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62022.04.

6·25 전쟁 당시 중공군 패주병들을 섬멸했던 파로호

우리고장 평화의 길

전쟁의 비극을 뒤로하고
화천에 피어오르는 평화의 숨결

산천어 축제로 유명한 산 좋고 물 맑은 강원도 화천군. 휴전선과 맞닿은 접경지역답게 군부대가 많은 곳으로도 손꼽히는 화천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명소로 찾는 지역이 됐다. 접경지역들이 대개 그렇듯 전쟁 시기는 물론, 분단 이후로도 북한의 위협이란 짙은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화천은 어떤 평화의 명소로 거듭났을까.

통일 한국의 풍경을 미리 느끼다
1944년 일제 강점기 화천군 일대에 북한강 협곡을 막은 화천댐이 준공됐다. 화천호는 이 화천댐의 축조로 생성된 인공호수다. 6·25 전쟁 당시 국군은 화천호 근처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의 패주병들을 섬멸하는 공을 세웠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기념해 화천호의 이름을 ‘오랑캐를 깨트린 곳’이란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개명했다. 이 이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89년 화천에 하나의 댐이 더 들어섰다. 바로 ‘평화의 댐’이다. 북한강 최북단 민간인 출입통제선 경계에 위치한 평화의 댐은 북한의 금강산댐(임남댐)에 대응해 건설됐다. 2004년, 2012년 2회에 걸쳐 증축된 평화의 댐은 길이 601미터, 높이 125미터, 총 저수용량 26억 3,000만 톤에 이르는, 대한민국 3위 규모의 거대한 댐이다.

북한강 최북단에 건설된 평화의 댐은 대한민국 3위 규모의 거대한 댐이다.

평화의 댐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 거대한 규모보다는 댐 중앙에 그려진 트릭아트 벽화라 할 수 있다. 기네스 세계기록에도 등재된 높이 93미터, 폭 60미터의 초대형 트릭아트의 이름은 <통일로 나가는 문>이다. <통일로 나가는 문>을 감상하다 보면 댐을 관통하는 통로로 댐 반대편의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남북의 물길이 문을 통해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림 속 풍경은 마치 미래 통일 한국의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대목에서 평화의 댐은 평화와 통일을 미리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평화의 댐에 그려진 트릭아트 ‘통일로 나가는 문’
전쟁의 상징, 예술을 덧입고 평화의 상징으로
국제평화아트파크 역시 평화의 염원이 담긴 곳이다. 평화의 댐 초입에 자리한 이 공원은 수명을 다해 폐기처분된 탱크, 전투기, 대북확성기 등을 재활용해 평화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공원 중심에 우뚝 솟은 ‘평화의 약속’ 상징탑은 두 개의 반지를 이어놓은 모양으로, 평화를 위한 약속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지구본을 등지고 있는 다채로운 색깔의 다섯 탱크는 포구를 지구 밖으로 위치시켜 놓고 있다. 이는 무력은 평화를 깨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외에도 무지개를 품은 전투기, 대북확성기로 표현한 영어 철자 ‘PEACE’, 평화 마크 위에서 손에 손을 잡은 사람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길 바라는 탱크로 만든 놀이터 등의 각 조형물에는 평화를 열망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폐기처분된 전쟁무기를 활용해 평화예술작품으로 조성한 국제평화 아트파크
평화의 가치 따라 걷는 평화의 발걸음
평화의 댐 일대는 말 그대로 평화의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평화의 댐과 국제평화아트파크 외에도 평화의 댐 물 문화관, 세계평화의 종 공원, 비목공원 등 평화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들이 조성돼 있다.

입구에 세워진 ‘민족의 염원을 담는 평화의 물그릇’이라 명명한 비석과 조형물을 지나 평화의 댐 물 문화관에 들어서면 6·25 전쟁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38도선을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화천 일대의 상황을 실감나게 그려 전쟁의 참상, 그리고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뿐만 아니라 기록물과 영상 등의 다양한 전시를 통해 평화의 댐을 건설하게 된 과정, 댐이 하는 일과 종류, 물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알아볼 수 있어 다방면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댐 건설 당시의 대치적 상황에서 벗어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현장으로 조성한 문화관을 둘러 본다면 평화의 가치를 더욱 마음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세계평화의 종 공원의 세계평화의 종은 분쟁의 역사를 지닌 세계 각국 각 지역에서 수집한 탄피들로 만든 종으로, 국가의 평화와 민족의 화합 의지를 담았다. 세계평화의 종은 한국 전통의 종 문양을 그대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타종이 가능한 국내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이기도 하다. 종 상단에는 한쪽 날개가 없는 비둘기 장식이 있다. 나머지 한쪽 날개는 통일이 되는 날 붙여 완성할 예정이다. 아직은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비둘기 장식이지만 장식이 완성될, 통일의 날을 꿈꾸는 것은 하나의 즐거운 기다림이 된다. 현재는 코로나19로 타종 체험이 중단되었지만, 국가와 이념 간 갈등을 해소시키고 전쟁과 분쟁을 종식시킬 평화의 종소리가 화천 곳곳에 웅장하면서도 은은하게 퍼져나가 북한과 전 세계에 닿길 기대한다.

세계평화의 종과 한쪽 날개가 없는 비둘기 장식
평화를 화려하게 꽃피울 화천으로
비목공원은 우리에게 익숙한 가곡 <비목>의 탄생지이다. 작사가 한명희는 군복무 시절 6·25 전쟁 격전지였던 비무장 지대에서 인상 깊게 본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보고 작사했다고 한다. 비목공원에는 철조망을 두른 언덕 안에 녹슨 철모를 얹은 나무 십자가들이 여럿 서 있어, <비목>의 곡 분위기와 같이 전쟁의 두려움과 비참함, 민족의 비극과 아픔을 저리도록 느끼게 한다.

6·25 전쟁의 치열했던 격전지 화천에 깃든 고요한 평화가 다양한 문화예술작품으로 거듭나 전쟁의 아픔을 조금씩 봉합하고 있다. 평화의 길로 차근히 나아가고 있는 화천. 통일의 날 평화를 화려(華麗)하게 꽃피울 화천(華川). 그곳에 의미 있는 평화의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국제평화아트파크의 상징탑에는 평화의 약속을 깨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