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62022.04.

지난 3월 29일 터키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협상 대표단 ⓒ연합

분석

강대국 충돌과 맞물린 우크라이나 전쟁
지정학적 환경변화 정확히 읽어야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과 전쟁 이후의 유럽 안보지형의 변화를 알아보고 중간국 외교 딜레마 상황에서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2021년 말 우크라이나 국경에 러시아군이 집결하자 미국은 전쟁 시나리오를 경고했다. 이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만 명으로 추산되는 병력을 증강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위기가 불거졌다. 미국은 유럽 주둔 미군의 준비 태세를 점검하고 4,700명을 추가 파병했다. 러시아는 3만여 명의 병력을 벨라루스에 파견해 군사 압박 강도를 높였다. 이미 미국은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인원 철수 및 전쟁 개시일을 거론하면서 위기는 한층 고조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보는 러시아의 목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하고 돈바스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한 뒤 우크라이나 서부와 남부 및 북부 3면에서 전면 공격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결사적 항전으로 러시아군의 속전속결 전술을 성공적으로 저지해 냈지만 화력의 강도를 높여가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수도 키이우(키예프)와 마리우폴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이 파괴되면서 인명 손실과 300만 명을 훨씬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다섯 차례 회담으로 명확해진 러시아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이다. 러시아는 모든 블록에 가입하지 않는 스위스식 중립국화를 요구했으나 우크라이나는 유연한 중립국 모델과 함께 주요국들과 유엔안보리의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 의회 화상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보아 중립화안은 어떤 식으로든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겠다.

둘째, 크림반도의 러시아 영토 인정 및 돈바스 공화국의 독립 인정이다. 이는 크림반도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우크라이나 내 강경파의 반발과 내부 분열로 게릴라전화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러시아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전쟁 종식 관련 시나리오는 세 가지 정도이다. 첫째,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며 전쟁이 끝나는 것이다. NATO 가입을 포기하되 우크라이나식 중립국가 모델을 만들고 돈바스 지역 독립을 승인하게 되면 러시아는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된다.

둘째, 우크라이나의 분할이다. 전쟁에서 러시아의 압도적 승리가 어려운 상황일 경우 서부 러시아로부터 크림반도와 경우에 따라서는 남부 해안지대를 연결하는 지역을 러시아가 점령해 영토로 편입한 뒤 휴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이는 긴 기간의 힘든 전쟁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셋째, 러시아가 독립을 승인한 돈바스의 두 공화국을 편입하고 일부 분쟁지역을 남긴 뒤 퇴각하는 상황이다. 이는 러시아의 정치적 불안정이 고조되어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설 때 가능하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민간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무력 사용 중단을 위한 조속한 중재와 다면적 외교의 노력이 적극적으로 경주될 필요가 있다.

3월 27일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모습.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국외로 탈출한 우크라이나 난민은 370만 명을 돌파했다. ⓒ연합
전 세계가 감당해야 할 전쟁의 여파
이 전쟁은 ‘3중 전쟁’의 성격을 가지며 중층적 성격을 모두 고려해야 전모가 파악될 수 있다.

첫째, 유럽 안보질서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특히 미국과 러시아 간의 이질적 국제정치관이 충돌한 전쟁이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재구축하려는 미국과 전통적인 지정학적 현실주의에 입각해 자국의 지역 세력권을 재구축하려는 러시아가 충돌한 것이다.

둘째, 내부적인 이질성을 지닌 자국 영토 내 주민을 하나의 국민으로 승화하는 데 실패한 우크라이나 내에서 다수의 친서방적 서(西)와 소수의 친러시아적 동(東)이 분열·갈등한 분쟁, 즉 8년 가까이 진행되어 온 돈바스 전쟁의 연장이다.

