연극을 준비하는 고래 단원들의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시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바람으로 준비했다. 특히 책으로도 출판돼 있는 김성경 교수의 <갈라진 마음들-분단의 사회심리학>에서는 극단 고래가 고민하고 있는 ‘한국 사회 내 대립·혐오의 뿌리가 이데올로기 대립에 있다’는 명제에 대해 사례와 실증을 들어 명확하게 분석해 주어 많은 도움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이데올로기 대립이 다시 살아나고 신냉전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만나는 한반도는 위기의 땅이기도 하지만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단선이 아직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분단선을 넘어 서로의 손을 맞잡는 순간 그 거대한 대립의 벽이 무너질 것이다.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면 예술이 앞장서서 그 물꼬를 틔워야 한다.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철 지난 분단 이데올로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반드시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시대적 생존의 문제다.

이 해 성 극단 고래 대표,
남북연극교류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