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창
시대에 맞춰 변화를 시도하는
북한의 쿡방
쿡방(요리 방송)과 먹방(먹는 방송)은 흥행을 보증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면서 집에 있는 재료로 요리하는 쿡방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대리만족을 주는 먹방은 이제 친근하게 느낄 정도로 익숙한 장르가 됐다. 먹방(mukbang)은 2021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될 만큼 외국에서도 이슈다.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는 관심을 받는 쿡방과 먹방, 북한에서는 어떨까?
쿡방은 있지만 먹방은 아직
북한에도 쿡방과 먹방이 있을까? 북한에 쿡방은 존재하지만 먹방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2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북한을 외부 식량지원이 필요한 나라로 다시 지정했을 정도로 북한의 식량문제는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중앙TV를 통해 먹방을 방영하는 것은 북한의 현실 공감능력 부재라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게 하겠다”는 1962년 김일성 위원장의 약속은 60년이 넘도록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전까지 북한에서 먹방을 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에서 방영하는 쿡방은 예능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쿡방 TV 프로그램의 제목은 <사회문화상식>이다. 요리를 재미로 접하기보다 열심히 공부해야 할 대상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제목이다. 실제로 <사회문화상식>은 요리와 관련한 각종 정보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로그램 제목에 걸맞게 관련 분야 전문가가 중간에 식재료의 효능, 건강 상식 등을 진지하게 설명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쿡방과 먹방을 예능으로 인식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북한 쿡방은 다소 지루하거나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북한 쿡방은 1981년 KBS에서 방영한 <가정요리>나 동년 MBC에서 방영한 <고두심의 오늘의 요리>란 요리 프로그램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사회에서는 요리를 여전히 여성의 전유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쿡방은 주부를 주요 시청자로 삼고 있다. 1981년 남한 요리 프로그램이 요리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자 주부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1981년 당대 남한과 2022년 현재 북한의 요리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북한 쿡방의 원조, <사회문화상식> ⓒ조선중앙TV
기존의 틀을 깬 쿡방, <료리상식> ⓒ조선중앙TV
북한 쿡방, 무엇을 요리할까?
북한 쿡방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원조 쿡방인 <사회문화상식>과 최근 쿡방인 <료리상식>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드러난다. 김정일 시대의 쿡방은 요리를 하는 요리사의 손에 집중한다. 요리 방법을 시청자에게 최대한 잘 전달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반면 김정은 시대의 쿡방은 이전과 다르게 요리사와 진행자가 함께 요리를 하며 음식에 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출연진 간 상호소통 방식이 이전의 딱딱한 느낌과는 달리 보다 자연스럽고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남한에서는 프로그램별로 언제든 쿡방을 골라 볼 수 있지만 북한은 이와 다르게 쿡방에 제한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 북한에서 쿡방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일요일 오후 2시를 전후하여 주로 방영된다. 흥미와 재미가 없는 TV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외면 받는다는 사실을 안 것일까. <사회문화상식>의 일부로 방영하던 쿡방 <료리상식>을 2020년 독자 프로그램으로 신설했다. 연기자 출신 아나운서인 김은정의 진행으로 프로그램 분위기가 한층 밝아지고 구성도 새롭게 바꾸었다.
<료리상식>에서는 일반 가정음식과 민족요리를 주로 다룬다. 떡국, 통배추김치, 국수, 순대, 녹두지짐 등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들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남과 북의 요리 방법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게다가 체제 선전·선동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료리상식>에는 정치적 색채가 전혀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최근 북한 쿡방을 보면서 낯섦에서 오는 이질감보다 낯익음에서 오는 동질감을 더 느끼는 이유다.
북한 쿡방에서는 메기탕, 돼지고기 전골, 낙지숙회, 신선로, 김밥 등과 같은 고급 요리도 다룬다. 1980년대만 해도 남한에서 김밥은 소풍이나 운동회가 있는 특별한 날에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북한에서 김밥은 여전히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1981년 남한 요리 프로그램에서 다룬 식재료는 쇠고기, 햄, 치즈 등과 같은 고급 식재료였다. 당시 서민의 일상과 거리가 먼 값비싼 식재료로 만든 요리는 시청자의 공감을 사지 못했다. <료리상식>이 북한의 현실을 담아 내지 못하고 있는 괴리감도 과거 남한 요리 프로그램과 비슷한 부분이다.
최근 북한 쿡방은 과거와 달리 새로운 구성을 갖춰 탈바꿈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조리법에 초점을 맞춘 본래의 취지는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료리상식>의 내용은 당분간 획기적으로 바뀌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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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승 호
아주대학교 교양대학 겸임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