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북핵 위협과 안보위기 관리
주인의식 가지고 국제사회와 협력 모색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는 배경과 북핵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지금 세계는 ‘강 대 강(强對强)’의 충돌로 신냉전이 가속화하고 있다.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각축전, 세계적 경제문제 발생과 갈등 심화, 코로나19 여파 속에서 또 한 번의 지정학적 대립이 재현되고 있다. 한반도 역시 북한의 전례 없는 미사일 발사 실험에 이어 7차 핵실험 정황까지 포착되는 등 경색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한반도 상황은 마치 2017년의 모습과 흡사하다. 당시 미국과 한국에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북한은 화성 12호, 14호, 15호 등 ICBM의 사정거리를 확대해 가며 발사했고 6차 핵실험으로 마무리했다. 패턴으로만 보면 올해 북한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파기하고 화성 17형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자신들의 과거를 답습한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부터 북한이 주변 상황이 자신들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핵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표현을 지속해 왔음을 상기해 볼 때 또 한 번의 핵실험은 시기의 문제일 뿐 그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왜 핵보유국 지위에 집착하는가?
북한은 올해에만 30여 발이 넘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최근 3년 동안 70여 발에 가까운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김정은 위원장이 4월 열병식에서 ‘핵무기가 선제공격용’임을 언급한 것은 미사일 실험을 지속해 얻은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정부 출범시마다 그랬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한 경고와 위협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화하기에 껄끄러운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력 제고를 위한 대미 메시지의 성격이 강하다. 북한이 6월 제8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대적(對敵)투쟁’을 언급하며 한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강 대 강(强對强), 정면승부의 투쟁 원칙’을 내세운 것도 자신들의 불편한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비록 합리적이진 못하지만 자신들의 목표를 분명히 알고 있고 목표를 향한 집요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대내외적으로 사정이 녹록지 못한 북한이 국제제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핵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을 제외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3개국은 핵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국제제재가 없다. 이는 미국 외교정책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핵을 보유하면서 제재도 받지 않는 국가가 되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이다. 북한이 한국 정부의 원점 타격 발언에 대해 “핵보유국을 상대로 선제타격 운운하는 것은 객기”라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 재차 언급한 것도 자신들의 목표가 변함없음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해석된다.
이미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핵무기를 유산으로 물려받고 2012년 4월 12기 5차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던 북한. 어쩌면 북한은 10년이 지난 올해를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울 해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6차 핵실험을 통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던 그들에게 7차 핵실험은 핵보유를 ‘공인(公認)’받고자 하는 희망적 메시지의 발현 아닐까? 지금 미국은 미중 경쟁과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핵 문제,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등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미국에게 있어 북한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이 핵보유국이란 목표에 다가가는 데 그 어느 시기보다 적기(適期)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것을 알고 있는 북한의 마지막 승부수는 당연히 미국과의 거래에 있다.
중요한 자산이자 억지력인 한미동맹을 실질적 차원에서 심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은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전경 ⓒ연합
핵 고도화와 실리 사이 기로에 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수령체제를 유지하며 장기간 지도자로 군림하기 위한 통치 구상과 정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정책은 지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대폭 수정한 윤석열 정부와 미국이라는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특히 미국이라는 존재는 중요한 결정인자로 자리 잡고 있다. 핵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정책은 어떤 것 하나도 미국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해결될 수 없다. 특히 이전과는 다른 대북정책과 한미 공조는 북한에 불리한 여건이자 장애물이다. 더욱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정책 목표를 분명히 한 것은 북한으로서는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력’을 강조하고 있는 북한은 이중기준 철회와 적대시 정책 철회를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정책적 딜레마는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이러한 장애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며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대 전략에는 바로 이러한 딜레마가 반영되어 있다. 현재로서 북한은 핵무력 외에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곧 협상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1인 장기 통치체제에서 수령체제의 존속과 밀접히 연관된 군사적 정책의 양보는 어려운 일이다.
북한은 또 한 번 중대 기로에 서 있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업적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질 경우 이들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핵무기에 더욱 집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핵을 포기하고 실리를 챙기자니 수령체제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북한은 핵을 통한 위협을 지속하고 실리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한미와 국제사회의 요구를 일정 부분이나마 수용할 것인지를 두고 심사숙고 해야 할 시점에 섰다.
지난 6월에 열린 제8기 제5차 전원회의 모습 ⓒ연합/조선중앙통신
북핵 위기관리, 어떻게 해야 할까
돌이켜보면 지난 30년간 우리 역대 정부들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변화를 인지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핵이 더욱 고도화되었다는 것 이외에 인권, 자유는 물론이고 개방 등 긍정적인 변화를 느낄 만한 부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앞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어떤 일을 추진하든 그 초점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가 설정된 만큼 북핵 문제가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세상만사가 그렇지만 핵 문제 역시도 당사자로서 주인의식을 가지지 않고서는 해결해 나가기 어렵다. 북한은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이지만 독재체제와 핵개발 등 한반도의 안정과 국민의 삶을 해치는 행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우리의 지속적인 삶을 위한 원칙으로 이 점을 분명히 할 때 최소한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원칙과 협력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 모색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목표인 동시에 북한의 대화 복귀와 실질적 비핵화 진전을 유도해 나가는 과정이다.
또한 한반도 안정을 위한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법들을 마련해야 한다. 핵무기가 없는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등 억지력을 사용해야 한다. 미국이 역량을 총동원해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한미 간 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이러한 확장억제가 어떤 정도이고 얼마나 실행력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확장억제가 국민에게 보다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수준으로 끌어올려 신뢰성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미 간 맞춤형 확장억제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립하고 실행력 있는 추진체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한미동맹과 더불어 주변국 및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더욱 구체적인 차원에서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미동맹은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자산이자 억지력이지만 서로 간에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 한미 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비전에 합의한 만큼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증진하여 미영동맹, 미일동맹 차원의 결속력 정도로 동맹을 실질적 차원에서 심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북핵 문제가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문제라는 점에서 주변국인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과 균형발전 전략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협력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구상인 ‘글로벌 중추국가’ 실현은 역내 국가들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는 외교역량 강화에 초점이 있다.
차가운 겨울부터 이어졌던 북한의 핵 위협은 봄이 지나도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이내 여름은 가을 로 이어지고 겨울을 부를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세상의 변화에도 변화를 거부한 채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핵무력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지속해서 개발할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요구를 제시하며 요구사항에 대한 강한 집중력과 집착력도 과시할 것이다. 세계적인 대변혁기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생존을 위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 먹거리를 지켜내고 세계와 경쟁해 나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북한 문제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하지만 안정과 번영, 평화를 만들고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의지와 공감이 위기 극복의 근본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인식해야 한다.
안 제 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