셋째, 우크라이나의 주권적 대외노선의 실현 의지와 이를 저지하고 자국 세력권에 묶어 두려는 러시아의 강대국 정치 욕망이 충돌한 전쟁이다. 이 각각의 층위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갈등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낳고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다면적이다. 국제 정치적으로 신냉전적 대립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때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협력’ 수준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양자 간 협력이 한층 고조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제적 대러 제재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국익 보호 차원에서 대러 관계를 분야에 따라 선별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다. 인도나 이란, 중동·아프리카 국가들이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일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신냉전적 대립 구도는 과거 냉전에 비해 훨씬 유동적인 전선이 다층적으로 형성되는 특성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직적 대응보다 원칙에 근거하되 유연한 대응력을 갖춘 외교가 더욱 긴요한 상황이 될 것이다.

유럽 안보질서의 재편과 그 여파 또한 주목된다. 단기적으로 미국은 NATO 중심의 유럽 안보질서를 강화하는 이익을 봤다. 하지만 전쟁 이후 동부유럽 국가들의 안보 딜레마는 고조될 것이며 국내정치 보수화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성이 고조될 수 있다. 특히 유럽 내 완충 역할을 해 오던 회색지대 국가들의 역할이 줄면서 유럽 안보질서의 경직성을 높이며 유럽연합의 내부 결속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독일의 안보적 역할 증대이다. 이미 독일은 GDP 2%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하면서 본격적 무장을 예고한 터라 독일의 군사 대국화가 유럽 내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분열 이슈로 불거질 수 있다. 따라서 이 전쟁의 여파가 미국의 유럽에 대한 영향력과 유럽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예상은 성급한 판단이다. 유럽 안보질서의 조정 내지 재편은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는 복잡한 과정이 될 것이다.

세계 경제 여파도 심각하다. 유가와 식량을 비롯한 자원과 원료 수급에 대한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공급망 교란에 따른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한동안 계속될 수 있다. 오랜 팬데믹으로 침체된 경제를 재건해야 하는 각국 정부들로서는 여간 곤란한 상황이 아니다. 악화된 경제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정치 불안이 고조되면서 외부의 적을 통해 국내정치를 안정시키려는 시도가 발생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고조되는 국내정치적 불안은 불안정성이 높아가는 세계정치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월 16일 워싱턴DC 의사당 오디토리엄에 모인 미국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
중간국 외교 딜레마 극복을 위한 노력 요구
미국이 재부흥시키려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이에 도전하는 지정학적 현실주의에 입각한 강대국 정치의 충돌로 유라시아에는 다양한 전선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정학적 단층대상에 위치한 많은 국가에게 자강을 위한 노력의 중요성과 고도의 균형감을 갖춘 다층적 외교 역량을 요구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음을 강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러 전략협력 연대와 미국이 대립하는 세계적 안보 구도의 동진 및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된 유럽 지역정치가 우크라이나의 내부적 균열 구조와 중층적으로 맞물려 불거졌다. 이것은 유라시아 맞은편에서 형성되고 있는 지정학적 단층대에서 본질상 동일한 구조적 압력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전쟁은 활성화된 지정학적 단층대상에 위치한 중간국이 정밀하게 계산되고 준비되지 않은 채 시도하는 급격한 외교 균형점의 변동을 시작할 때 겪을 수 있는 위험을 잘 보여준다.

우크라이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강대국 지정학 간의 충돌이라는 환경에 대비하지 못했고 국내적으로 이질성을 가진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외교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는 지정학적 환경 변화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과 통합적 외교안보 정책의 국내정치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한국도 미중 전략 경쟁의 환경이 빚어내는 중간국 외교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외 환경 조건과 자국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반한 국익 중심의 실용적 외교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이런 외교를 실현하기 위해 자강의 노력도 중요하다. 경항모나 핵잠수함 또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구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대외정책의 국내정치적 합의 기반을 확장하고 든든히 하는 것이 긴요하다. 통독으로 결실된 서독의 동방정책은 튼튼한 국내정치적 합의를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일관성으로 추진된 외교적 성취의 성공사례이다. 한국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에 기반한 외교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선진적 산업화와 성공적 민주화를 바탕으로 한국적 외교의 원칙을 마련하고 일관된 외교를 통해 주변국의 신뢰와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외교안보적 과제는 신냉전의 파고가 높아가는 시기 한국의 새 정부가 진력해야 할 핵심적 숙제가 돼야 한다.

신 범 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