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42022.12.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강대국 정치’의 귀환은 2022년 국제질서의 불안정성을 고조시켰다.
사진은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 지역에서 우크라이나를 향해 발사된 로켓포탄들이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관측되는 모습 ©연합

국제

국제질서 대전환기

2022년 국제정세와
2023년 한국의 외교전략

국제질서 대전환기로 평가되는 2022년 국제정세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2023년 한국의 외교전략을 모색한다.

2022년 올 한 해 국제정세와 관련해 국내외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표현을 꼽자면 단연 ‘대전환’이다. 국제사회에서 다수의 커다란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국제질서가 안정성을 상실했는데 이러한 안정성 문제가 구조적인 차원에서 기인한 까닭에 국제질서의 ‘대전환’에 직면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커다란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침공(2월 24일), 미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의원의 대만 방문(8월 2일),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를 통한 시진핑 주석의 3연임 결정(10월 23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바이든 대통령 버전의 ‘아메리카 퍼스트’라 볼 수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역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보호주의적 성격의 결정이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우방을 포함해 향후 국제경제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강대국 정치’의 귀환과 불안정성 고조
어느 해인들 국제질서가 요동치지 않았던 적이 있었겠냐만 특히 올해는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국제질서 대전환’이라는 표현이 그 어느 때보다설득력 있게 들린다. 사실 국제질서의 균열 혹은 조정 국면에 대한 분석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돼 왔다. 조지프 나이(Joseph Nye, Jr.)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의 분석처럼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2010년쯤부터 미국의 국제적 위상 하락이 가속화됐고 중국의 부상이 경제 영역뿐 아니라 군사 강대국화 프로젝트로 연결되면서 미중 충돌의 심각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세계화 이후 약 20년간 미국 주도의 단극질서가 있었고 여러 요인에 의해 국제안보 현안에 투입할 수 있는 미국의 정책 리소스가 줄어들면서 미중 갈등은 제도적 차원을 포함한 전방위적 경쟁으로 전환됐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 국제질서 안정성 사이에 대한 고민은 세계화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으로 퍼져나갔고 결과적으로 소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균열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게 됐다. 수년 전부터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사건(Brexit)이 발생했고 지난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상징되듯 포퓰리즘 정치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지배적인 현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냉전 종식 후 30여 년 동안 진행된 세계화가 양극화, 인권, 질병, 기후변화 등과 같은 지구촌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배경이 됐다는 반성과 함께 소위 ‘국제질서 대전환’이라는 일종의 인류 문명사적 난제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2년에는 국제질서에서 특히 주목할 수밖에 없는 국제안보 위기 사안들이 많이 발생했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강대국 정치’의 귀환으로 인해 불안정성이 더욱 고조됐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질서에서 정착되고 공고화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여러 차원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에는 동감할 수 있지만 현 국제질서가 안고 있는 다양한 장점과 특징을 대체할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짐작건대 새로운 국제질서의 등장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단위 국가, 국가 간 관계를 규정하는 다양한 국제제도, 그리고 목표와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을 제도적으로 결합한 다자주의 등 세 가지를 핵심 구성 요소로 상정했는데 현행 국제질서는 관리, 유지 및 안정성에 있어 여전히 매우 효과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의 국제질서 역시 몇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70년대의 데탕트, 1985년의 플라자 합의, 세계화 이후 자유무역질서의 확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안정화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현 국제질서는 물론 향후 국제질서는 어느 특정 국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면에서 다자주의적 협조 체제가 불가피하다.
