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72021.07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 후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연합

특집


한미동맹의 새로운 지평



5월 21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전환하는 계기였다.
한미관계와 한미동맹의 변화와 미래비전을 살펴보면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책임을 살펴본다.



  2021년 5월 21일은 한국 외교사에서 기록해둘 만한 날이다. 이날 발표되었던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한글판 8페이지, 영문판 5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성명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성명서의 길이가 아니다. 미래 협력을 향해 광폭 행보를 보인 양국 정상의 전략판단이다. 그것을 통해 보이는 한미동맹의 새로운 미래 지평이다.

  G7 한미동맹은 협력의 지리적, 공간적 범위(scope)를 확대했다.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이며, 한반도 안정이 핵심 목표였다. 한미동맹은 성장했고 발전했다. 이제 양국관계는 지역 수준으로 확장되고 더 나아가 글로벌 차원의 협력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 지리적 확장만이 주목할 일이 아니다. 협력의 ‘영역’ 확장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가치와 규범, 경제, 보건 영역에 이르기까지 동맹의 협력 범위가 확장되었다.

한미 전략 협력, 군사안보 동맹에서 평화 지향 동맹으로
  한미 양국 정상은 ‘전략적 협력’에 합의했다. 동맹관계를 포함하여, 어떤 국가관계이건 전략적 구상은 백 퍼센트 완벽하게 일치하기 어렵다. 국가들마다 현재(顯在)하는 이익들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략’ 협력은 미래 이익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전략 지도를 놓고 공유하는 이익을 찾아야 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문구도 세밀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절충과 타협의 외교적 조정이 작동한다.

  미·중 전략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행위를 비판하고 견제하려는 입장을 되도록 많은 국가들이 지지해주기를 원한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 양국의 전략적 연대(coalition)를 더 견고하게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반면, 한국은 우선순위를 한반도 평화구상의 재가동에 두었고, 이를 위해 미국의 지지가 필요했다. 이 두 가지 전략 영역에서 양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외교적으로 적절히 결합되었다.

  양국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유지하자는 원칙에 합의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비판 논리를 한국이 수용한 것이다. 다만, 포괄적 원칙 수준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는 통상국가 한국 외교에도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그것에 더하여 ‘자유롭고 열려 있는’ 인도·태평양 비전이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결합(align)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달포 전에 개최되었던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국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홍콩, 위구르 신장지구 인권 문제, 대만 문제까지 세세하게 언급했던 점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한국이 중국의 이웃 나라로서 특수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음을 미국은 ‘전략적으로’ 양해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미 공동선언문에는 중국, 대만 문제가 포괄적인 표현으로 절충되었다. 양국이 합의한 전략적 협력 구조에서 한국은 중국 견제의 스크럼(scrum)에 한 걸음 정도 뒷선에 서는 것으로 조정된 듯하다. 타협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은 협력 의지가 작동한다는 방증이다. 한국 외교의 유연성 전략이 작동한 대목이다.

  한국의 정책적 우선순위는 한반도 평화구상 재가동이다. 이 구상은 미국의 적극적 역할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미국은 이러한 한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전격 수용했다.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외교적 해결책 모색, 그리고 정교한 실용적 접근법이다. 이를 재확인한 것이 정상회담이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한국의 대화, 협력, 관여(engagement)를 지지한다고 언급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이 운전자론 역할을 재개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북한에 대한 한국의 ‘관여’를 지지하겠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관여 구도, 즉 미국이 거의 독점해 왔던 대북 관여 방식을 조정하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한미 공동 관여(joint engagment)나 더 나아가 다자적 관여(multilateral engagement) 방식이 가능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군사안보 중심의 한미동맹에서 한반도 평화 지향의 동맹으로 확장된 것이다.

  요컨대 한미 양국의 전략 협력은 양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균형 있게 조정된 결과였다. 양국의 전략 협력 범위와 내용이 한반도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장된 것은 한미동맹 역사의 관점뿐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국제질서 형성 과정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세계 속 한국의 위상 상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개최된 G7 회의에서도 재차 확인되었다. 원칙과 가치의 측면에서 한국과 미국은 같은 페이지 위에 있다. 민주주의, 인권, 개방적 시장경제체제, 기후변화 대응 및 청정에너지로의 이행 등 국제관계의 목표에서 양국은 공동보조를 확인하였다. 한미 양국이 포스트 코로나 세계질서 구축에 있어 대등한 협력 파트너(equivalent partners)로서 관계를 재설정했다는 의미다.

