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92022.07.

평화통일 창

북한의 아파트,
욕망의 모노리스

2017년 4월 13일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여명거리 준공식이 개최됐다. 여명거리 준공식을 두고 북한은 사전에 외신 기자들에게 ‘빅 이벤트’를 볼 준비를 하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외신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근거리 촬영을 허용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2016년 9월 제5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2321호)가 한층 강화된 시점에서 북한은 대북제재를 비웃듯 여명거리의 모습을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드러냈다.

강성국가의 위용을 강조하는 건설정치
여명거리 준공식 몇 년 전인 2014년 5월 북한의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 1동에서 23층 아파트(1개동 92세대)가 붕괴하는 사고로 약 500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이 주민들 앞에서 머리를 숙여 사과하는 장면이 이례적으로 공개됐다. 평양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형 붕괴사고는 북한이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는 ‘속도전’식 건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지만, 그로부터 여명거리 준공식까지 북한의 대규모 아파트 거리 조성사업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국적으로 계속됐다.

김정은 집권 10년을 가장 함축적으로 특징짓는 용어는 핵무기 고도화와 함께 ‘건설 붐’일 것이다. 2012년 집권 이후 거의 매년 대규모 아파트 건설 이외에도 굵직한 건축물들이 전국 도시 곳곳에 건설됐다. 집권 10년 내내 북한은 ‘공사 중’이었다. 특히 코로나19 비상방역 속에서도 매년 1만 세대씩, 2025년까지 평양에 총 5만 세대 살림집 건설의 기치를 내세웠다. 2021년 제8차 당대회 이후 핵무기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과 동시에 평양과 지방에 대규모 살림집 건설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식 건설정치는 ‘사회주의문명국’론 및 ‘핵강국’론과 표리일체로 담론화되어 왔다. ‘사회주의문명국’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2013년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선언하며 그 지위에 걸맞은 문명국의 위용을 강조해 왔다. 대규모 건설과 거리 조성 등을 통한 통치 공간의 스펙터클화, 도시의 경관화는 ‘핵강국’의 위상과 정당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각적 담론에 해당한다. 이 용어들은 이후 강성국가, 전략국가 등으로 변용되지만, 뜻하는 본질은 동일하다. 다시 말해 ‘건설정치’는 ‘핵정치’와 연결돼 있다. 또한 대규모 건설사업은 시장 메커니즘과 결합된 ‘김정은식 경기 부양’ 및 ‘시장 효과’와도 관련돼 있다. 도시 건설사업 ‘붐’은 정권의 이해, 주민 및 관료들의 이해, 그리고 시장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2025년까지 평양에 총 5만 세대 살림집 건설의 기치를 내세웠다. 사진은 2018년 평양시 주택가 건물 전경 ⓒ연합
복합적 욕구가 결합된 아파트 건설 붐
아파트 건설은 정치적인 경관(political landscape) 또는 통치전략과도 관련이 있다. 북한에서 아파트는 과거부터 체제의 우월성을 전시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인공물(artifact)이었다. 여기에 건설 ‘속도’를 강조하면서 도시의 경관을 빠른 시간에 전변시키는 ‘기적’의 상징이다. 대규모 아파트로 가득 찬 경관과 건설 실적은 ‘발전’ 또는 ‘체제 우월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간주됐다. 북한의 아파트 건설은 보여주기 위한 계획적 미화, 권력의 상징으로서 기념비적인 것, 연극으로서의 건축에 해당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 대규모 아파트 건설은 ‘기획된’ 건설 붐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부동산 열풍’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투자(아파트 건설 및 분양 투자)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의 등장은 이제 새롭지 않다. 음성화돼 있던 부동산 거래 시장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김정은의 집권 이후 만들어졌다. 평양과 주요 도시에서 지위가 높은 간부와 부유층 사이에서는 아파트를 통해 자신이 가진 권력과 위세를 과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로 인해 실내 장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실내 장식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권세를 과시하는 측면 이상으로 자신의 사적 공간을 꾸미는 욕구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북한에서 아파트 건설은 각 권력기관들이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개별 관료들이 개인 이익을 챙기는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위로부터 주어진 건설 할당량을 달성하는 한편 이익도 남기려는 주요 권력기관·기업소의 생존 논리, 대규모 건설을 통해 통치 능력과 치적을 과시하려는 당국과 최고지도부의 정치적 욕구, 부동산 거래로 차익을 남겨 부를 축적하려는 민간 자본의 경제적 욕구, 그리고 건설에 들어가는 자재, 시멘트, 장비, 인력 등으로 활성화된 각종 생산 및 유통시장의 관계자들. 이 모든 것들이 결합돼 북한의 건설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선택 2022] 다음호에 보고싶은 평화통일 창 주제는?


QR코드 QR코드를 인식해 직접 골라주세요!

북한에도 4D가 있다?
북한의 영화관

현장중계 가능할까?
북한의 재난방송

어떤 주제를 다룰까?
북한의 시사만화



홍 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