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42022.12.

깨끗한 모래와 바위들이 조화를 이룬 조개골해변

우리고장 평화통일 기행

“사람들의 섬, 그 섬에 가고 싶다”

강화도·볼음도·교동도 평화의 섬 기행


이른 아침, 강화도 서남쪽 작은 항구 선수선착장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청명했다. 강화도에서 출발해 바다 너머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섬 중 땅과 바다로 연결된 두 개의 섬, 볼음도와 교동도까지 총 세 개의 섬 여행을 위해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하루에 세 번 출발하는 볼음도로 가는 첫 배를 기다리며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을 떠올렸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란 구절을 써 내려가면서 작가가 상상했던 섬은 400여 년 전 이순신 장군이 바라봤던 남해의 이름 없는 섬, 사람들이 살지 않는 쓸쓸한 빈 섬이었을 것이다. 오늘 방문지는 그 옛날의 버려진 섬이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품고 있는 섬, 볼음도와 교동도다.

드디어 우리를 태울 쾌속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승선을 기다리고 있었고 선적을 위한 자동차 역시 길게 늘어서 있었다. 따뜻한 가을 햇살과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그림처럼 지나가는 섬의 풍광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사실 수도권과 인접한 서해에도 남해만큼이나 섬이 많다. 인천의 강화·옹진군에 자리 잡은 섬의 총 개수는 무려 168개로 사람이 사는 유인도만 40여 개나 된다. 이 중 강화도는 대한민국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인천에서 가장 먼 섬은 백령도로 약 200km 떨어져 있어 배로 꼬박 4시간이나 걸린다.

인천의 섬은 예로부터 갯벌이 많고 수심이 완만해 수많은 고깃배가 몰려들던 황금어장이었다. 연평도의 조기 파시(波市, 어시장), 백령도의 전복, 덕적도의 민어, 강화도의 새우젓 등 인천의 섬들은 수많은 고깃배와 바닷사람들로 북적였고 섬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의 일터이자 삶터, 그리고 할아버지에서 손자로 대를 이어가는 고향이었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국가 위기 때마다 피란처를 제공한 강화도부터 천연기념물 점박이물범의 최대 서식지이자 멸종위기종인 노랑부리백로와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백령도까지, 인천의 섬은 한반도의 역사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미래가치를 함께 지닌 귀중한 자산이다.

무엇보다도 인천 섬들의 큰 특징은 바다 위에 북방한계선(NLL)이 그어진 남북접경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말도 등 서해 5도와 강화도, 교동도 등의 섬들은 황해도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북한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 등을 통해 남북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고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으나 이어진 연평도 포격, 천안함 사건 등은 섬사람들의 아픔이자 비극으로 자리 잡았다.
볼음도의 명물 고향 잃은 은행나무와 평화정원
한 시간여를 달려 볼음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강화군 서도면에 위치한 볼음도는 동쪽으로 서검도·미법도·석모도, 서쪽으로 말도·우도, 남쪽으로 아차도·주문도, 북쪽으로 북한 연백군과 인접해 있다. 볼음도라는 이름은 조선 인조 때 명나라로 가던 임경업 장군이 풍랑을 만나 체류하던 중에 본 보름달의 발음을 따서 붙여졌다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특이한 섬 이름이 정겹게 느껴진다.

과거 볼음도 주변은 조기·민어·꽃게·새우잡이가 활발했지만 6·25 전쟁 이후 민간인출입통제선과 어로저지선이 그어지고 바닷길이 막히면서 점차 쇠퇴했다. 현재 대다수의 주민들은 주로 벼농사를 지으면서 갯벌에서 건간망조업과 맨손어업을 한다.

약 800년 이상의 수령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304호 볼음도 은행나무
ⓒ강화군

