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칼럼
‘선의’의 군비경쟁은
가능한가
‘선의’의 군비경쟁과 관계진전의 병행이란 논리가 남북관계에 적용될 수 있을까? 전작권 임기 내 반환과 남북관계 조기 진전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두 마리 토끼론과 같은 정책 목표의 한계는 여기서 출발한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여러 인텔리전스나 당시까지 알려진 북한의 제한적 핵능력 등을 고려하면 시도해 볼 만하다는 판단도 존중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 나온 배경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2018년에 이어진 세기의 정상회담들에서 실효성을 지니는 듯이 보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자신감을 갖고 꾸준히 국방비 증액과 군 자주권 강화에 나섰고 첨단 군사 부문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라든지 나로호, 누리호 발사, 한미연합훈련 강행, 국방비 증액 등과 같은 것은 이런 인식 하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북한의 남북관계 파탄 선언의 결정판이 2019년 8월이었고 거기에는 8월 한미연합훈련이 배경으로 작동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문 대통령의 국방과 관련한 의지를 둘러싼 남북 간의 충돌이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역할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판단 그리고 이에 대한 볼턴 보좌관의 활약(?) 등에 대한 볼턴의 기록이나 우드워즈가 공개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등은 이와 관련한 많은 의문점을 풀어준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 남과 북은 사실상 제대로 된 대화의 장을 열지 못하고 2022년 문 대통령-김 위원장 친서 교환을 끝으로 역사의 장을 닫았다. 그리고 남북 군비경쟁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쇼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소위 북한의 ‘이중기준’ 폐기 주장은 이 같은 ‘선의’의 군비경쟁론을 진정한 ‘선의’가 되게 하자는 주장일진대, 북한의 비대칭 군사(핵)능력이나 이로 인한 국제사회에서의 불법적 지위 즉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국이라는 처지에 변동이 없는 한 ‘이중기준론’의 적용은 불가피하다. 당분간 ‘선의’라는 해석 메커니즘은 작동하기 어렵고 한국 정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중기준론은 형태를 바꿔서라도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 민간 위성인 누리호 발사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예측되지 않는 것도 그래서이다.
‘선의의 군비경쟁’을 군비통제라고 읽기에는 시기상조이고 또한 나이브하지만, 거기에는 최소한의 안전판 기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 현실주의적인 ‘힘에 의한 평화’론이 실패할 때 갖고 올 수 있는 무한대의 잠재적 비용도 고려 대상이기 때문이다. 만약에라도 있을 북한의 맞대응이나 핵실험 앞에서는 단호해야겠지만, 냉정과 자제를 잃고 평화의 공든 탑을 무너뜨릴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통합이나 한반도 평화관리 심지어 동맹관리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그널링으로 평가받는 통일부 장관의 ‘이어달리기’론에 기대를 버리지 않는 이유이다.
※ 평화통일 칼럼은 「평화+통일」 기획편집위원들이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 정 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