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72022.0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월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진단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국민 통합

국민의 이해와 참여를 바탕으로 한 대북·통일정책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대북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살펴보고,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대북·통일정책 추진 방안을 제안한다.

윤석열 새 정부가 들어선다. 1% 미만의 표차였다. 역대 선거에서 가장 근접하게 갈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승부였다. 이를 두고 한편에선 국정을 이끌어 가기 어려울 거라고 예측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교만에 빠지지 않고 나랏일을 하면 오히려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맞을까? 국정은 생물(生物)이다. 또한 여론은 물결치는 파도와 같다. 정치, 경제부터 민생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의제가 산더미처럼 밀려들 것이다. 코로나19로 피폐해진 바닥 민심은 대통령의 스트레스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북정책과 통일정책도 만만치 않은 상대로 부상할 것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헌법적 가치인 ‘평화통일’은 대통령의 무한한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전국적인 조직은 물론 해외조직까지 두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에 따라서 민주평통의 역할을 강조하는 때도 있었고, 임기 동안 역할이 부각되지 않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경우일까? 새 정부의 통일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모두가 궁금하다. 여기서 우리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 하나가 있다. 지난 대선을 돌아보면, 진영논리에 의한 사회갈등이 매우 심각했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가 ‘국민 통합’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강조하기도 했다. 대선 직후, 윤석열 당선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고, 국민 통합을 이루겠습니다”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 되어야 합니다” 취임식 슬로건 또한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이다. 모든 정부가 국민과 국민 통합을 강조했었지만, 지금처럼 방점이 찍힌 적은 없었다. 아마도 0.73% 표차가 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로부터 새 정부의 국정 방향이 어떻게 짜일지 가늠할 수 있다. 통일정책도 마찬가지다. 민주평통의 역할과 과제도 이와 같은 기조에서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고차방정식과 같은 대북·통일정책
돌아보면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은 애물단지와 비슷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상대가 거들어주지 않으면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다. 평화와 통일을 강조해도 북한이 쏘아 올린 미사일 한 방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북한은 항상 남쪽의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남정책을 펴왔다. 한마디로 여론전에 능하다. 이 말은 반대로 우리 사회의 여론에 따라 상대인 북한을 긍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째, 분단 이후 우리 사회에는 이데올로기라는 남남갈등이 저변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는 해묵은 숙제로서 진영논리를 강화하는 근본적 배경이었으며, 국민 사이에 심각한 이념적 충돌을 낳는 원인이었다. 정부의 성격에 따라 보수와 진보세력은 격한 대립으로 맞서기도 했다. 그동안 통일정책은 남남갈등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곤 했다.

셋째, 지정학적인 위치를 고려할 때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적인 역학관계가 작동한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정책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주지하는 사실은 해외 열강의 한반도 정책 전문가들이 실시간으로 대한민국의 여론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통일정책이 나라 안은 물론이고 밖에서도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다.

어느 것 하나 초점과 균형이 맞지 않으면 삼각 달리기처럼 다리가 엉켜 넘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 분명한 것은 국민 여론이다. 국민이 지지하고 뒷받침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참가자들이 모여 평화통일을 주제로 사회적 대화를 나누고 있다. ⓒ통일비전시민회의
국민적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 만들어 가야
역대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은 일부 전문가들의 영역이었고 국민의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고차원 방정식’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여론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 결과 정권의 이해와 성향에 맞춘 대북·통일정책을 소수 전문가가 입안하고 정부가 앞장서 추진하면서, 성향이 다른 국민은 매번 적극적 반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반대 여론의 뭇매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통일부 장관 자리는 정치인들의 무덤이라는 소리가 들리기까지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의 태도 변화도 환기해서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최근 남한의 대북·통일정책은 ‘내치용’이라고 비난한다. 실질적인 통일보다는 각급 선거에 북한과 통일을 이용해 왔다는 것이다. 한때는 북한이 선거 때마다 개입하여 여론전을 수행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남한 정부가 자신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다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대북·통일정책이 안팎으로 인심을 잃은 것만은 확실하다.

