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72022.05.

북한은 태양절을 앞두고 4월 11일과 13일에 동평양 송화거리와 보통강변 강루동에 살림집을 준공했다. 사진은 동평양 송화거리에 건립된 초고층 아파트 ⓒ연합/조선중앙TV

북한포커스

4월 기념행사로 본 북한

김정은 체제 10년
성과 과시하며 핵무력 강조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4월 15일 태양절과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기념행사를 통해 김정은 체제 10년을 진단하고, 북한이 가고자 하는 길을 전망한다.

김일성 주석의 110주년 생일 행사가 올해도 북한 전역에서 성대하게 진행됐다.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태양절로 공식 지정한 것은 그가 사망한 지 만 3년이 되던 1997년 7월이다. 후계자 김정일 위원장이 전임 수령을 태양의 반열로 승격시키는 것으로 제도적 권력승계를 한 것이다. 동시에 김일성 주석을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 즉 북한 역사의 출발선으로 규정하고 그가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 연호를 제정했다. 이 전통은 북한의 새로운 권력승계 제도가 되어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고 그 후계자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하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적용됐다. 다만 이때는 3년 탈상이라는 유예기간을 두지 않고 김정일 사후 첫 생일을 곧바로 광명성절로 제정했다.

태양절은 김일성 주석을 기리는 날이다. 하지만 죽은 자의 업적과 유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책임과 권한은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따라서 태양절 행사의 주인공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그는 김일성 시대의 업적과 유훈을 자신의 시대정신에 맞게 해석하고 평가하면서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수령의 지위를 더욱 굳히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김정은 위원장의 당권 승계 10주년이자 조선인민혁명군(항일빨치산부대) 창건 90주년이다. 이를 계기로 당과 군 전반에 걸친 김정은 체제의 성과와 위기극복의 업적을 더욱 부각시켰다. 대외적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고강도 봉쇄 3년 차, 하노이 노딜과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대북제재의 지속 및 북미관계 정체,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우크라이나 전쟁 등 환경변화도 반영됐다. 태양절 계기 행사와 이에 담긴 메시지는 김정은 체제의 현실인식과 전략, 의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창이기도 하다.
태양절 계기 국제교류 재개로 전통 우방과 친선 강조
2020년 코로나19 유행 이후 북한은 국경 완전봉쇄 등 초강력 방역정책을 유지하면서 태양절 기념행사도 축소해 왔다. 하지만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올해 110주년 기념행사들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제외하고는 코로나19의 영향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일성광장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참가한 가운데 중앙보고대회와 평양시민들의 대규모 군중시위, 즉 민간행사가 진행됐다. 핵전력을 포함 무장력을 과시하는 군 열병식은 열흘 뒤인 조선인민군창건 90주년 행사로 분리했다. 이밖에 김일성광장에서는 주민 수만 명이 참여한 대공연 ‘영원한 태양의 나라’가, 같은 자리에서 청년학생들의 경축야회(무도회)와 축포야회(불꽃축제) 등 대규모 축전이 성대하게 열렸다.

코로나19 이후 발이 묶였던 북한 주재외교관 등도 태권도 경기를 관람하는 등 태양절을 계기로 북한 내 활동을 허락받은 모양새다. 짝수 해마다 열리던 태양절 기념 국제 예술행사인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행사도 2018년 이후 4년 만에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성대하게 개최됐다. 30여 개국 60여 예술단체가 자국에서 태양절을 축하하는 음악·무용·교예 공연을 녹화해 보내왔다. 공연에는 김일성·김정은을 찬양하고 북한과의 친선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됐는데 북한 텔레비전은 태양절 축제기간 중 하루 1~2시간씩 공연을 방송하며 김정은 체제의 국제적 위상을 과시했다.

특히 중국·러시아·베트남 등 북한의 전통적인 사회주의 우방국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예술축전을 지원했다. 중국의 후허핑(胡和平) 문화여유부장(장관급), 러시아의 올가 류비모바 문화부 장관 등은 국가를 대표해 직접 축하 메시지 영상을 보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부쩍 친밀해진 북러 양국 관계가 4월 행사를 계기로 더 돋보였다. 이번 축전에는 무려 17개의 러시아 단체가 참가했다. 때마침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3주년(2019.4.24.~27.)을 맞아 당시 기록영화를 재방송하며 두 나라의 친선을 과시했다.

