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62022.04.

5월 출범하는 새 정부는 원칙적, 상호주의적, 실사구시적, 가치지향적 대북정책을 예고했다. 사진은 인수위 워크숍에서 인사말 하는 윤석열 당선인 ⓒ연합

특집

새 정부의 대북정책

북핵문제 돌파구,
어떻게 찾을까

2022년 5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는 악화하는 북핵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북핵문제 해법과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을 제안한다.

지난 30년간 한국과 미국 정부가 추진했던 대북 비핵화 외교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북한은 현재 핵무기 약 50기 또는 이에 상당하는 무기용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고, 추가로 매년 핵무기 5기 이상을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생산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추세에 따르면, 북한은 2030년까지 핵무기 100기 이상을 보유하게 된다. 최근 한국과 미국 연구기관의 공동 분석보고서는 북한이 이미 약 100기를 보유했고, 2027년까지 최대 242기를 보유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북핵문제의 엄중성 그리고 비핵화의 시급성
핵무기 약 6,000기를 보유한 핵 초강대국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모든 핵무기국이 100~300기의 핵무기만 보유했다는 사실은 북한의 핵무장이 얼마나 위험한 단계에 도달했는지 잘 보여준다. 안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2021년 1월 자신의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북핵문제가 계속해서 더욱 악화됐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21년 8월 발표한 『북한 안전조치 적용』 보고서가 증언하듯이 북한은 이 순간에도 재량껏 핵시설을 가동하고 핵물질을 생산하며 온갖 종류의 핵탄두와 미사일을 개발해 핵무장력을 증강하고 있다. 필자는 “북핵 역량이 8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성 추세를 주장했는데, 안타깝게도 당분간 이런 추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북한 핵역량 증가는 군사적 위협의 증가에만 그치지 않고, 비핵화 협상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앞으로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한미가 수용할 수 없는 한미 연합훈련 완전 중단, 주한미군 철수, 유엔사령부 해체, 한미동맹 해체 등을 더욱더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심지어 인도·파키스탄과 같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행세하며 비핵화 협상을 전면 거부할 가능성도 커진다.

북한은 2019년 2월 소위 ‘하노이 노딜’ 사건 이후 북핵협상을 전면 거부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대형도발을 자제했지만, 결국 3월 24일 ICBM을 다시 발사했다. 사실 북한은 플루토늄 핵탄두, 고농축우라늄 핵탄두 그리고 증폭탄과 수소폭탄에서 전술핵에 이르기까지 백화점식의 온갖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어 새로운 핵실험의 수요가 적지 않다. 2018년 이후 각종 첨단,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고체연료 개발도 크게 진전되어 이들의 시험발사 수요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대형 도발이 재개되면 북핵 위기와 전쟁 위기가 재발하고, 한반도 정세는 2017년 상황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상상하기 싫지만 새로운 북핵 위기는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는 ‘핵전쟁’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역량 증강을 저지할 뿐 아니라, 북핵 위기와 전쟁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예방적 북핵 외교가 시급하다.

북한의 핵무장은 이미 위험한 단계에 도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월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의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새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적·상호주의적 대처 전망
2022년 5월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각종 외교안보 공약을 통해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목표로 원칙적, 상호주의적, 실사구시적, 가치지향적 대북정책을 예고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 대북 억제력 구축, 북한인권, 제재 압박 등을 경시하거나 방기했다고 평가하고 한미 공조와 동맹 강화, 한미연합훈련 재개, 대북 억제력을 위한 3축 체제 구축, 사드 추가 배치, 대북 제재결의 이행, 북한 인권 문제 제기, 북한인권재단 설립 등을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해 이런 원칙적, 군사적, 가치적 대북 접근이 부각된 면도 있을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 목표와 성과물로서 강조했던 남북정상회담, 평화체제 구축, 종전선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남북경협 사업 등은 윤석열 후보의 대북정책 공약에서 사라졌다.

