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칼럼
21세기 강대국 정치의 귀환
지구촌은 지금 ‘세력권’ 확보와 관련한 지정학적 국가 이익이 지배하는 강대국 정치의 복원을 목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미국·나토 대 러시아 사이의 대립, 대만과 관련한 미국·일본 대 중국 사이의 대립은 모두 세력권 구상의 핵심인 ‘전략 종심’ 확보를 목표로 하는 전통적 의미의 지정학적 대립의 성격을 띤다. 탈냉전 이후 자유주의 패권국 미국이 추진했던 동유럽 ‘확장’ 정책 및 중국 ‘통합’ 정책 실패의 귀결이다. 카불 함락에도 불구하고 중동 전장에 투사했던 국력을 중국 견제 및 봉쇄를 위해 동아시아 전장으로 회전시킨다는 미국의 ‘탈탈냉전’ 대전략이 큰 차질을 빚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이제 유럽과 동아시아 두 개의 전장에 국력을 배분해 지역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과 마주해야 한다.
영토 주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제로섬 게임’의 속성을 갖기 때문에 갈등 해결 과정이 손익 계산에 기초한 ‘타협’보다는 전부 혹은 전무의 ‘대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게 대만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양보 불가한 ‘주권 정체성’ 쟁점이 덧붙여져 일단 발화할 경우 통제 불가한 확전으로 이어지는 ‘인화점’에 해당한다. 두 개의 전장을 관리해야 하는 미국의 취약성을 보고 중국이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이른바 ‘정점 국력 함정’에 빠져 대만과의 통일 시도를 무리하게 추진할 위험이 있다. 위험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다가 실제로 위험이 현실화되는 ‘회색 코뿔소’ 현상 혹은 ‘기지의 불확실성’이 동아시아 지역을 지배하는 연유이다.
‘레드 라인’을 넘어설 수 있다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강대국 정치의 논리에 맞추어 미국과 충돌할 수 있는 경로에 들어선 중국의 입장에서 전략적 가치를 매우 높일 수 있는 선택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군사적 차원에서 대만을 둘러싼 충돌과 관련하여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결박하는 효과와 주일미군의 대중국 전개를 제약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것은 또한 정치적 차원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위협에 매몰시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 및 봉쇄 정책과 관련한 협력을 약화시키는 효용을 갖는다.
‘탈탈냉전기’ 미국은 지구적 차원에서 러시아에 대항하는 동유럽 전장 및 중국에 대항하는 동아시아 전장으로 국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당면해 있고, 지역적 차원에서 대만 및 한반도로 동맹 자산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해 있는 셈이다. 지구 및 지역 차원의 ‘이중 국력 분산 위험’에 직면한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한미동맹에 대한 군사적 및 정치적 ‘쐐기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갈등에 집중하는 만큼 대만 갈등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고, 대만 갈등에 집중하는 만큼 한반도 갈등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승자가 얼마나 21세기 강대국 정치의 논리를 숙지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유력한 후보 가운데 누구도 미국의 자유주의적 관여정책이 지속가능한지 묻지 않았고, 중국이 정점 국력 함정에 빠져 있는지 묻지 않았으며, 북한의 쐐기 전략이 유효한지 묻지 않는다. 한국의 미래를 마냥 밝게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 평화통일 칼럼은 「평화+통일」 기획편집위원들이 작성하고 있습니다.
김 정
북한대학원대학교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