지난 6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 공급 확대 및 보건 역량 강화 방안을 다루는 G7 정상회의 1세션에 참석했다. ⓒ연합

협력의 새로운 영역, 보건협력과 기술·혁신협력
  한미 양국은 새로운 영역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보건협력이 그중 하나다. 한국으로서는 미국산 백신을 공급받는 것이 당면한 문제였다. 이에 미국은 동맹국 지원 논리를 앞세워 백신을 긴급 제공하기로 했고 빠르게 실천에 옮겼다. 중요한 점은 한미 양국 협력을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수준으로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한국의 바이오산업 기술 수준이 세계적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과의 보건협력으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백신 생산 및 공급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바이러스 감염 확산은 심각한 미래위협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은 긴요한 ‘국제 공공재’의 하나다. 국제 공공재 제공 역할을 한국이 미국과 협력을 통해 제공한다는 것은 한국 외교의 미래에 있어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기술·혁신협력은 미국의 요청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호응한 결과였다. 과거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식량과 자본 등 경제지원을 받는 수혜국이었다. 미국 시장도 한국의 수출지향적 산업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것을 통해 한국은 경제성장이 가능했고, 마침내 세계 8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한국의 유수 기업은 21세기 선도산업의 하나인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에서 세계 정상급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기술·혁신협력을 통해 미국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는 국가가 되었다.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생산기지를 세우기로 했고, 이를 통해 미국은 고용 창출과 국제 공급망 재조정에 우위를 확보하려는 정치·경제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기술·혁신협력은 현시점 양국의 이익 교환구조에서 윈-윈 게임의 협력이었다.

민주주의, 인권, 개방적 시장경제체제,
기후변화 대응 및 청정에너지로의
이행 등 국제관계의 목표에서 양국은
공동보조를 확인하였다. 한미 양국이
포스트 코로나 세계질서 구축에 있어
대등한 협력 파트너(equivalent partners)로서
관계를 재설정했다는 의미다.

한국은 기술·혁신협력을 통해 미국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기술과 자본을 투자하는 국가가 되었다.
사진은 지난 5월 22일 미국 애틀랜타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시찰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

한미 동맹의 진화와 높아진 한국의 위상
  공동성명서에 언급된 바와 같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에 새로운 장(chapter)을 열고자 하는 선언이었다. 동맹의 범위와 협력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양국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한미관계는 주로 ‘군사동맹’, ‘비대칭 동맹’으로 설명되어 왔다. ‘후원-피후견인(patron-client)’ 관계로 묘사되기도 하고, ‘안보-자주 교환 동맹(security-autonomy trade-off)’의 단순 논리로 설명되기도 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국력이 성장했고, 더불어 인식도 변화해 왔다. 국력으로는 여전히 ‘비대칭’일지 모르나, 협력의 역할 분담에서는 균등한(equivalent)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기존 이론이나 정체성 규정은 한미동맹의 현 좌표를 설명하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물론,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오랜 심리적 의존성을 한 번의 정상회담으로 완벽하게 극복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극복과정에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한국 외교 전략의 역사의 관점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개항 이래 한국 역사의 주요한 지점마다 열강의 정치적 결정들이 무겁게 작동해 왔다. 침탈, 식민지, 해방, 분단, 전쟁, 대립 등 국제정치의 결정들이 한국과 한국인의 운명을 결정해 왔다. 따라서 한국인에게 외교 전략은 생존을 위한 필사적 노력이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균세 전략과 중립 전략은 실패로 끝났다. 분단과 전쟁 이후 한국은 동맹 전략에 집중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이었다. 동맹에 기반하여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에 성공을 거두었다.

  한미동맹은 이제 한반도 안보라는 범위를 넘어 공간적 확장, 협력 영역의 확장이 가능한 동맹이 되었다. 전통안보는 물론, 인간안보(보건)와 경제안보(공급망 재편)까지 협력의 범위를 확장하였고,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는 물론 글로벌 차원의 협력, 그리고 사이버 및 우주에 이르기까지 협력의 공간이 확대되었다. 한국 외교가 한미동맹 진화를 통해 세계 속 한국으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의미다. 산업화, 민주화라는 한국의 성공 스토리를 이제 외교 전략으로 완결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