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한반도
말라리아의 한반도 대공습
말라리아 방역 ‘남과 북이 함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남북 공동의 협력 필요
우리말에 “학을 떼다”라는 표현이 있다. ‘학(瘧)’은 말라리아를 뜻하는데 ‘학’, ‘학질’ 또는 하루걸러 열이 오르내린다고 하여 ‘하루거리’라고도 했다. 좋은 약이 없던 시절 말라리아에 걸리면 발열, 오한, 근육통 때문에 고생이 심할 뿐 아니라 쉽게 낫지도 않아 해당 표현은 “어려운 상황이나 곤란한 일로 진땀 뺀다”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이처럼 우리말에 녹아 있을 정도로 말라리아는 조상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일례로 말라리아에 관련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 96번이나 기록되어 있어 역사 사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말라리아의 완전한 퇴치 위해 꾸준한 노력 필요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열원충(Plasmodium sp.)은 5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주로 유행하는 말라리아는 삼일열원충(Plasmodium vivax)에 의한 삼일열 말라리아다. 열대지역에서 주로 유행하는 열대열 말라리아보다 치사율도 낮고 비교적 쉽게 치료된다.
우리나라는 1959년~1969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공동으로 말라리아 근절사업을 시행하며 꾸준히 노력한 결과 1979년 말라리아 퇴치 지역으로 WHO의 인증을 받았다. 그러다가 1993년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복무하던 사병이 삼일열 말라리아 확진을 받은 이후 1994년부터 군사분계선 지역에 근무하는 군장병들에게서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8년 이후 민간인 발생률도 증가해 2003년 이후에는 민간인이 전체 감염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7년부터 군인 대상으로 클로로퀸과 프리마퀸을 예방적으로 투약하고 모기 기피제가 처리된 군복을 지급하는 등 방역 노력을 한 결과 2000년 4,100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점차 감소해 현재는 인천, 경기·강원 북부 지역에서 매년 500명 이내의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다. 감염자 수는 2021년 294명, 2022년 66명으로 점차 줄었다.
역학조사 결과 재출현한 말라리아 감염자는 북한으로부터 유래한 열원충 감염 모기에 의해 발생했고 이후 국소적으로 토착 유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질병관리본부는 2021년까지 말라리아 환자발생을 0건으로 만들고 이를 3년간 유지해 2024년에 WHO의 말라리아 퇴치 인증을 받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아직 완전한 퇴치는 달성하지 못했다. 완전한 퇴치를 위해선 꾸준한 방역 노력 외에도 약제내성 말라리아의 출현, 살충제 내성 모기의 출현, 기후변화 등의 문제들을 극복해야 한다.
접경지를 중심으로 높은 발생률 보이는 말라리아
한편 2017년 북한 보건성에서 발표한 ‘말라리아 제거 전략(National Malaria Elimination Strategy 2018-2022)’ 보고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1998년 말라리아가 재유행하기 시작해 2001년 29만 6,540명의 감염자 발생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WHO와 공동으로 ‘말라리아 관리프로그램(National Malaria Control Program 1999-2007)’을 실시해 예방적 프리마퀸 집단투약, 모기 관리, 조기 진단 및 치료를 통해 2007년에는 감염자가 7,436명으로 대폭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말라리아 전략적 계획(National Malaria Strategic Plan 2013-2017)’을 수립해 감염자는 2016년 5,113명으로 감소했다. WHO의 ‘2020 세계 말라리아 보고서’에 의하면 2019년 북한의 말라리아 발병 건수는 1,869건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를 제외한 북한 전 지역에서 말라리아가 발생하고 있는데 2011년 말라리아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15명이었다. 특히 군사분계선에 가까운 3개도에서는 10만 명당 150명 이상의 높은 발생률을 보였다. 해가 갈수록 말라리아 발생률은 감소하는 추세지만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3개 도에서는 10만 명당 50명 이상으로 여전히 높은 발생률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2022년까지 말라리아의 지역 전파를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목표로 ‘말라리아 제거 전략’을 시행하여 2025년까지 WHO로부터 말라리아 퇴치 지역으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남북한 지역에서 주로 유행하고 있어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닌 남북한 공동의 보건문제라 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2001년부터 WHO를 통해 치료제, 모기장, 현미경 및 실험 시약, 소독제 등 말라리아 방역용품을 북한에 지원했으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지원 및 남북 공동방역이 중단되면서 남한의 경기도 지역에서 말라리아가 여전히 유행하고 있다.
말라리아처럼 모기와 같은 매개체가 전파하는 감염병은 국경봉쇄로 해결할 수 없다. 지속 확산하는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호 협력이 필수적이다. 남북은 2007년 남북보건의료·환경보호협력분과위원회에서 처음으로 감염병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합의했다. 이후 2018년 남북 보건의료협력 분과회담에서 전염병 정보 교환을 시범실시하기로 하고 진단과 예방, 치료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으나 실질적인 행동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말라리아 사례처럼 감염병은 성공적으로 관리되는 듯 보이다가도 자연재해나 전쟁, 환경 변화 등의 요인으로 재유행하는 양상을 보인다. 감염병 관리는 일시적인 노력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기 때문에 꾸준하고 안정적인 남북한 공동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또 상호 정보 교류, 진단검사 장비 및 의약품 지원, 보건협정 체결 등 실질적인 공동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 문제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최 민 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열대의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