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현장
한국 최초 탈북민 야구단 ‘챌린저스’ 분투기
꿈을 향해 던지다
“꿈이나 좋아하는 일이 있니?”
“야구를 계속 하다보니까 관심이 커져서 야구 선수를 해보고 싶어요.”
지난 11월 탈북민 청소년 야구단 ‘챌린저스’에 들어온 17살 민규(가명)가 한 말이다. 야구가 일상적인 한국에서는 흔히 들어볼 수 있는 대답일지 몰라도 중국에서 출생한 이른바 ‘제3국 출신 탈북민 2세’인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지난 4년 간의 힘들었던 일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통일야구로 새로운 역사를 쓰다
필자가 이사로 참여하는 (사)새한반도야구회는 2021년 7월 통일부에 등록된 사단법인 야구 단체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이보다 훨씬 길다. 첫 시작은 남북대화 열기가 한창이던 2018년 8월이었다. 재일교포 3세 사업가인 김현 씨(현 이사장)가 일본 도쿄에서 ‘북한에 야구를 널리 알리자’는 비전 아래 종자돈을 들고 서울에 온 것이다.
우리는 논의 끝에 한국 최초로 교육부 공식인가를 받은 탈북민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찾아 야구단 창설을 제안했다. 설립 초기부터 학교를 지켜온 조명숙 교감(현 교장)은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보자며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한국 최초의 탈북민 청소년 야구단 ‘챌린저스’
12명의 선수가 소속된 챌린저스의 훈련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진행된다. 선수들 대부분은 여명학교에 다니는 중고등학생과 졸업생으로,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북한에서 바로 한국으로 온 선수와 제3국 출신 선수의 비율이 반반을 이뤄 우리말과 중국어가 여기저기 난무하지만 어느새 야구공 하나로 하나가 된다.
북한에서 야구는 ‘자본주의 스포츠’라는 이유로 외면돼왔고 글러브 등의 장비나 시설도 열악하다. 야구를 처음 접해본 친구들은 야구공을 어떻게 던지고 잡는지, 규칙은 무엇인지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그렇다고 하루 이틀에 몸이 움직이겠는가. “대홍단에서 감자 던진 실력 좀 보여줘!” 하루아침에 늘지 않는 실력에 힘들어 할 때면 이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털어버리곤 했다.
챌린저스를 이끌며 가장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여명학교와 가까운 서울 시내에서 정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야구장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설립 후 4년 동안 서울 중계동, 남양주시 등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다가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들의 배려로 지난 5월 드디어 양천구 안양천 야구장에 둥지를 틀게 됐다.
세계를 무대로 펼치는 아름다운 도전
안정적인 환경으로 선수들의 기량도 눈에 띄게 늘어가던 중 또 하나의 복병을 만났다. 코로나19로 인해 야구 활동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훈련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일이 잦아지고 자금적인 어려움도 뒤따랐다. 신청하는 지원사업마다 야구라는 이유로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고 임원들의 의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탈북민, 한국인, 재일교포로 구성된 이사회는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확인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는 세계 최초의 탈북민 야구단을 통해 한반도에 ‘통일야구’ 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나!
지난 6월 25일 진행된 NKP타이거즈야구단과 연예인 야구단 ‘야신야덕’의 친선경기
챌린저스는 지난 4년 동안 다양한 행사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주었다. 2019년 프로야구 게임의 시구·시타에 탈북민 선수가 도전했고, 크리스마스에 탈북민 대안학교에 물품을 후원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사)새한반도야구회 내에 사회인으로 구성된 또 하나의 탈북민 야구팀 ‘NKP타이거즈’ 가 결성됐다. NKP타이거즈는 매 주말마다 경기를 하며 자그마한 통일을 만들고 있다.
이제 우리의 눈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향해 있다. 단기적인 목표는 내년 6월 재미대한체육회가 주최하는 뉴욕체전에 참여해 탈북민 야구단을 알리는 것이다. 더 멀게는 선수들이 함께 땀 흘리며 어울리는 감동적인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언젠가 북한에서 야구공을 다함께 쫓는 그날까지 우리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김 성 일
(사)새한반도야구회 이사,
민주평통 광명시협의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