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평화
포성이 멈춘 폐허에 평화의 꽃은 피는가?
- 평화문화진지
1호선 도봉산역 서쪽에는 도봉산이, 동쪽에는 수락산이 있다. 두 산 사이의 길목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남침했던 곳이다. 당시 북한군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동두천, 포천, 의정부를 휩쓴 뒤 이 길목을 통해 서울을 점령했다. 이곳은 변변찮은 탱크 하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던 국군의 아픔이 서린 자리이다. 탱크와 군인의 발에 짓밟히고 총성이 울리고 포탄이 떨어졌던 이 길목에 이곳저곳이 부서진 콘크리트 위 나무를 덧대어 만든 단층 건물이 있다. 바로 평화문화진지다.
군사시설이 평화문화공간이 되기까지
평화문화진지.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작은 공연장이 있고 그림이 걸려 있다. 조각도 있고 연극도 한다고 한다. 전쟁박물관처럼 탱크와 장갑차도 있고 전망대도 있다. 멀리 유럽 독일에서 가져온 베를린 장벽도 있다.
평화, 문화, 예술, 창작, 전쟁, 통일, 역사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이렇게 뒤섞이면 소란스러울 법도 한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혹은 없었다는 듯 조용하다. 소리 없이 조용하지만 틀림없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전쟁이 그러하고 역사가 그러하고 평화가 그러하듯, 이곳은 무언가를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평화문화진지’ 이곳은 이름도 어딘가 이상하다. ‘평화문화’와 ‘진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진지(陣地)의 사전적 뜻은 ‘적과 교전할 목적으로 전투부대가 공격과 방어를 준비, 배치해둔 곳’이다. 보병진지, 포병진지, 기갑진지 등 진지와 어울리는 단어는 전쟁, 군사와 관련된 단어다.
유럽 독일에서 가져온 베를린 장벽의 일부
진지라는 단어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이곳은 본래 평화·문화·예술·창작을 위한 자리가 아닌 북한군의 탱크를 막기 위한 대전차방호시설이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1층은 콘크리트로 만든 벙커였다. 안전문제로 철거된 이전의 2층~4층에는 본래 아파트가 있었다. 군사시설 위에 아파트를 지은 것은 주거시설로 위장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군사시설이라는 것을 들키면 제 역할을 하기도 전에 선제공격을 받아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사시에는 건물 전체를 폭파해 붕괴시킬 계획도 있었다. 적이 시설을 점령했을 때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적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방해하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다. 이것이 바로 대전차방호벽이다. 그러니까 이 건물은 전쟁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전쟁에 쓰인 적은 없다.
2층~4층 아파트가 철거된 2004년 이후 남겨진 1층 대전 차방호시설은 2014년까지 10년간 흉물처럼 방치되었다. 2016년 서울시, 도봉구청, 60보병사단이 대전차방호시설 리모델링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고 2017년 10월 대전차방호시설의 흔적은 평화문화진지와 함께 문화예술공간으로 새로이 탄생했다.
전쟁을 기억하는 것이 곧 평화를 기억하는 것
평화문화진지의 역사는 6·25 전쟁 이후 남한의 역사와 닮았다. 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반공국가이자 병영국가였다. 북한의 위협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평화·문화·예술 같은 것들은 사치였다. 당시 국민들은 대전차방호시설 위 아파트처럼 군사시설 위에서 살았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말처럼 “한없이 가지고 싶은 건 높은 문화의 힘”인 민족이다. 영화 <기생충>, BTS의 음악,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 민족은 전쟁보다 평화 속에서 더욱 발전하는 힘을 가진 민족이다.
평화문화진지에서는 다양한 평화예술문화 전시물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소중한 평화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오랜 평화 속에서 우리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어떻게 100% 발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평화문화진지가 답한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상상을 해보자. 평화문화진지에 기관총이 설치되고, 탱크가 다가와 시설을 파괴한다. 아름다운 꽃이 탱크 캐터필러에 짓밟힌다. 이후로 우리는 이 자리에, 전쟁의 폐허 위에 평화와 문화의 진지를 다시 세울 수 있을까?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전쟁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평화 속에서 누구보다 발전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은 다시 한번 전쟁의 폐허 위에 평화의 진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전차방호시설이 평화문화진지로, 병영국가가 평화국가로 바뀌는 데 50년이 걸렸던 데 반해 이번에는 100년이 걸릴지, 200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을 뿐이다.
평화문화진지는 단순히 평화를 외치는 장소가 아니다. 전쟁 위에 세워진 평화를 증명하는 장소다. 평화는 전쟁을 지워 버리고 잊어버린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전쟁을 잊은 자리에서는 새로운 전쟁이 태어난다. 전쟁에 대한 망각은 곧 전쟁의 끔찍함에 대한 망각이다. 전쟁의 끔찍함을 기억할 때 평화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 위에 평화를 굳건히 세워야 한다. 대전차방호시설 위에 평화 문화진지를 지었듯, 전쟁의 참혹한 기억 위에 평화와 문화의 꽃을 심자.
이 선 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도봉구협의회 국민소통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