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72022.05.

지난해 9월 6일 케냐 공항에 하역되는 ‘미국 기증’ 코로나 백신. 미국은 코백스(COVAX)를 통해 모두 176만 회분을 케냐에 공급했다. ⓒ연합

분석

팬데믹 시기
글로벌 보건외교와 북한

- 상호주의 보건협력으로 인도적 상황 개선해야



*이 글은 필자의 연구논문, Dong Jin Kim and Andrew Ikhyun Kim (2022), ‘Global Health Diplomacy and North Korea in the Covid-19 Era’, International Affairs , 98: 3에서 제시된 연구 결과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힌다. (https://doi.org/10.1093/ia/iiac048)

상호의존성이 높아져가는 세계화 시대에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외교적 노력이 필요할까. 글로벌 보건외교 관점에서 해법을 모색한다.

현재 북한 상황은 팬데믹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대응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준다. 고난의 행군이라 불린 1990년대 기근 발생 이후 한국 구호단체들과 국제기구들은 북한 취약계층 주민의 건강을 위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영양 결핍, 전염병 대응 등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인도적 지원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2021년 북한의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인한 국경 봉쇄,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포괄적인 국제 경제제재의 여파로 모든 국제 구호 활동가들이 북한에서 철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과 같은 저소득 국가에 대한 지원활동은 인도적 차원을 넘어 ‘글로벌 보건외교(Global Health Diplomacy)’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팬데믹 시기, 점차 강조되는 글로벌 보건외교의 필요성
국경을 넘어 인도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국가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인간 존엄성을 위한 도덕적 의무이기에 국제정치와 인도주의는 분리된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인간의 건강문제는 국가이익 측면에서도 중요한 일부분이 됐다. 상대국 국민의 건강을 위한 인도주의를 넘어 자국민의 건강을 위한 국가이익 관점에서 상호주의 보건외교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 사례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백신외교이다. 1970년대 미국은 천연두 박멸 프로그램을 위한 재원의 대부분을 제공하고 소련은 백신을 제공하는 등의 협력활동이 있었다. 이 사례는 글로벌 보건외교가 인도주의와 국제정치가 별개의 영역이 아닌 상호보완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보건외교 담론은 단일 국가적 조치만으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전 지구적 위협을 해결할 수 없게 된 현시기에 특히 적합하다. 인도주의가 국가 정체성을 넘어 모든 인간에 대한 전 지구적 도덕 공동체를 옹호하는 것이라면, 글로벌 보건외교는 모든 인간이 국경 안팎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식하에 상호주의적 국제 보건협력을 제안한다. 다시 말해 다른 국가 국민의 건강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곧 자국민의 건강을 위한 국가이익 차원의 외교활동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악화하는 북한의 상황
2020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인구의 약 40%(1,010만 명)가 식량안보 위협을 겪고 있고, 5세 미만 어린이의 영양 결핍도(약 20% 만성영양실조, 3% 급성영양실조) 및 산모 사망률(10만 명당 65.9명 사망)에서도 심각한 인도적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위 보고서는 1년 내 최대 1만 6,000명의 북한 주민이 결핵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코로나19 팬데믹은 북한의 인도적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2019년 6월 14일, 유니세프 평양사무소 직원들이 북한 황해북도 협동농장에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대북 인도지원 재개는 북한 내 백신 접종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연합/조선중앙통신

