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92022.07.

IPEF에 가입한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질서 확립의 선도적 역할 계기 마련, 한미 협력의 강화라는 이중의 효과를 기대 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지난 5월 23일 열린 IPEF 출범행사 현장 ⓒ연합

분석

한미정상회담 이후

동북아시아 질서의 역학구도

지난 5월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은 양자 협력의 확대를 기반으로 지역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이 지역 또는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면서 ‘규칙 제정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과제를 진단한다.

2022년 5월 10일 출범한 새 정부 대외정책의 핵심은 한미관계를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시켜 협력의 지평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state)의 위상을 확보하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10여 일 만에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새 정부의 대외정책에서 한미 동맹의 활성화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역내 평화와 번영의 ‘린치핀’으로서 한반도를 넘어 민주주의, 경제, 기술 분야에서 중추적 선도자로 성장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경제안보와 기술 협력의 초석을 마련한 한미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은 평화와 안보를 핵심축으로 설정하여 전통적인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방침을 명시하는 한편, 공급망 재편과 첨단기술 협력 등 경제안보 분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미동맹을 한반도 문제를 넘어선 지구적 이슈의 협력을 위한 글로벌 전략 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등 현재의 위협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래 지향적 협력 분야를 발굴하여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는 데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가 있다.

전통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 면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의 반복적인 도발과 핵 프로그램의 진행이 동북아 지역은 물론 세계 평화와 안정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의 포기를 위한 국제 공조를 지속하고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공조 메커니즘인 ‘한미 외교국방(2+2)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가능한 조기에 재가동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확장억제를 명시적으로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대북정책을 함께 추구할 방침도 밝혔다. 한미 양국이 대북 인도적 지원, 특히 북한의 코로나19 대응을 지원하기 위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한미협력의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와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세계 주요국들은 저마다 자국 우선주의를 경쟁적으로 추구해 왔다. 코로나19 및 공급망 교란 등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보호주의와 경제적 상호의존을 상대국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무기화된 상호의존이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한미관계를 글로벌 포괄적전략 동맹으로 설정한 것은 이처럼 비전통적 안보 위협의 확산이라는 지구적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인식한 결과이다.

한미 정상은 이와 관련 경제안보와 기술 협력의 강화를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한미관계에서 경제안보와 기술 협력의 중요성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동선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에서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 시설인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첫 방문지로 선택하고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가 한미동맹의 최우선 과제임을 확인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50분간의 면담으로 방한 일정을 마친 것 역시 경제안보와 기술 협력의 중요성을 거듭 확인한 부분이다. 미국은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55억 달러를 투입하여 전기자동차 전용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데 대해 22조 원에 달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이 전통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양자 협력을 넘어 경제안보와 기술 협력으로 확대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지난 5월 20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함께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시찰했다. ⓒ연합
지역 차원의 협력 강화로 외교 지평 확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양국은 양자 협력의 심화와 확대를 기반으로 지역 차원의 협력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지역 차원의 협력은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지역 평화와 번영의 증진에 기여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대외 환경을 조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한국의 지역 협력 강화는 바이든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호응하는 의미가 있다. IPEF는 미국이 아시아 지역질서의 변화를 위한 제도적 관여를 복원한다는 점에서 ‘아시아 회귀 2.0(Pivot to Asia 2.0)’이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견제 전략의 일환으로 군사와 경제 분야에서 아시아 회귀를 천명했다. 그러나 중동 문제의 악화로 군사적 차원의 회귀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적 관여를 위한 제도적 통로였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미국은 아시아 지역질서 변화를 역외 이해관계자로서 지켜봐야 했다. 이러한 전략적 공백을 틈탄 중국은 일대일로, 디지털 실크로드(DSR),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 등 지역 전략을 확대함으로써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IPEF는 미국의 지역 및 세계 전략이 쿼드(QUAD), 파이브아이즈(Five Eyes), 오커스(AUKUS) 등 안보 협력을 중심으로 전개된 데 대해 경제 협력을 지역 다자 차원에서 추진함으로써 안보와 경제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가 있다. IPEF가 인도·태평양 전략의 ‘경제적 날개(economic wing)’로 불리기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IPEF는 또한 기존 국제질서에서 규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분야의 규칙을 수립한다는 의미가 있다. 규칙 기반 질서의 수립을 위해서는 지역 전략의 다자화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IPEF는 양자 또는 소다자 협력을 중심으로 전개됐던 기존 인도·태평양 전략을 보완한다.

한국은 IPEF 출범과 동시에 이에 가입함으로써 한미관계의 확대는 물론 규칙 추종자(rule follower)에서 규칙 제정자(rule maker)로 그 위상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연결 경제(connected economy), 회복력 있는 경제(resilient economy), 청정 경제(clean economy), 공정 경제(fair economy) 등 4대 축으로 구성된 IPEF는 기존 국제질서에서 규칙이 확립되지 않은 이슈를 대거 포함시킴으로써 21세기 규칙을 선도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슈의 난이도가 높은 만큼 참가국 사이의 합의를 도출하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네 영역의 참여를 의무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허용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할 때 IPEF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미국은 한국과 같은 핵심 국가들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이러한 면에서 IPEF를 통해 규칙 기반의 지역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한국은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가운데 한미협력이 강화되는 이중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 5월 2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쿼드 정상회의 모습 ⓒ연합
효과적인 IPEF 대응을 위한 한국의 전략
한국이 IPEF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IPEF는 미국 의회의 비준을 필요로 하지 않는 행정명령의 형태로 추진되어 구속력에 문제가 있다는 점과 시장 접근의 확대와 같은 개도국의 협력을 유인할 인센티브가 크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IPEF가 이러한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리더십은 물론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 등 핵심 국가들의 선도적 역할이 요구된다. 한국은 IPEF의 핵심 국가들 사이의 새로운 규칙 수립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도록 협력을 촉진하는 중견국 외교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다. 새 정부는 특히 경제 분야 도전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일 양자 차원의 관계 개선이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한·미·일 삼각협력 또는 IPEF와 같은 지역 차원의 협력을 매개로 한일관계의 개선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협력의 경험이 한일 간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소다자, 지역, 다자 차원의 협력의 접점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셋째, IPEF가 배타적인 대중국 견제전략의 성격을 띠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IPEF에 중국 견제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한국은 IPEF를 새로운 규칙 기반의 질서를 수립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지역 또는 글로벌 도전에 대한 대응을 위해 책임 있는 역할과 기여를 지향하고 있다는 신호를 일관성 있게 발신해야 한다.

이 승 주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