따라서 전향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만약 국민적 이해와 참여를 바탕으로 합의와 관용을 기본으로 하는 대북·통일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하면 어떻게 될까? 휴전선 이남, 국민 통합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대북·통일정책을 추진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비밀 유지나 정보전이 필요한 사안은 여전히 최고급 전문가들의 몫이 되겠지만, 국민적 지지와 성원이 필요한 국가적 차원의 대북·통일정책은 국민이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국민 통합적 방법과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평화·통일에 대한 사회적 대화에서 희망을 보다
2019년, 보수, 진보, 중도 주류 시민사회와 7대 종교가 참여하여 「평화·통일비전 사회적대화 전국시민회의」를 창립했다. 보수 시민사회를 대표하여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소속 300여 시민단체와 진보 시민사회를 대표하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300여 시민단체, 그리고 불교, 개신교, 가톨릭, 원불교, 천도교, 성균관, 민족종교 등 7대 종교가 공식 참여했다. 그리고 지난 4년간, 전국 17개 광역시도의 국민참여단과 재외동포들, 청년 대학생, 고등학생, 초·중·고 학교 교사, 한국에 유학 온 외국인 대학생들까지 총 7천여 명이 넘는 참여자들이 평화통일을 주제로 사회적 대화를 가졌다. 갈등관리와 사회통합에 성공한 선진국들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어 한국형 사회적 대화 방법론을 개발했다. 보수, 진보 전문가들이 균형 잡힌 15가지 의제를 만들고, 공정한 토의토론을 위한 프로그램 및 진행자(퍼실리테이터)를 양성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대화야말로 모든 문제해결의 실마리’라는 경구가 살아서 꿈틀거렸다. 왜 아일랜드나 네덜란드 등의 나라들이 국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심각한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달성하여 높은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구가하는지 그 비밀을 알았다.

여론조사기관이 성별, 연령별, 지역별, 정치성향별로 균등하게 모집한 국민참여단은 처음에는 서먹서먹하고 토론과 대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워했지만, 점차 몰입하며 적극적으로 변했다. 대화가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몰랐다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조차 이런 사회적 대화는 처음 접해본다며 놀라워했다.

사회적 대화의 목표는 토론을 통해 갈등을 관리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통일비전시민회의
사회적 대화의 목표, 갈등관리와 국민합의
잘 짜인 프로그램과 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상호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사실은 무엇인지, 어떤 의견이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따져보며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와 관용의 정신이 자라났다. 생각은 다르지만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숙의 과정, 그리고 그런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로서의 시민의식의 고양은 국민 통합을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할 첫 단계였다. 이것을 ‘관용성의 증대’라고 정의한다면 갈등관리의 핵심은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 상호이해의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단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 시키려 하는 것은 국민 통합이 아니라 전체주의의 망상일 뿐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조건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가 형성된다면 불필요한 소모적 갈등이 해소되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 4년간 사회적 대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매번 감동하며 체험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사회적 대화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갈등관리에 성공한 선진국들은 모두 ‘국민 합의’를 이루었다. 아일랜드의 사회연대 협약(1987),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1976),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1982) 등은 대표적인 국민적 합의에 성공한 경우다. 그렇다면 대북·통일정책을 국민 합의에 기초하여 추진할 수 있을까? 통일비전시민회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답할 수 있다. 2020년과 2021년, 2년에 걸쳐 ‘합의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였고, 그 결과 국민이 참여하여 만든 ‘통일국민협약안’을 도출해 냈다. 높은 관용성과 상호존중의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 낸 결과였다. 보수 성향, 진보 성향 참여자들 할 것 없이 모두 스스로 놀라워하며 기뻐했다.

상상해보자. 호남, 영남, 중부권, 수도권 등에서 인구비례에 따라 선정된 참여자들이 사회적 대화를 갖고, 이후 지역의 대표자들이 모여 대북·통일정책에 관한 국민적 합의에 도달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정치권이 바통을 이어받아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회 차원의 결의를 해낸다면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 열강들도 무시할 수 없는 통일정책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통일정책에서만이 아니라 국민 통합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독일 보이텔스바흐합의에서 보듯 이러한 사회적 대화가 교실에서, 직장에서, 마을에서 안정적으로 지속해서 이뤄져야만 한다. 과거 분단 독일은 이를 통해 갈등을 관리하고 사회통합을 추진해 나가면서 마침내 통일을 달성했다. 만만찮은 통일비용으로 형편이 어려워질 거라고 부정적인 예측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 독일은 유럽과 세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적인 위치에 있다.

나아가 사회적 대화를 제도화하여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숙의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발전시켜 나갈 때, 대한민국은 더욱 건강한 모범적인 나라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휴전선을 걷어내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국민 통합을 달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임 헌 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