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72022.05.

평화사랑채

남북이 하나 될 그날을 위해
한반도 수어로 평화통일의 초석을 다지다

데프누리(DeafNuri)의 데프(Deaf)는 영어로 ‘농인’을, 누리는 순우리말로 ‘세상’을 의미한다. 모든 농인이 행복할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데프누리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을 바탕으로 농인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하고, 목소리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20년 7월 구성됐다. 현재 데프누리는 남북 평화통일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남북 수어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
농인에게도 필요한 평화·통일
“여행 가이드가 하는 말은 잘 못 알아듣겠어”, “여행책이 온통 비장애인 위주로 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남더라”, “북한이 우리와 같은 한민족 국가라고?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어.”

위 내용은 농인에게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인 ‘정보접근권’에 대한 제약으로 생기는 일 중 하나다. 실제로 농인들은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여행을 즐기지만 대부분의 여행상품은 비장애인들의 수요에 맞춰져 있어 농인을 위한 여행 콘텐츠와 정보가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필자는 2019년 남미 여행 중 만난 독일 농인에게 북한 여행기를 듣게 됐다. 독일 농인은 북한 여행이 흥미로운 건 사실이었으나 가이드가 비장애인이어서 투어 등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독일 농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남북 분단국가에 사는 한국 농인을 위한 북한 여행책이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곧바로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남북 수어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20년 당시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북한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식이 증가하고 있었고 통일을 꺼리는 사람도 늘어갔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이 남북한 모든 국민이 달성해야 할 민족적 과제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국내 곳곳에서 평화통일 문제가 우리 일상의 관심사가 되도록 교육, 북한 밀키트 사업, 남북 언어 연구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농인을 위한 남북 사업(아이템)은 부재했다. 수어를 모국어로 하는 많은 농인의 정보접근권도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다.

농인은 ‘눈으로 잘 보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만큼 SNS상에서 북한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각해 북한을 적으로 인식하고 부정확한 이해를 갖기도 한다. 농인의 정보접근성 보장을 통해 북한이 우리와 같은 한민족 국가이며 함께 살아갈 공동체로 인식할 수 있도록 남북 수어 사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남북 언어 차이에 대한 활발한 학문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농인과 같은 언어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도 필요하다. 그러나 남북 수어 차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로 남북 분단 70년의 세월 동안 남북의 수어가 따로 발달해왔기 때문에 같은 단어도 남북이 다른 수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데프누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남북 수어 간 소통성 강화를 위한 활동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현재 서점에 진열된 도서들 사이에서 수어로 된 여행책 한 권조차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남북 수어로 된 여행 회화책 발간’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후 2021년 대한민국 청년 평화경제 오픈랩 프로젝트*에 ‘남북 수어로 된 여행 회화책’ 아이디어를 제시해 대상을 받았다.

* 한국 청년 스스로가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에 기여할 수 있는 미래 의제와 아이디어를 제시하자는 취지하에 기획된 프로젝트

남북 수어로 평화를 그리다
농인은 음성언어에 해당하는 문자언어 습득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농인의 제1언어인 수어로 된 책을 만드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 데프누리가 구상중인 남북 수어 회화책은 북한 각 지역의 주요 관광지를 4~5개 챕터로 분류해 남한 수어로 설명한다. 회화를 ‘조선손말(북한 수어)’로 볼 수 있는 QR코드와 조선손말 일러스트가 삽입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북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자 질문형 표지를 삽입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도록 만들어 일상생활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실천 방안을 찾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감사합니다’ 남한 수어

‘감사합니다’ 조선손말


농인이 수어라는 언어 체계를 통해 북한을 이해하고 통일에 대해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이를 농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남북 수어 여행 회화책으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작년 11월 중 나온 샘플북을 바탕으로 현재 업데이트 작업을 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 초쯤 펀딩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데프누리는 또 다른 남북 수어 아이템 확장을 위해 법인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에는 남북 농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무장애여행을 확장해 남북 관광 수어통역사를 양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현재의 ‘남북 수어 여행 회화책’은 완성작이 아니다. 조선손말사전을 근거로 제작했고, 북한 농인 당사자의 관점이 완전히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후 북한 농인과의 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것이다. 그야말로 남북한 평화의 시대가 열렸을 때 남북 농인 평화교류의 기초가 될 것이라 믿는다.

임 서 희 데프누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