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72021.07

진단


한미 정상회담 이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남북 합의 이행이 중요하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남북대화, 북·미대화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전략을 모색한다.



  지난달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대단히 많은 성과를 거둔 회담으로 평가받는다. 한미 정상 간 ‘케미’가 잘 맞았고 지도자 간 신뢰를 쌓은 회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크랩케이크’ 오찬 장면을 두고 일본 스가 총리와의 ‘햄버거 오찬’과 비교하는 글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SNS에 인색하다고 평가받던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장면을 여러 차례 트위터에 올릴 만큼 정상 간에 친밀함을 보여 준 점은 앞으로 양국 관계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주일 후인 5월 29일 트위터에 올린 59초 분량의 영상에는 정상회담 전반을 요약하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내레이션을 했다. 여기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하게 되어 영광이었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한미 간 회의 장면, 한국전쟁 참전 노병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장면 그리고 로즈가든 오찬에서 “악명 높은 로즈가든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격의 없는 농담을 하는 장면도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하며 “포괄적인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동의”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국가 간 외교행위에서 정상 간 신뢰를 쌓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정상 간 신뢰 쌓은 한미 정상회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합의들이 있었지만 한반도 문제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담는 내용이 많다.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2018년 6월 트럼프 정부의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바이든 정부가 지지한다고 한 것은 의미가 크다.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도 큰 성과이다. 큰 틀에서 남북관계 진전을 지지한다고 해석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정상회담 기간에 임명 사실을 발표한 미국 측 대북특별대표 성 김의 방한이 곧바로 이어졌고, 정상회담 직후에 우리 측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한 것은 하향식의 ‘톱다운’뿐 아니라 상향식의 ‘보텀업’ 방식 또한 잘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UN과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의 대북제재가 가동되는
상황을 고려하여, 제재에 해당되지
않는 분야부터 남북협력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만 정상회담 직후 블링컨 국무장관이 인터뷰를 통해 “공은 북한에게 넘어가 있다”고 언급한 것은 평가가 엇갈리는데, 대체로 북한이 원하는 유인책은 제안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듯하다.

  북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다. 북한은 2019년 3월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 외신기자회견을 통해 하노이에서 요구했던 내용을 밝힌 바 있다.

  “<제재 결의> 제2270호, 제2321호, 제2375호, 제2397호 중에서.민수분야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을 해제하는 부분적인 제재 완화”에 대한 요구이다. 또한 제재 해제 보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최선희 부상이 지난해 7월과 올해 3월에 밝힌 바와 같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는 것이다. 서울을 방문 중이던 성 김 대북특별대표도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요구했는데, 북한은 몇 차례에 걸쳐서 명백한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6월 중순에 개최되었던 당 8기 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조선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데 주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대결보다는 안정을 선택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물론 김여정 부부장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북한 문제에 대한 인터뷰에 대해 “해몽이 좋다”는 비난을 하기는 했으나 북한의 기조는 안정에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미국의 대북제안에 밝혀지지 않은 긍정적 신호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지난 6월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가 열렸다. ⓒ연합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남북 합의 이행부터 시작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지지한다고 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가’로 귀착된다. 현 정부 잔여임기의 길고 짧음을 떠나 최선을 다해 한반도가 평화로워지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남북 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UN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가동되는 상황을 고려하여, 제재에 해당되지 않는 분야부터 남북협력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개발협력이다. 북한과 사업을 추진할 때 중장기 개발협력 계획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합의 이행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를 구하는 노력도 요구된다.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있을 경우 비준동의가 필요하다. 이번 국회 회기 중에 4·27 판문점 선언과 10·4 선언을 비롯한 기존 합의에 대한 비준동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둘째,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북·미관계에 상호 신뢰가 없다는 점이 큰 걸림돌인 만큼, 북·미관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국제적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북·미관계가 안정적·평화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야 한다.

  특히, 일본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하노이 노딜’을 경험하면서 일본 보수정부의 민낯이 드러났다. 기존 태평양 질서가 ‘미·일 안보조약’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만큼 일본 보수정부는 태평양 질서가 불안정할수록 위상이 높아지는 ‘코싸인 그래프’의 성격을 가진다. 북한의 비핵화가 성공하고 북·미관계가 개선되어 평화체제가 만들어질 경우 일본의 안보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이러한 일본의 위상을 보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다면 일본 보수정부는 결코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대미국 ‘로비 네트워크와 역량’을 생각해 본다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다. 우리의 대일외교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과 충분히 좋은 관계라 할지라도 북·미관계의 실무를 관장하는 것은 미국의 외교관들이다. 이들에 대한 관여는 우리가 일본의 외교 역량을 넘어서기 쉽지 않다.

지난 6월 17일 국회 앞에서 남북공동선언 국회비준 동의 및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

작은 걸음이라도 내디뎌야 한다
  셋째, 우리 내부의 통일정책 추진 방식을 통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통일 문제에 있어 정부 부처 간에 또는 부처 내부의 의견이 일치되어야 한다. 통일정책 실현 과정에서 북한을 상대하는 통일부와 미국을 상대하는 외교부는 협력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예컨대 ‘한미워킹그룹’ 회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두 부처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의견을 북한에 설명하는 것과 북한의 의견을 미국에 설명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따라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조정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내부의 일관된 추진 의지와 의견 조율이 중요하다.

  넷째, 남북 교류채널의 다양화를 통해 남북관계의 제도적 안정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지자체가 대북사업자로서 활약할 수 있도록 개정된 「남북교류협력법」의 발효는 의미가 크다. 일부 보완되어야 할 내용들이 있지만, 이를 계기로 남북 대화채널이 다양해지면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았지만, 최근 정세를 보면 북핵 문제 해결의 긍정적 신호들이 보이고 있다. 큰 욕심을 가지기에는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주춧돌 하나 제대로 만들어 놓는 심정으로 작은 걸음이라도 내디뎌야 할 때이다. 한미 정상회담과 G7 정상회의의 문재인 대통령 초청, 그리고 한-오스트리아와 스페인 정상회담의 성과들은 통일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 작지 않은 걸음이 될 것이다.


진희관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