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포커스
제8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조선노동당규약 쟁점 분석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새롭게 개정했다. 당규약 개정의 주요 내용을 통해 김정은 시대의 북한을 진단한다.
  북한은 지난 1월 5~12일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당규약 개정에 대한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밝혔다. 4개월이 흐른 지난 5월, 북한이 아닌 우리 측 언론이 개정된 당규약의 전문을 공개했다. ‘북한은 당 우위의 국가체제이다’. 이는 당규약을 사회주의 헌법보다 우선한다는 의미로, 정치적·실무적 규정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체제의 운용원칙과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개정된 당규약은 새로운 당적 지도와 방침이 담겨 있고 향후 당국가 체제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북한은 1945년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설치 이후 75년을 거치며 당규약을 8차례 개정했다. 2012년 김정은 정권이 공식 출범한 후 당규약은 3차례 개정됐다. 김일성·김정일 집권 66년 동안 5차례 개정과 비교해 김정은 집권 9년 동안 3차례 개정은 횟수 면에서 적지 않다. 당규약 개정이 대내외 환경과 여건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당면 목적이 보여주는 남조선 혁명 문제
  제8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에서는 김일성·김정일·주체·선군이라는 용어를 상당부분 줄이고 김정은의 이름 석 자도 모두 삭제했다. 당의 수반을 위원장에서 총비서로 복원하고 총비서의 대리인으로 제1비서를 신설했다.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은 선군정치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로 변경했다. 당의 기본 노선인 병진노선을 종료하고 새로운 노선으로 자력갱생을 채택했다. 당면 목적으로는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을 삭제하고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 실현으로 구체화했다. 통일전선 부문에서 일본 군국주의와 우리민족끼리가 삭제되고 강력한 국방력이 추가됐다.
  개정된 당규약의 핵심 쟁점은 남조선 혁명 문제, 제1비서 신설 문제, 김정은 이름 삭제 문제 등으로 요약된다. 남조선 혁명 문제는 당면 목적으로 표현된다.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로 명시되어 있다. 당면 목적은 제3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에서부터 등장하며 개정 때마다 표현이 조금씩 변화되어 왔다. 김일성 집권 시기인 1956년 제3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은 “반제반봉건적민주주의 개혁의 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라고 표현했고, 1961년 제4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은 “반제반봉건적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로 표기되어 있다. 1970년 제5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은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로, 1980년 제6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은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로 명시되어 있다. 김정일 집권 시기인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 개정 당규약은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로 표기되어 있다. 김정은 집권 시기인 2012년 제4차 당대표자회와 2016년 제7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은 아무런 변동 없이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 개정 당규약을 그대로 표기하고 있다.
정권별 변화에 따른 사회변혁운동
  북한의 남조선 혁명론은 김일성 집권 시기에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에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변화됐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은 50~60년대 미 제국주의가 남한을 식민지로 강점하고 있고 남한 국민들에 대한 봉건적 압박과 착취가 계속되고 있다는 인식에 토대한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론은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때려 부수어 민족을 해방시키는 반제 민족해방 혁명과 주종과 종속이 핵심인 봉건적인 여러 관계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적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반봉건적 민주주의 혁명의 결합이다.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론은 70~80년대 남한사회의 봉건적 모순보다 자본주의적 모순을 지적하며 남한 주민들의 반미·반일·반정권 투쟁을 지지 및 성원하는 데 강조점이 있다. 남한 주민들이 혁명의 주인이 되어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를 통해 인민정권을 수립하여 통일투쟁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으로 수정됐다.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은 인민이라는 용어와 식민지 통치라는 표현이 삭제된 것이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과의 차이점이다. 식민지 통치를 삭제하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으로 표현한 것은 남한사회에 대한 현실인식의 반영이다. 민족해방과 민주주의혁명 사이에 인민이라는 용어의 삽입 여부는 대외자주화와 대내민주화의 구분 여부와 관계된다. 대내민주화(사회민주화)의 주도자가 인민임을 강조할 때 인민이라는 용어가 들어가고, 대외자주화와 대내민주화 모두 인민이 주도함을 강조할 때는 인민이라는 용어가 빠진다.
자력갱생이 강조된 북한의 선전화 ⓒ연합 / 조선중앙통신
  2050 김정은 집권 초기에는 김정일 집권 시기의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을 유지해 오다 2021년 제8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에서 사회의 자주적인 발전과 민주주의적인 발전 실현으로 구체화했다. 자주적·민주주의적인 발전의 표현은 외형상으로는 구체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재는 모호하다. 굳이 해석한다면 미국의 대한국 정치군사적 지배를 청산하는 반미자주화와 국가보안법 철폐 등 민주주의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의 정비를 강조한다.
  남조선 혁명을 삭제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내외 환경과 여건 변화라는 현실의 반영이다. 비현실적인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선대의 힘의 우위에 따른 남조선 혁명론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장기공존의 추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변화한 당규약이 보여주는 북한의 흐름
  신설된 제1비서의 문제는 후계자이냐 대리인이냐가 쟁점이다. 제8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은 제1비서를 총비서의 대리인으로 규정했다. 전문가들의 주장은 제1비서를 두고 정치적인 후계자와 행정적인 대리인으로 갈린다. 북한 정치구조에서 권력의 위임은 후계자에게만 가능하고 권한의 위임은 대리인에게 가능하다. 김정은 총비서는 당·정·군을 모두 장악한 후 제7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권한의 위임과 역할 분담으로 책임행정을 강조해 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자 당중앙군사위원장은 최룡해를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리병철을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앉혔다. 김정은 총비서가 행정적인 대리인으로서 제1비서를 두는 것은 자연스럽다. 제1비서는 당의 제1비서가 아니라 당중앙위원회의 제1비서라는 점에서 후계자와 연계시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
  최고영도자 김정은이라는 이름 삭제는 해석에 어려움을 더한다. 그간 북한은 당규약 개정 때마다 변함없이 최고지도자의 이름을 직접 명시하여 왔다. 혹자들은 현재 수령의 유일영도체제에서 수령 존엄의 직접 명기는 자연스럽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맑스-레닌의 원전에는 공산국가의 최고지도자 개인의 우상화를 금하고 있다. 제7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에서 볼 수 있었던 최고영도자 김정은의 이름 석 자가 제8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에서는 사라졌다.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김정은의 이름을 삭제한 것인지,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개인 우상화의 상징인 김정은 이름을 선제적으로 삭제한 것인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사회주의 헌법을 포함한 기타 당국가의 규범적 문건에서의 표기 여부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지난 6월 16일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 2일차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총비서 ⓒ연합 / 조선중앙통신
  제8차 당대회 개정 당규약은 전문을 포함하여 각 조항마다 많은 표현의 변화가 나타났다. 남조선 혁명이라는 용어를 삭제하면서도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명시하고 있다. 제1비서의 신설은 김정은 총비서의 행정적인 대리인으로서 위임통치의 본보기로 보인다. 김정은 이름 석 자 삭제는 선전선동 차원의 개인 우상화가 아니라 정상국가의 정상적인 지도자 상을 이끌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국방력 강화를 통해 조선반도의 평화·안전을 수호하고, 군사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통일을 주도하겠다고 한다면 남북 간 군비경쟁과 함께 분단 지속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당규약 변화에 대한 과도한 해석은 금물이며 향후 북한정세는 객관적으로 분석하되 대응전략은 주관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기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