북한은 2021년 12월까지 4만 9,941건의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했고 확진자는 없다고 주장한다. 보고되지 않은 확진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보건 분야 전문가들은 일단 북한이 극단적인 봉쇄조치로 코로나19 관련한 직접적 피해를 줄인 것으로 본다. 하지만 강력한 코로나19 조치로 북한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따라 식량·의약품·생필품 부족, 결핵 등 전염병 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2년 북중 간 화물운송으로 국경 봉쇄가 다소 완화됐지만 대북 인도지원 재개는 북한 내 백신 접종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21년 10월 유엔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Tomás Ojea Quintana)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국제기구의 철수와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인도적 상황 악화에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고 전 지구적 보건위기 인식 아래 국제적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상황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물론 북한 당국에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는 그 의도와 다르게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을 제한시키고 북한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상당한 이차적 영향을 주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 면제신청 절차 수립 등과 같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의 여러 개선 노력에도, 코로나19 관련 지원을 포함한 국제기구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여전히 대북 경제제재의 영향 아래 제한받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인도적 상황 개선은 인도주의적 차원을 넘어 국제 외교적 해결방안이 필요한 실정이다.
상호 국가이익에 기반둔 대북 보건협력 추진해야
북한은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 이후 인도적 지원 수용에 유보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일례로 2021년 코벡스는 코로나19 백신을 북한에 할당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경험한 북한은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공여국의 요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공여국과의 역학관계에서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특히 코벡스 프로그램의 경우 최대 인구의 20% 접종 분량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 인구가 부스터샷 접종을 할 수 있는 백신 분량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북한은 코벡스 프로그램을 위한 국제기구 인원의 방북을 쉽게 허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인도적 상황 개선은 북한 주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광범위한 의료 지원 재개에 달려있다. 코로나19 백신 분량 확보뿐만 아니라, 지원활동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대북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포괄적 면제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 민간단체 및 국제기구들은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는 구호에 따라 북한 취약계층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촉진하고 대북제재가 완화되도록 국제정치와 인도주의의 분리를 주장해 왔다. 하지만 국제관계 관점에서 공여국이 자국의 이익보다 자신의 관할권 밖에 있는 주민의 건강위기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과 미국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지만 경제제재를 통한 국가안보 이익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삼아 왔다. 이에 따라 한국 민간단체들과 국제기구들은 팬데믹 시기를 맞아 개별국가 대상의 인도적 지원을 넘어 전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외교활동을 통한 북한의 인도적 상황 개선에 주목하고 있다.

공여자·수혜자가 분명히 구분되는 인도적 지원과 달리 글로벌 보건외교의 접근법은 보건 원조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도덕적 의무와 더불어 국가이익을 위해 글로벌 위기에 대처하는 상호협력의 관점으로 재구성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백신 제공을 포함한 대북보건협력은 잠재적으로 새로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급증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공여국 국민에게도 직접적인 건강상의 이점이 있다. 백신공급부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북한 내 코로나19 확산과 역내 불안정성은 북한의 이웃 무역국인 중국·러시아뿐만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인 한국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상호 국가이익에 기반을 둔 대북 보건협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를 걷는 북한 주민들. 공여자·수혜자가 분명히 구분되는 인도적 지원과 달리 글로벌 보건외교의 접근법은
보건 원조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도덕적 의무와 더불어 국가이익을 위해 글로벌 위기에 대처하는 상호협력의 관점으로 재구성한다. ⓒ연합

대북 보건협력은 저소득·고소득 국가 간 백신 불평 등을 해결하려는 글로벌 책임에 기반을 둔 협력활동에 포함될 수도 있다. 2021년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세계는 약 110억 회 분량의 백신을 생산했지만 저소득 국가 국민의 경우 단 7%만이 1회 접종을 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코로나19 관련 대북 보건협력은 국가이익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정의실현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국제활동이다.

글로벌 책임에 기반을 둔 상호주의 보건외교는 전통적인 공여자·수혜자 간 역학관계에 대한 북한의 우려도 해결할 수 있다. 글로벌 보건외교의 틀에서 코로나19 관련 보건협력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수혜자 입장이 아니라 북한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국 국민은 물론 타국 국민을 보호하는 글로벌 책임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과 같은 국가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국가이익을 위한 우선과제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구호처럼 신종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등장할지도 모를 위협의 국제화 시대에 인도주의와 국가이익은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영역이 됐다. 상호의존성이 높아져 가는 세계에서 글로벌 보건외교 활동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이 하루빨리 개선되길 기대한다.

김 동 진 트리니티칼리지더블린
ISE평화화해학 시니어리서치펠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