다른 한편으로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남북관계 개선, 남북대화, 북한 비핵화, 인도적 지원 등 전통적인 대북정책 과제도 제시했다. “불법적·불합리한 행동에는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남북대화의 문은 언제든 개방돼 있다”고 덧붙였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완전한 비핵화까지 제재 유지, 제재결의 이행을 위한 국제협력 주도 등을 내세워 다소 경화된 입장으로 보여지지만, 사실 안보리 제재결의의 충실한 이행은 모든 유엔 회원국의 국제법적 의무이므로 일반적 원칙을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한미 공조 하 비핵화 협상 재개 노력, 완전·검증 가능한 비핵화 달성 시 관련 당사자 평화협정 체결, 비핵화 진전에 맞추어 경제협력과 남북공동경제발전계획 추진 등은 이전 정부도 추진했던 북핵정책의 일반 원칙이고, 한미 정부가 합의했던 사항이다.

한편 예측 가능한 비핵화 로드맵 제시, 판문점(워싱턴)에 남·북·미 연락사무소 설치로 3자 대화채널 상설화 등은 비핵화 협상과 남·북·미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구상이다. 다만 ‘완전한 핵 신고’가 초기 비핵화 이정표로 제시되었는데, 과거 핵 검증을 주권 침해로 간주했던 북한의 행태를 볼 때 이를 관철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역대 모든 한국 정부는 DMZ의 평화지대화를 추진하고 국제평화공원과 평화·생태·환경 관련 국제기구를 조성하려고 했다.
사진은 경기도 연천군 중서부 전선 DMZ ⓒ연합
새 정부에게 바라는 지속가능한 대북정책
첫째, 무엇보다 국민합의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사실 한국같이 외교안보정책을 둘러싼 국론 분열과 갈등 그리고 정부 교체마다 외교안보정책 기조가 완전히 바뀌는 사례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다.

미국 같은 초강대국이라면 모를까 한국같이 분단 상황과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여건은 그런 사치를 허용치 않는다. 5년마다 바뀌는 대북정책으로는 어떤 성과도 내기 어렵다. 심지어 기업도 5년마다 최고운영자가 바뀐다고 운영 기조를 바꾸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둘 것이며, 상대 거래기업과 소비자는 그 기업을 어떻게 생각할까. 마침 윤석열 당선인은 통합과 협치의 국정 운영과 원칙적이고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탈냉전기 30년간 시행착오를 겪었다면 이제는 우리도 좀 더 안정된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때가 되었다.

둘째, 현재 북한의 핵·미사일 증강 속도를 볼 때 북핵문제의 현상유지는 옵션이 아니다. 따라서 북핵협상 재개와 비핵화 진전을 위해 기회요인을 적극적으로 찾고 활용해야 한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경제·식량·보건 위기의 ‘삼중고’ 속에서 국가발전전략의 실패를 자인했다. 이때 대북 제재 완화를 비핵화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 접근법으로 ‘조율되고, 실용적인 접근’을 채택해 사실상 단계적 비핵화를 수용하고, 북미대화에 적극적이다. 이런 미국의 대북 관여정책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김정은 위원장과 친서를 교환할 수 있다면, 이것도 북핵협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셋째, 북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고 핵역량 증강을 저지하기 위해 이란핵합의(JCPOA) 모델에 따른 북미 ‘잠정합의’를 조속히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란핵협상의 2단계 비핵화 접근법을 참고해 첫 단계로 ‘잠정합의’ 방식을 북한에 적용할 것을 주제로 2018년 뉴욕 타임스에 두 차례 기고했다.

현재 미 정부는 이란의 핵합의복귀 협상을 거의 마무리 중이다. 이란핵문제가 일단락되면 미 정부는 북핵협상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때 ‘잠정합의’ 방식이 거론될 전망이다. 우리가 원하는 초기 비핵화 조치와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상응조치를 담은 ‘비핵화 로드맵’을 미리 준비한다면, 북핵협상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 정상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기본협정과 DMZ 국제평화공원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2022년은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30주년이다. 남북기본협정으로 사실상 사문화된 이 문서를 되살리고, 오늘 한반도 현실에 맞추어 업데이트해야 한다.

역대 한국 정부는 모두 DMZ의 평화지대화를 추진하고, 평화·생태·환경 관련 국제기구와 국제평화공원을 조성하려고 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큰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사무총장이 손잡고 나선다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남북기본협정과 DMZ 평화공원이 완성되면, 한반도 평화정착이 촉진되고 북한 비핵화도 크게 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봉 근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