사진은 지난 6월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각료회의에서 다자주의를 통한 연대를 강조하는 모습 ⓒWTO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중 갈등 악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올 한 해 논란이 됐던 ‘국제질서 대전환’은 상대적으로 ‘강대국 정치’에 초점을 맞춘 경향이 있고, 결국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중 갈등 악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남는다. 우선 우크라이나 사태부터 살펴보면 세계화 30년 동안 미국이 유럽 지역에서 추진한 ‘러시아 묶어두기’ 전략은 성공했고 러시아의 관점에서 불만과 안보 불안이 증폭됐다. 이런 배경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미중 갈등이 첨예한 수준으로 심화되고 바이든 정부 이후 ‘인도·태평양 전략’이 더욱 강조되면서 아마도 러시아는 미국이 지난 30년 동안 자신에게 그랬듯이 중국이 미국을 아시아 지역에 ‘묶어두는 전략’이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러시아의 전략적 판단에 몇 차례 중요한 문제점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전쟁 이후 러시아의 글로벌 지위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그만큼 미국식 제도가 가진 장점에 대한 관심이 또다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으로 2022년 들어 더욱 악화된 미중 갈등 구조를 살펴볼 때 아직까지 글로벌 차원의 ‘복합 국력(Overall power)’ 관점에서는 여전히 미중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GDP와 같은 산업생산력에 초점을 둔 국력을 기준으로 하면 2040년을 전후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약 20년간 전개된 미중 갈등이 일종의 단계적 국면을 바꿔가면서 진행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발견되기 시작했던 ‘사건 중심적인 경쟁(even-driven competition)’, 2010년 전후를 시점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제도 중심적인 경쟁(institution-driven competition)’, 그리고 최근 글로벌 질서 수립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표준지향적인 경쟁(global standard-driven competition)’에 이르기까지 미중 경쟁은 일정한 시간적 격차에 따라 흥미로운 변화를 보여 왔다. 이런 맥락에서 2022년은 미중 갈등의 3단계 국면은 소위 ‘표준지향적인 경쟁’이 구체화된 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강대국 정치’ 귀환의 징후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지만 작금의 국제질서 생존력은 향후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다. 새로운 국제질서의 등장은 단위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원칙과 제도적 합의에 대한 필요성이 인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 국제질서는 물론 향후 국제질서는 어느 특정 국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다자주의적 협조체제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이 자명해 보인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약 20년간 전개된 미중 갈등이 일종의 단계적 국면을 바꿔가면서 진행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모습 ©연합
2023년 국제질서 전망
그렇다면 2023년에 우리가 맞이할 국제질서는 어떤 모습일까? 중간선거에서 정치적 승리를 거둔 미국은 민주당 외교의 정체성을 더욱 강조해 가치, 인권, 개방성, 민주주의 등을 내세운 외교 정책을 전개하고자 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 시진핑 주석 3연임의 공식적인 시작이 내년 3월이고 대내외적인 시각이 아직은 권위주의 리더십을 불편하게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미국과 궁극적인 대결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특정 사안에 있어서 공존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에서는 올겨울이 지나고 각국의 에너지 문제, 외교노선 문제, 푸틴 리더십에 대한 용인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공동체는 유지하되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서의 갈등은 세분화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외교 스탠스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심각한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내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을 다시 한 번 곱씹어야 하는 시점이다. 1953년 7월에 체결된 ‘정전협정’ 70주년이자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계된 한미동맹이 70주년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율성을 추구한 사례가 몇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보수 정권일수록 한미동맹 관계에서 실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 우리가 취해왔던 것처럼 ‘한국 외교는 가치와 원칙에 입각해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존중한다’는 원칙론적 입장을 유지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글로벌 스탠다드’는 곧 ‘미국식 스탠다드’를 의미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동남아 순방을 통해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균형을 잡아줄 의미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국제질서 대전환’의 명분하에 새롭게 전개될 ‘세계화 2.0’이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될지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했던 세계화와는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외교안보 환경의 악화는 한반도 평화 그리고 한국의 국가이익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임에 틀림없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의 국가 정체성에 기반해 중심을 잡는 일이 중요하다. 한반도와 국제질서 대전환이 어떤 맥락과 이해관계에서 교차하는가의 문제는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으로 구성(social construction)돼야 한다. 사회적 구성은 논의의 ‘개방 및 자유’와는 다르다. 역설적이지만 국제질서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 한반도 안보와 평화 문제에 대한 논의가 더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평화를 실천하는 가장 현명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박 인 휘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