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평화의 길
전쟁의 상흔 위에
평화의 염원을 세운 오산
경기도 오산시는 한국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지나간 기념비적 현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쌀로 말을 씻기는 기지를 발휘해 왜군으로 하여금 물자가 풍부한 곳이라는 오인을 하게 만들어 왜군을 물리친 유명한 일화가 담긴 ‘독산성과 세마대지(사적 제140호)’가 바로 오산에 있다. 뿐만 아니라 오산은 6·25 전쟁사에 있어서도 깊은 가치를 남긴 곳이다.
신성·충효·지혜·용맹의 도시 오산
오산의 역사책 『오산시사』에는 오산의 지명에 대한 여러 유래가 전해진다. 예로부터 까마귀가 많아 오산(烏山)이라 불렸다는 설. 예전에는 서해 바닷물이 오산천에 유입돼 자라(土鰲)가 많이 살아 오산(鰲山)으로 불리다 일본인들이 오산(烏山)으로 표기하면서 굳어졌다는 설. 현재 오산시 북동쪽 화성군 동탄면에 오미(梧美)라는 오산리(梧山里)가 있었는데 경부선 철도 개설 당시 오산(烏山)역 역명으로 가져다 썼다는 설이 그것들이다.
이 중에서 까마귀가 많아 오산이라 불렸다는 설이 가장 합당해 보인다. 까마귀의 상징성이 오산의 정체성과도 맞닿기 때문이다. 까마귀는 고대 삼한시대 솟대의 세 마리 새 중 한 마리로 천손을 상징했으며 사람과 하늘을 잇는 신성한 새였다.
고사성어 ‘반포지효(反哺之孝)’도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까마귀의 효성’에서 유래했다. 까마귀는 지혜가 많을 뿐더러 맹금류로도 분류돼 용맹성도 갖추고 있다. 산(山)은 위로는 하늘과 통하고 아래로는 세상과 연결되므로 이 모든 상징을 적용하면 오산은 신성(信城), 충효(忠孝), 지혜(智慧), 용맹(勇猛)의 도시가 된다.
통일의 염원으로 가득 찬 죽미령평화공원
죽미령전투, 전쟁의 운명을 가른 6시간
오산은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이 북한군과 최초로 격전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다. 유엔군 격전 최초의 6시간은 전쟁의 향배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열흘 만인 7월 5일. 지금의 오산시 죽미령에 진지를 구축한 유엔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경부국도(지금의 1번 국도)를 따라 이동하는 북한군 전차와 보병부대에 곡사포를 발사했다. 유엔군 지상 병력의 투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전투는 유엔군의 패배로 끝났으나 거침없이 남하하던 북한군은 6시간에 걸친 유엔군과의 교전 이후 전열을 가다듬는 데만 열흘이 넘는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패배한 전투였다는 이유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죽미령전투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던 전투’로 재평가되고 있다.
죽미령전투는 미군의 낙동강 방어선 구축과 반격을 시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의미 있는 전투였다. 유엔 창설 이후 유엔군이 첫 참전했던 죽미령전투는 유엔의 기본정신에 입각해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결단이었다는 점에서도 그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
죽미령평화공원 내에 위치한 (신)유엔군초전기념비
통일의 염원으로 채운 평화 플랫폼, 죽미령평화공원
죽미령전투 70주년(2020.7.5.)에 개장한 죽미령평화공원은 6·25 전쟁 당시 북한의 침략에 맞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유엔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1955년 미 제24사단에 의해 세워진 (구)유엔군초전기념비를 비롯해 (신)유엔군초전기념비, 유엔군초전기념관과 스미스 평화관을 아우르는 죽미령평화공원에는 평화놀이터, 평화마당, 남하하는 북한군을 확인하는 스미스 중령이 서 있는 디오라마 전망대, 항구적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대형 태극기 등이 자연과 어우러져 치유·회복·화합의 공간을 이루고 있다. 특히 미래 세대에게는 죽미령전투의 기억과 체험을 제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민주평통 오산시협의회는 죽미령평화공원에 평화동산을 조성해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지역 평화통일 플랫폼으로 만드는 한편, 스미스 평화관을 통해 지역사회 통일여론 확산을 위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죽미령평화공원 내에 위치한 스미스 평화관
평화와 통일을 향한 발걸음
남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는 지금의 휴전 상태를 딱히 체감할 수 없겠지만 휴전이란 언제든 전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기에 전쟁의 위협은 보이지 않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군사 도발 및 크고 작은 국지전이 6·25 전쟁 이후 지금까지 수천 회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종식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간의 화해·협력을 다지자는 것이 바로 종전선언이다.
종전선언의 대표적 사례는 이집트·이스라엘 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1978.9.17.)이다. 당시 미국 카터 대통령은 워싱턴 근교 캠프 데이비드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초청했다. 양측은 카터 대통령의 중재에 따라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조약을 조인(1979.3.26.)했다. 이후 1982년 4월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 지역이 이집트에 반환되며 합의사항이 실현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2021.9.21.)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자유와 평화를 기약하는 일이다. 고귀한 희생이 담긴 전쟁의 현장에 서서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 자유 수호와 통일의 염원 그리고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한다.
죽미령평화공원 내에 위치한 거울연못
오산 시민과 함께한 ‘죽미령평화동산 조성’ 기념촬영
송 진 영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오산시협의회 여성분과위원장,
총신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