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중국과 러시아 향해 문 여는 북한,
경제제재 틈새 화물열차 운행 재개되나
최근 1년 반 만에 북중 화물열차가 시범적으로 운행됐다. 이에 북중 화물열차 운행이 가지는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고, 향후 북중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전망해 본다.
2022년 1월 16일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조중우의교(압록강철교)에 신의주에서 출발한 화물열차가 도착했다. 북한은 2020년 1월 31일부터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중국과의 비행기 및 열차 운행을 중단하면서 인적 교류를 중단했고, 2020년 8월 화물열차의 운행도 중단했다. 이에 따라 북중 교역이 완전히 중단된 이후 약 1년 5개월 만에 열차 운행이 재개됐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 화물열차 운행은 운행 재개가 아니라, 운영 재개를 위한 시범 운행에 해당한다.
북한 방역정책 변화에 따른 북중 열차 시범운행
주지하다시피 북한의 국경 폐쇄는 국경을 통한 코로나19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중 양국은 이미 2021년 4월경 국경을 열고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하려 했으나 북한의 방역 준비 미흡으로 육로 개방이 실행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단둥의 대북 무역상들로부터 육로 개방 움직임이 포착되어 교역 재개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국 내 코로나19 상황의 악화로 교역 재개가 연기됐다.
이번 북중 국경의 열차 운행은 북한이 교역 재개를 위해 방역 체계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북한의 물품 유입에 대한 방역 체계 미비로 인해 세계보건기구 (WHO)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 바 있다. WHO는 지난 2021년 12월 22일까지 성인과 아동의 인공호흡기, 산소 호스, 코로나19 진단키트 등을 북한에 지원하려 했으나 북한 반입이 지연되면서 관련 지원사업을 2023년 7월까지 연장했다.
최근 코로나19의 변이 여파로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 북중 화물열차 운행의 배경은 북한의 코로나19 방역 체계 준비에 따른 방역정책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백신 보급으로 세계 각국이 봉쇄를 완화하고 있는 것처럼, 북한도 봉쇄 위주의 방역정책에서 일부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21년 말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선진적이며 인민적인 방역에로 이행”을 지시하며 봉쇄 위주의 방역을 일부 완화시키려는 변화 의지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북한의 방역장 준비와 방역 완화 정책에 따라 북중 열차 운행이 재개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이번 화물열차의 운행으로 육로 교역 재개가 주목을 받고 있으나, 북중 양국 간 교역 자체가 완전히 단절됐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육로 수송은 단절됐으나 해상 수송은 간헐적으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통상 교역의 재개가 아니라, 북중 양국의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해상을 통해 물품을 이동시킨 것이었다.
지난 1월 11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바라본 중조우의교와 압록강단교 ⓒ연합
미중 경쟁 심화와 중러 협력 강화 속 북한의 기회
이번 열차 운행으로 북중 육로 교역 재개는 단기간 내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그 시기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가 될 것이다. 북중 교역 재개의 의미를 검토하기 위해서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두 개의 장면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첫 장면은 2022년 2월 4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외교적 보이콧(boycott)을 선언한 장면이다. 미국 및 EU 국가들은 중국의 인권 상황과 코로나19 재확산 등을 거론하면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에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는 러시아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20여 개 국가의 정상만 참석했다. 이러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은 미중 경쟁 시대의 국제관계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다음 장면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맞이하여 개최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중러정상회담 장면이다. 지난 2월 5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러정상회에서 양국은 중러관계의 밀착을 과시했다. 양국 정상은 ‘신시대 국제관계와 지속가능한 글로벌 발전에 관한 중국과 러시아 공동성명’을 통해 외부 세력이 양국 공동의 주변 지역 안보와 안정을 해치는 것을 반대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와 미국의 아태지역 및 EU 역내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를 반대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베이징 도착 하루 전인 3일 중국 신화통신에 ‘러시아와 중국: 미래를 지향하는 전략적 동반자’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중러 협력을 강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과 NATO 재편 등이 맞물려서 중국과 러시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에 대항하는 최고의 파트너십을 보여주었다.
지난 2월 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러정상회담을 가졌다. ⓒ연합
두 장면은 모두 미중 경쟁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는 미국이 동맹 및 우방국들과 함께 중국을 압박하는 장면이고, 후자는 이에 대항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 강화 장면이다. 이러한 미중 경쟁의 심화와 중러 협력의 강화는 주요 글로벌 이슈에 대해 협력이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미국이 독자적으로 글로벌 이슈를 주도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암시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대내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회복에 집중이 필요하며, 대외적으로는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과 NATO를 둘러싼 미러 갈등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탈냉전 이후 미국이 전 세계 경영을 위하여 주력한 이슈 중 하나가 핵 비확산 레짐(regime) 구축이었다. 그러나 이란 핵 문제 재협상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핵 비확산 레짐은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있다. 미중 경쟁 시기에도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로 핵 비확산 레짐이 거론됐으나 그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특히 북한 비핵화 이슈에서도 미중 협력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불협화음을 보여주었다. 2022년 1월 30일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비공개회의를 열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으로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강화 노력이 무력화된 것이다.
지난 2월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미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
재개 가능성 커진 북중·북러협력
이러한 국제 정세는 북한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은 가장 강력한 유엔 대북제재를 장기 지속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제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피제재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제3국가들이 제재에 협력한다면 제재의 효과가 커지게 된다. 북한과 경제적 관계가 밀접한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경제제재에 동참하면 제재의 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2017년부터 대북 경제제재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발휘된 것은 중국의 적극적인 참여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반면 피제재국에 대한 흑기사(black knight)가 피제재국을 지원한다면 제재의 효과는 감소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에 협력하지 않고 흑기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러 양국은 미국과 갈등하는 상황에서 자국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대북 경제제재에 적극 동참할 유인을 찾기 어렵다. 중러 양국이 북한과 교역을 시작한다면 경제제재 효과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미중 경쟁 시기 핵 비확산 레짐이 도전받는 상황을 활용하여 북한은 자국의 국방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2022년에 들어서 북한은 자국 국방력 강화를 위해 1월 27일 지대지 전술유도탄 발사와 1월 30일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의 무력 도발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전략을 뒷받침해 줄 카드가 바로 북중 교역의 재개인 것이다.
여기에 북한과 러시아의 교역도 단계적으로 재개 될 전망이기 때문에 북러 협력도 이러한 전략을 강화 할 것이다. 최근 신홍철 러시아 주재 북한 대사와 알렉세이 체쿤코프 러시아 극동북극개발부 장관이 북러 간 교역과 관련된 실무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 교역과 북러 교역 재개는 경제제재 효과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북중 교역의 재개는 북한 비핵화 협상 교착의 장기화를 의미한다고 분석된다.
북한은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코로나19를 이유로 불참했으나, 지난 2월 4일 올림픽 개막을 맞이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축전을 보내면서 북중 협력을 지속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 위원장은 북중관계를 ‘불패의 전략적 관계’로 표현하고, ‘새로운 높은 단계’의 양국 협력을 기원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 북중 교역이 재개된다면 북한 비핵화를 위한 보다 대담한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북한과 중국 간 최대 교역 거점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 세관에서 양국 관계자들이 통관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해 6월 9일 북중 접경 랴오닝성 단둥의 기차역에 ‘서포’라고 북한 지명이 적힌 빈 화물열차가 서 있는 모습 ⓒ연합
이 상 숙
국립외교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