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52022.03.

특집

불확실성 커진 한반도

더욱 절실해진
평화적 상황관리 노력

2022년 상반기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평화관리 방안을 제언한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한반도 대전환’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 당사국들인 미국과 북한을 성공적으로 설득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이끌어 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아쉬운 점과 부족한 점도 있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대미 의존 탈피 요구, 제8차 당대회 이후 조건부 관계개선 원칙 제시, 그리고 지금의 이중기준 철회와 적대시정책 철회 공세 앞에서 적절한 돌파구와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2020년 6월 어렵사리 설치한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처참한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으로 국면 전환을 기대했으나 북한은 선결조건을 내세운 채 아직 호응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 북한의 모라토리엄 파기 여부
북한은 올해 들어 강경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월 말 현재 8번의 단·중거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그리고 김정은 총비서는 1월 19일 개최한 제8기 제6차 정치국회의와 2018년 4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공언한 모라토리엄(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유예) 파기 가능성을 직접 시사했다. 북한의 모라토리엄 파기 여부는 향후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자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파기할 수 있는 조건과 요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관심의 초점은 북한이 적대시정책으로 규정한 조치들에 모아진다.

첫째,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 여부이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모라토리엄과 대쌍관계를 지닌다. 이른바 ‘쌍중단’이 그것이다.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면 ‘쌍중단’ 프레임에 기초하여 모라토리엄 파기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베이징 동계패럴림픽이 3월 폐막함에 따라 중국발 억제요인이 해소되고, 4월 중순 김일성 출생 110주년(4월 15일)과 김정은 정권 공식 출범 10주년(4월 11일)을 계기로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삼아 ICBM 시험발사를 단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미군 첨단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확장 억지력 제공 차원에서 필요시 B-52와 B1-B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해 왔다. 북한은 이에 맞서 ‘북한식 반접근지역거부(A2AD)’로 대응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북한은 각기 다른 거리에 위치한 지상, 해상, 공중 목표물들을 정밀 타격하고, 상대방의 타격을 회피할 수 있는 무기체계들을 개발·시험하고 실전 배치했다. 더 나아가 북한은 미군 전략자산의 거점인 태평양상 미군기지에 대한 타격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중거리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추가 시험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미완의 선언’이라는 의심을 샀던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 선언 당시보다 더 보강된 능력을 과시해야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를 명분으로 다양한 군사기술적 수요를 충족하고자 할 것이다.

셋째, 미국과 유엔의 추가적인 대북제재 조치이다. 북한은 2019년 스톡홀름 북미실무회담 시 추가 제재가 적대시정책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과거에 북한은 유엔 안보리 제재에 맞서 핵실험이나 ICBM 실험으로 대응한 전례들이 있다. 미국은 최근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따른 인적 제재를 취한 데 이어 추가 제재조치 의사를 밝혔다. 만일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할 경우 독자적인 제재조치를 강구할 수도 있다. 따라서 미국과 유엔 안보리가 추가 제재조치를 단행할 경우 북한은 과거의 전례를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크지만 차기 정부는 새로운 남북관계의 장을 열어야 한다. 사진은 지난 1월 5일 강원도 고성군 제진역 ⓒ연합
한반도에 산재한 불확실성,
평화적 상황관리 주력해야
금년 상반기는 이러한 위기촉발 요인들이 상존하는 가운데 한국 대선과 신정부 출범, 미중 전략경쟁 본격화, 김일성 출생 110주년과 같은 북한의 주요 정치 일정 등과 변수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올해 상반기는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에 평화적인 상황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상반기 한반도 정세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초기 외교안보 조건을 규정하고, 그 조건은 향후 경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와 신정부는 한반도 정세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올해 상반기 정세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몇가지 제언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대남전략을 냉엄한 현실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자력갱생에 기초한 내적 역량(주체역량) 강화 노선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삼중고(코로나19, 대북제재, 수해)를 견뎌냈다는 자신감에 기초한 노선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국가제일주의’는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둔 정치담론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은 대남·대외정책 수립 및 추진 시 외부환경을 고려하기보다는 짜여진 계획(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과 국방발전 5개년계획)과 일정에 집중하면서 상대방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고립주의적 장기전을 전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군사기술적 수요 충족과 강력한 국방력에 기초한 유인(誘引)외교 차원에서 모라토리엄 파기도 불사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체제 내구력 소진과 항복을 기다리는 전략은 비현실적이므로 북한과의 외교(대화)뿐만 아니라 경제적 관여(경제협력과 지원)를 조속히 실행할 필요가 있다. 평화적 상황관리를 위한 외교적 관여 차원에서는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북한 대표단을 초청하거나, 취임 직후 남북합의 이행방안 논의를 위해 대북 특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한에 대한 전제조건 없는 대화 원칙을 고수하고,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어떠한 행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해야 한다.