볼음도 은행나무 옆에 조성된 평화공원의 모습


작은 접안시설이 전부인 선착장에 내려 천연기념물 저어새를 비롯한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섬 북쪽 저수지로 향했다. 길 양쪽으로 넓은 농경지와 코스모스 핀 들판이 펼쳐졌다. 저수지 서쪽 끝자락의 은행나무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 존재감과 위용이 압도적이었다. 천연기념물 제304호이자 오랫동안 볼음도를 지켜온 800살 묵은 할아버지 나무의 고향은 황해남도 연안군 호남리다. 함께 있던 부부나무 중 수나무가 고려 중엽 북한지역에 난 큰 홍수에 떠내려와 볼음도에 심어졌다고 한다. 북한에 남아있는 짝과의 이별을 안타깝게 여긴 양쪽 주민들이 서로 연락해 음력 정월 그믐에 맞춰 각각 제를 지내왔는데 남북이 분단된 이후 중단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생이별의 아픔을 지닌 채 타향에서 살아온 은행나무와 이를 위로하기 위해 마음을 모았던 사람들의 사연은 현재 상황과 다르지 않아 더욱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러한 뜻을 이어받아 2021년 11월 인천시와 강화군, 인천도시공사(iH)와 (사)평화의숲이 섬 주민들과 뜻을 모아 이 은행나무 주변에 첫 번째 평화정원을 만들었다. 평화정원은 인천의 섬이 가진 고유한 생태문화와 역사자원을 활용해 남북 간 화해와 상생, 평화와 공존을 염원하는 프로젝트다. 평화정원 1호는 특별히 볼음도 서도면에 자생하는 야생화 위주로 조성됐다. 작고 소박한 정원과 오래된 은행나무, 배경을 이루는 저수지와 바다, 들판의 꽃이 어우러져 볼음도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의미 있는 협력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정원과 이어진 나지막한 등산로를 따라 인근 동산위 전망대로 향했다. 볼음도 북쪽 끝에서 북한의 황해도 연안군까지는 5.5㎞에 불과해 전망대에서 육안으로도 북한 땅이 바로 보인다. 육지라면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북한 땅과 평화롭고 조용한 바다를 감상하다 보면 어디선가 나타난 해안 경비정의 모습에 남북이 가깝고도 먼 사이임을 실감하게 된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볼음도 서쪽의 영뜰해변과 조개골해변으로 향했다. 깨끗한 모래와 그림처럼 흩어진 바위들, 가을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과 바다는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해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숨겨진 보석 같았다.

북한 황해도 연안군이 마주보이는 볼음도 전망대
인천난정평화교육원과 평화정원 2호
두 번째 여행지로 이동하기 위해 부랴부랴 강화도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선수선착장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여를 달려 강화도 서쪽에 자리한 교동도로 향한다. 한강 하구 중립구역, 임진강과 예성강이 바다와 만나는 합류점에 위치한 교동도는 황해도 연안군과 직선거리로 불과 3.5㎞ 떨어져 있는 남북 최접경지역이기에 출입증이 있어야 입도할 수 있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과거에는 배를 타야만 섬 출입이 가능했으나 2014년 7월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주말이면 최대 1만 명이 찾아오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됐다.

교동대교 입구의 검문소를 지나 교동도로 들어서자 보기만 해도 시원한 드넓은 농경지와 1960~70년대로 돌아간 듯한 정겨운 마을 풍경이 펼쳐졌다. 고려시대 벽란도로 가는 중국 사신들이 머물던 국제교역의 중간 기착지였던 이 섬은 6·25 전쟁 이후 북한의 가족과 생이별한 채 살아가는 실향민들의 섬이 됐다. 1·4 후퇴 때 육로가 막혀 잠시 머물기 위해 고향과 가장 가까운 교동도로 피난을 왔던 황해도 연백군 등의 주민들은 교동도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아픈 섬의 역사를 기억하며 2022년 8월 개원한 인천난정평화교육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인천 교육청에서 2019년 폐교된 난정초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이 평화교육원은 최초의 체험형 평화교육 전문기관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장학사의 안내를 받아 시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전시관과 북카페, 교육실 등 내외부 공간을 둘러봤다.

인천난정평화교육원 전경 ⓒ인천광역시교육청

인천난정평화교육원 뒤뜰에 조성된 평화정원 2호 ⓒ인천광역시교육청


이곳에서는 인천의 미래세대,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평화통일은 물론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4가지 맞춤형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남북교류의 거점인 인천만의 특색을 살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눈으로, 귀로, 손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미디어아트를 접목한 평화예술 전시, 옛 난정초등학교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을 모은 아카이브 등은 어린이와 청소년, 어른들까지 포용하는 평화통일교육의 모델이 될 거란 기대를 가지게 한다.

2022년 10월 인천시와 교육청, 인천도시공사(iH)와 (사)평화의숲은 볼음도에 이어 교육원 뒤뜰에 두 번째 평화정원을 조성했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만든 평화정원 2호는 바람개비 모양을 형상화했는데, 평화를 바라는 모두의 마음이 바람개비를 타고 널리 퍼져나가기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계단식 정원을 둘러보니 이곳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창 너머 계절마다 달라지는 정원 풍경을 바라보며 평화통일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어느덧 해가 지고 섬에도 어둠이 드리워졌다. 강화도에서 시작해 볼음도, 교동도를 잇는 알찬 당일치기 여행이 끝났다. 교동대교를 넘어 다시 강화로, 강화대교를 건너 다시 육지로 향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승 시인의 ‘섬’이라는 시의 유명한 문장이다. 인천의 섬 사이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섬과 섬 사이를 이어온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분단의 과거를 넘어 평화와 통일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인천의 섬, 그 섬에 가고 싶다.
윤 세 형 인천도시공사(iH) 미래도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