북한은 태양절 110주년을 맞아 ‘제32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을 지난 4월 10일부터 20일까지 진행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10일 방영한 중국동방연예집단의 공연 모습 ⓒ연합/조선중앙TV
살림집 준공식으로 김정은 체제의 우월성·정당성 다져
태양절 축제의 정점은 4월 11일과 13일에 잇달아 열린 두 군데의 살림집 준공식이었다.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동평양 송화거리에는 80층 초고층 아파트를 포함한 1만 세대 미니 신도시급 아파트 단지가 착공한 지 불과 1년 만에 들어섰다. 김일성 주석의 관저가 있었다는 보통강변 경루동에는 넓은 테라스를 갖춘 800세대의 호화 저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두 단지 모두 김정은 위원장이 부지선정, 설계, 시공의 전 과정을 지도하고 신도시 이름도 직접 지었다.

북한 당국이 주택단지 준공에 부여하는 의미는 주민들의 주생활 해결이라는 본질을 훨씬 능가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2016년 제7차 당대회 이후 5년간의 경제성과가 기존 목표 대비 현저히 미달됐음을 시인하고 5개년경제목표를 새롭게 제시했다. 구체적 수치로 제시된 목표가 평양에 매년 1만 세대, 5년간 총 5만 세대의 살림집 건설이다. 이번 살림집 건설은 1차 년도 계획 초과달성의 성공을 증명한 것이다. 이는 만성적 경제난, 미국과의 대결, 대북제재,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과 이에 따른 국경 완전 봉쇄라는 다중의 위기에 위축된 주민들에게 김정은 체제의 정당성과 통치방식의 우월성, 위기극복 능력, 효용성을 시위하는 대형 정치이벤트인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제8차 당대회에서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을 3대 이념으로 제시했다. 당과 지도자는 백성을 하늘처럼 받드는 이민위천 애민정신으로 일하고, 주민들은 당과 지도자 중심의 일심단결로 뭉치며, 외부에 기대지 않고 자력갱생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내용이다. 이 3대 이념은 이번 태양절 기간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했다. 보통강변의 경루동 주택은 과거 김일성 주석의 관저를 인민들의 주택단지로 내놓았다는 점에서 이민위천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평양시 주택건설 2차 년도 대상인 화성지구는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인근에 건설 중인데 이 역시 ‘태양의 성지’를 인민에게 개방하는 애민정신의 또 다른 상징이자 김정은 노동당의 정당성으로 선전될 것이다. 또한 공로자들에게 주택이라는 가시적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충성, 일심단결, 자력갱생을 촉구하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지난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는 태양절을 맞아 청년학생들의 경축야회 및 불꽃축제를 진행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4·25 열병식 통해 핵공격 능력과 국방력 과시
태양절 축제가 북한 주민들을 향한 내부 정치행사라면 이어진 4·25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행사는 북한 내부와 동시에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를 겨냥해 특별히 준비된 대형 이벤트였다. 대내적으로 북한주민들의 안보불안을 잠재우고 체제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핵무력을 중심으로 한 국방력을 과시한 것이다. 심야에 하늘과 지상에서 화려한 조명을 동원한 쇼가 펼쳐졌고 북한의 신형 무기들이 총출동했다. 특히 남한과 미국 본토를 목표로 하는 다양한 사거리와 종류의 핵투발수단들이 총동원됐다.

지난 4월 3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남측의 선제 공격론에 대응해 자신들도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다며 이른바 핵교리의 일부를 공개한 데 이어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과 미국에 노골적인 경고장을 보냈다. 국가의 근본이익이 침탈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북한이 지난해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강조한 핵무력 강화노선을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맞서 핵무기 사용으로 위협하고, 미국도 핵무기 사용의 범위를 확대하는 추이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한국의 새 정부 출범과 미국 바이든 행정부를 겨냥한 공격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북한은 한때 좌천됐던 리병철을 권력의 핵심인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복귀시켰다. 5인 체제를 유지했던 상무위원회에 군부 인사 1명을 추가해 향후 건설과 국방에서 군의 역할을 강화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통치 성과 과시했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 산재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김정은 체제는 4월의 두 행사를 통해 체제 내부의 단결과 자력갱생, 핵무력 증강, 중국·러시아 등 사회주의 우방들과의 협력을 통해 악화된 국제환경 속 생존전략을 보여줬다. 대내적으로 주택건설, 식량위기 대응 등 가시적 성과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노동당 통치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당과 국가, 근로단체 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실력을 증명하는 김정은 스타일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핵문제, 안보위기,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생존 및 발전전략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북한은 사상 교양과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외부 정보를 더욱 차단하는 방식으로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방역 통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정상적인 대외활동을 위한 백신 계획도 현재로서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북미 간 대립이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결구도로 확대되는 등 한반도 정세와 여건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북한은 4·25 열병식에서 과시한 공세적 핵전략의 의지를 입증하기 위해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이후 5월 하순 첫 한미정상회담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떠들썩했던 4월을 보내고 새로운 전기를 맞는 5월이 한반도 정세의 또 다른 분수령으로 주목된다.

김 현 경 MBC 통일방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