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52022.03.

서울역에서 평화 퍼포먼스를 하는 레츠피스

평화사랑채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프로젝트> 진행기

레츠피스ㅣ‘공공(公共)하는 청년’ 소속의 평화 퍼포먼스팀. 청년과 청소년이 모여 퍼커션(타악기)을 치며 브라질 바투카다를 연주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지구생명과의 상생을 꿈꾸는 단체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누구나, 레츠피스
2017년 가을,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교사와 로드스꼴라를 수료한 열 명의 청년들은 통일부에서 주최하는 <통일창업 아이디어 공모전>에 <남·북한 교사를 위한 수학여행 로드맵>을 제안했고, 통일부장관상을 받았다. 우리는 브라질 바투카다를 연주하며 자축하기로 했다. ‘바투카다’는 다양한 브라질의 타악기로, 남미 리듬을 함께 연주하는 장르이다. 쉽게 말해 브라질의 사물놀이 같은 거다. 우리 모두 학창 시절 함께 바투카다를 익혔었다. 당시 언론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오르내리고 있을 때, 우리는 평화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청년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지금 여기에서 평화를 하자’는 뜻을 담아 한반도의 평화, 지구 생명과의 상생을 실천하는 청(소)년 평화 퍼포먼스 그룹 ‘레츠피스’를 결성했다.

그해 가을과 겨울, 레츠피스는 ‘광장의 아이돌’이 됐다. 집회에서 흔히 보기 힘든 무리의 등장이었다. 어느 대학에도 속하지 않은 자발적으로 조직된 청년 그룹이었으며, 그중 몇 명은 보라색, 분홍색, 파란색, 무지개색 머리칼을 휘날렸다. 드럼통처럼 커다란 북을 허리에 매고 두두두둥둥 세상이 뒤집어져라 한바탕 퍼커션을 치고, 삐이익 호루라기를 불며, 종로통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시민들과 행진을 했다.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재밌게 놀 수 있다니. 다음 날이 되면 우리는 다시 직장인과 아르바이트생의 자리로 돌아갔다. 2018년에는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해 진행했다. 로드스꼴라 그리고 주말로드스꼴라 학생들과 함께 1년 동안 호남선이 시작되는 목포역에서부터 서울역을 지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여 베를린 장벽까지 향하는 여정이었다.

‘서울역을 국제역으로’라는 슬로건으로 평화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레츠피스 멤버인 고수경, 김지아, 김지현 학생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와 안무를 창작했다.

베를린 장벽 앞에서 평화 퍼포먼스를 하는 주말로드스꼴라 떠별들

기차 타고 떠나요 나와 함께 서울역에서 경의선 타고/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해가 지는 곳까지 너와 함께 갈 거야/ 창밖에 보이는 지평선 바라보며 상상이 닿지 않는 곳으로/ 끝없이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며 말이 닿을 수 없는 곳/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어/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아주 멀리까지 달려보자

서울역이 국제역이 될 때까지
목포역에서, 천안아산역에서, 밀양역에서, 광주역에서, 서울역에서, 광화문광장에서 평화 퍼포먼스를 하며 외쳤다. “우리가 만듭니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함께해요!” 둥그렇게 둘러앉아 지금까지 발표된 남북의 공동 선언문을 함께 읽었다. 그리고 떠났다.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베를린까지 유라시아횡단열차를 타고 1만 4천 4백 킬로미터, 지구 둘레의 사분의 일을 여행했다. 러시아의 여러 기차역 광장에서, 베를린 장벽 앞에서 레츠피스 멤버들은 유쾌하게 노래하고 춤을 췄다. 시베리아의 찬란한 여름을 마주했다. 붉은 보름달을 보았다. 영험한 바이칼 호수에서 세계의 평화를 기도했다. 와이파이도 전화도 터지지 않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실컷 낮잠을 잤다. 노래를 만들었다. 시와 소설을 썼다. 보드게임을 했다. 토론을 했다. 멍을 때렸다. 행복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모스크바, 옴스크, 벨라루스, 바르샤바, 베를린……. 시베리아의 밤, 덜컹이는 기차 안, 주황빛 조명을 켜고 유라시아 지도를 펼쳐 기차역 이름을 짚었다. 조선 말, 사는 게 어려워 가족을 이끌고 짐을 이고 지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대륙으로 나갔던 이들을 떠올렸다. 나라를 빼앗기고 광복과 독립을 이뤄내기 위해 기차를 타고 대륙으로 향했던 이들도 생각났다.

서울역에서 평화 퍼포먼스 후
환하게 인사하는 레츠피스

러시아 하바롭스크역에서 평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레츠피스와 주말로드스꼴라 떠별들


11월, 레츠피스는 강원도 철원에서 평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월정리역 철길에 섰다.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대북 방송이 멈춘 상황이라 사방이 고요했다. 기차놀이를 하며 신나게 바투카다를 연주하고 춤을 췄다. 우리가 내는 모든 평화의 소리들이 훌쩍 경계를 넘어갔다. 해질녘에는 철원 노동당사로 향했다. 악기를 들고 포탄과 총알 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계단을 올라갔다. 발밑이 아슬아슬하고, 칼바람이 불었다. 하늘로 팔을 쭉쭉 뻗으며 언제나처럼 리듬을 탔다. 보는 사람도, 악기를 연주하는 우리도 활짝 웃고 말았다. 그곳에서 레츠피스의 2018년 마지막 편지를 읽었다.

“서울역이 국제역이 되고, 한반도에 종전이 선언되고, 동북아철도공동체의 구상이 현실이 되는 날까지, 우리는 모든 역사적인 나날을 지켜볼 것입니다. 바람 앞의 등불을 지키는 마음으로 끝까지, 흔들림 없이, 담대하게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황 지 은 레츠피스 운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