셋째, 북한과의 경제적 관여는 유엔 안보리의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제재 조치와 미국의 독자 제재 조치에 막혀 실행하기 어렵다. 필요한 경제협력 및 지원사업에 대해 유엔 안보리의 면제 조치를 받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제재 구속력이 미치지 않는 그레이 존(Grey Zone)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비제재 대상인 인도주의사업과 지식사업을 결합한 인도주의적 지식나눔프로젝트를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다른 사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북한의 수용 가능성이 높아 실행력과 지속력을 확보할 수 있다. 북한은 현재 제재 내구력 강화, 식량 증산, 자연재해 극복, 코로나19 방역 등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난제들은 김정은 총비서의 야심작인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 수행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 총비서는 선대와 달리 인민경제 활성화와 인민생활 향상을 핵심 비전으로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정치적 부담을 만들었다. 북한은 물리적 통제와 자원 및 노력 총동원과 같은 재래식 방법으로 난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해 왔으나 주민들의 시장활동 위축, 국경봉쇄로 인한 대외무역 대폭 감소, 주민들의 동원 피로도 증가는 경제건설에 역효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최근 개최한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제재 장기화를 일상으로 규정하는 가운데 식량증산을 위한 농촌구조 개혁, 이상기후 현상 예보체계의 과학기술적 방법론 제고, 선진적이고 인민적인 방역대책으로의 이행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대통령 취임사 등 특별한 모멘텀을 활용해 식량, 방역,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분야에서의 지식나눔프로젝트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작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관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북한 모라토리엄 파기와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는 대쌍관계이다. 경색된 한반도 정세를 타개할 돌파구 마련이 조속히 요구된다.
사진은 2020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이동하는 헬기 ⓒ연합

넷째,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정책 철회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선결조건이 아니라 평화정착 과정에서의 해결과제라는 점을 북한이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남북한은 이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2018.9.)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 문제와 군비 증강 문제를 남북한 군사공동위원회를 개최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북한도 이 문제들을 선결조건이 아니라 해결과제로 인정하고 동의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북한이 종전선언을 시기상조론으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다. 선결조건 해결이 없는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면 선결조건 해결을 위해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순리이다. 북한이 이중기준 철회 공세를 통해 우리 행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듯이 북한 주장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북한은 논리적 모순에 누구보다 민감한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미중, 미러갈등 심화 추세 속에서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지속될 경우 남북관계가 강대국 갈등구조에 빨려 들어갈 위험성이 증대하고, 이는 남북한 모두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특히, 북한의 모라토리엄 철회는 한·미·일 대 북·중·러 간 대결을 격화시켜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와 한국의 군비증강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희망과 상반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자가당착 또는 부메랑이 될 것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차기 정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허무한 노력만큼 가혹한 형벌이 없다는 ‘시시포스(Sisyphus) 신화’에서 벗어나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 시시포스 신화를 반면교사로 삼아 희망이 보이고 알찬 노력만큼 보람 있는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남북관계의 장을 열어야 한다.

이 기 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