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62022.04.

진단

북한의 대남전략과 남북관계
강대강 구도 속 위기관리 방안은?

북한은 지난 1월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모라토리엄 철회를 시사한 이후, 날이 갈수록 무력시위의 강도를 높여 왔다. 원칙적이고 단호한 대북정책을 강조하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남북관계도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한국 대선 이후 북한의 대남전략과 한반도 정세를 전망해본다.

다시 봄이다. 여느 해보다 추웠던 겨울을 보내고 봄꽃이 폈지만 한반도의 한기는 여전하다. 산골짜기 개울물도 녹아 흐르고 만물에 생명의 힘이 가득하나 남북관계는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채 해빙의 시간은 멀기만 해 보인다. 우선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멈춰 선 한반도 평화 시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 숨 가쁜 한반도 해빙의 시간이 있었지만 평화의 시계는 멈춰 서고 말았다.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마무리 된 이후 계기를 만들지 못하는 모양새다. 여기에는 북한의 태도가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노딜 직후인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대미, 대남 전략을 내놓았다.

먼저 미국에 대해서는 “우리가 전략적 결단과 대용단을 내려 내짚은 걸음들이 과연 옳았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자아냈다”며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있는가 하는 데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한 계기”라고 평가했다. 또 “우리도 물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중시하지만,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다”며 “우리는 하노이 조미수뇌회담과 같은 수뇌회담이 재현되는 데 대해서는 반갑지도 않고 할 의욕도 없다”고 밝혔다.

남한을 향해서는 “(남측이) 외세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북남관계 개선에 복종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며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에게 자립을 강조하고 장기전 속에서 내부 전열을 다졌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에 배치되는 요구를 그 무슨 제재 해제의 조건으로 내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와 미국과의 대치는 어차피 장기성을 띠게 되어 있다”며 “적대세력들의 제재 또한 계속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항시적 제재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왔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에 만성화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장기간의 핵 위협을 핵으로 종식한 것처럼 적대세력들의 제재 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변 핵시설을 매개로 제재 일부 해제를 이뤄내 국가 발전을 도모해 보겠다던 의도가 물거품이 된 이후 북한이 빠르게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할 것임을 예고한 언급이다.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대치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자 국경을 폐쇄하고 주민들의 삶을 통제하는 데 주력하던 북한이 올해 연초부터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작정한 듯 한반도 시계를 전운이 감돌던 2017년 수준으로 빠르게 되돌리는 모습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10일 국가우주개발국을 시찰하고 5년 내 다량의 정찰위성 배치 의지를 드러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가장 부각되는 위협은 ICBM 시험발사다. 한미 군 당국은 지난 3월 11일 오전 6시에 함께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이 2월 27일과 3월 5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지난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열병식 계기에 최초 공개된 신형 ICBM 체계와 관련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향후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가장한 해당 미사일의 최대사거리 시험발사를 앞두고 관련 성능을 시험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거의 동시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을 방문해 대형 운반로켓을 발사할 수 있도록 발사장 구역과 로켓 총 조립 및 연동 시험시설들을 개건·확장하도록 지시했다는 북한 관영매체들의 보도가 나오면서 위기감은 더욱 치솟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 북한은 3월 24일 ICBM을 시험발사했다.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풍계리 핵실험장에서도 심상치 않은 동향이 포착됐다. 새 건물이 들어서고 기존 건물을 수리한 정황이 포착된 데 이어 2018년 5월 폭파했던 일부 갱도를 복구하는 움직임까지 파악된 것이다. 금강산 일부 시설의 철거에 나선 동향이 포착된 것은 더는 대남관계에 미련이 없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10월 금강산 시찰 과정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실제 철수에 착수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남북관계에 악재만 가득한 형국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향방은?
이런 상황에서 강경한 대북 기조를 지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윤 당선인은 3월 10일 당선 인사에서 “북한의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되 남북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어둘 것”이라고 대북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북한과 대화 의지는 있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냥 끌려다니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구체적인 예를 들진 않았지만,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같은 무책임한 행동을 할 땐 할 말은 하고 책임도 묻겠다는 취지다. 특히 북한의 군사 위협에는 말로만 외치는 평화가 아닌 힘을 통한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 한층 강하게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보 시절 “무기 체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전쟁을 막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한 ‘선제타격론’도 이런 맥락이다.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기준도 높아졌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그냥 우리 잘해보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국내 정치에 외교와 남북한 통일문제를 이용하는 쇼다. 저는 쇼는 안 한다”라고 선을 그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한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실질적인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을 꼬집은 것으로, 비핵화 등 성과가 담보돼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북한이 껄끄러워하는 인권 문제도 정면으로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북한인권재단 설립(출범)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를 통해 북한 인권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비핵화와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한이 개방되면 북한 인권도 자연스럽게 실질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며 북한 인권문제를 후 순위로 미뤄놓은 문재인 정부와는 결이 다르다. 다만 대북 인도적 지원은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여전히 국경을 개방하지 않고 있고 그전부터 남측의 직접 지원은 꺼리는 분위기여서 실현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지난 3월 10일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고공정찰기 U-2S가 착륙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무력 도발이 증가하면서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는 3월 9일 미사일 방어 태세를 상향 조치했다고 밝혔다. ⓒ연합

문재인 정부의 대북 성과인 판문점선언 등 남북 합의를 계승할지도 불투명하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판문점선언이 2020년 연락사무소 폭파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평가하며 “아무리 정상 간 합의라도 북한이 지킬 의사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기존의 남북 합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북한의 태도, 한반도 정세, 국민적 합의 등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당선인은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원칙을 강조하는 대북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윤 당선인은 이러한 대북 기조 속에서도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드러내긴 했지만, 북한이 이에 호응할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남북 대립의 위기 속에서 5월 초 취임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의 잇따른 도발은 한미를 향한 정치적 메시지의 성격도 없지 않겠지만, 추후 협상하더라도 일단은 국방력을 키워 몸값을 높이자는 취지가 강해 보인다. 미중·미러 갈등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대응도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에 브레이크를 걸 마땅한 방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윤 당선인이 공언한 대로 북한의 무력시위에 강경하게 맞서면 자칫 긴장은 상당히 고조될 가능성이 짙다. 윤 당선인이 내건 한미연합훈련 ‘정상화’와 미국 전략 자산 전개 등은 북한이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며 비난하는 대표 메뉴다.

올해 전반기 한미연합훈련이 기존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한 지휘소 연습이 아닌 대규모 실기동 훈련으로 진행될 경우 북한은 ‘새 정부 길들이기’ 또는 ‘간 보기’ 차원에서 무력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제기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지만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킬 키는 결국 남쪽이 쥐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한반도 상황 변화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러시아와의 갈등에 미중경쟁,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중동 관리 등 눈앞의 현안이 첩첩산중이다. 미국이 한반도 상황을 관리할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군사적 무력시위가 이어지고 남쪽에서는 북한에 원칙적 대응을 강조하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형국이다.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쉽지 않아 보인다.

장 용 훈 연합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