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52022.03.

소이산 정상에서 바라본 철원 평야

접경지역 사람들

우리가 몰랐던 철원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르는 것들이 있다. 철원이 그랬다. 수많은 이야기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철원은 군사지역, 접경지역, 강원도의 산골짜기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있다. 폐허가 된 땅 위에 돋아난 새싹처럼, 철원은 과거의 모습 위에 생태와 평화, 공존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뚜루루- 뚜루루-. 해발 362m, 그리 높지 않은 소이산 정상에 오르면 여기저기서 뚜루루-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 아래 들판에서 두루미가 우는 소리다. 겨울철 인적이 드물고 먹을 것이 많은 철원평야는 두루미들이 머물기 좋은 환경이다. 아주 오랜 옛날 북한 오리산이 분출하며 흘러내려온 용암은 철원에 넓은 평야를 만들었다. 철원 하면 생각나는 오대쌀도 이처럼 넓은 평야와 청정한 환경이 만들어 준 자연의 선물이다.

소이산 정상에서는 가까이 노동당사와 경원선 철도가 연결되던 철원역, 멀리는 백마고지와 월정리역, 북쪽의 김일성고지와 평강고원 등이 한눈에 보인다. 그 사이 철원군을 길게 둘러싸고 지나가는 비무장지대(DMZ)가 있다.

백마고지전적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노동당사

전쟁이 바꾼 삶
철원은 한때 인구 6만 명이 넘는 큰 도시였다. 노동당사 주변으로 강원도청과 경찰서, 지방법원 등 주요 건물들이 즐비했고, 철원역에서는 금강산으로 가는 열차가 사람과 물자를 실어날랐다.

“옛날에는 여기가 중심지였어요. 철원역이 예전의 서울역만 했죠. 그때만 해도 철원이 상당히 발전된 도시라 자부심이 있었어요. 인천이나 대전, 광주 이런 곳보다 컸는데, 6·25가 터지면서 초토화가 된 거죠. 아주 생태계까지 소멸시키는 작전이었어요.”
- 이근회 철원미래전략기획위원장


장장 3년여에 걸쳐 벌어진 전쟁은 철원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철원평야로 진출하는 백마고지는 단 열흘만에도 주인이 수십 번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전쟁 전에는 38선 이북지역에 속했던 철원 주민들도 전쟁에 휩쓸리고 말았다. 전쟁이 멈춘 1953년 7월, 한반도처럼 절반으로 갈라진 고향에 돌아온 주민들은 분단선을 넘지 못하고 ‘수복지구’ 철원에 정착했다.

고향 철원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
왼쪽부터 김용빈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 사무국장,
홍광문 민주평통 철원군협의회장, 양계환 지질공원해설사,
변영수 민주평통 철원군협의회 간사

세계지질공원인 한탄강에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조성돼 있다.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인민군이 들어오면서 민간인 희생이 컸습니다. 그런 사실들이 하나도 안 밝혀졌었어요. 제가 약 20년간 지역 어르신들을 인터뷰하고 가슴 아픈 사연을 밝혀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여기는 전쟁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철원에 오는 분들과 함께 신탄리나 백마고지에 가면 북한쪽을 보면서 우는 분도 있어요. ‘조금만 더 가면 우리 고향인데’ 그러면서 떠날 줄을 모르세요. 그럴 때면 저도 가슴이 찡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죠.”
- 박정례 철원군농촌체험관광해설사
상처 입은 땅 위에 날아든 생명
전쟁은 멎었지만 전쟁의 그림자는 길었다. 군사훈련이 지속됐고, 대남방송과 포 훈련 소리에 동네가 들썩들썩할 때도 있었다. 수시로 비상이 걸려 삼엄한 나날도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삶은 이어졌고, 시간이 흐르며 과거의 기억 위에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해졌다.

“철원은 아름다움과 아픔이 공존하는 지역이에요. 요즘 철원은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어요. 한탄강 주변은 세계지질공원으로 선정돼 더 아름답게 조성됐어요.”
- 이지환 학생

“서울에서 2시간 밖에 안 걸리는데도 철원은 추운 곳, 먼 곳으로 생각하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아요. 접경지역이라 경제활동 등에 제약이 있긴 하지만, 철원은 잘 보존된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입니다.”
- 홍광문 민주평통 철원군협의회장


이제 철원은 접경지역, 군사지역이 아닌 생태와 평화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접경지역 시·군 중 가장 넓은 면적의 DMZ와 수십억 년 전 화산폭발로 조성된 한탄강 협곡 주변에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경관이 만들어졌고, 수많은 동식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가장 반가운 손님은 해마다 찾아오는 철새다. 천연 기념물인 두루미와 재두루미, 독수리 등 다양한 철새들은 겨울이면 DMZ를 넘어 이곳으로 온다. 인적이 드문 민간인통제구역 안쪽에서는 서넛, 많게는 군집을 이루고 있는 두루미떼를 만날 수 있다. 김용빈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전 세계에서 여러 종의 두루미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은 철원이 유일하다”라고 소개했다. 철원군 곳곳에는 두루미를 탐조할 수 있는 전망대와 센터가 만들어졌고, 주민들은 논 한가운데 물을 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 분단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마다 날아드는 두루미는 어느새 남북이 자유로이 왕래할 날을 고대하게 하는 평화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철원군농민회는 통일쌀 경작지를 만들고 남북이 함께 먹거리를 나누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전쟁의 기억과 평화의 씨앗을 품은 도시
철원군에는 여러 개의 ‘선’이 지나간다. 군사분계선(MDL)과 그 양 옆으로 그어진 남방·북방한계선,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는 민간인통제선, 한때는 수십번씩 남북을 오가던 기찻길과 도로도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상대를 경계하기 위해, 때로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선이 그어졌던 이곳에 남북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또 다른 선이 생겼다.

남방한계선과 MDL을 따라 조성된 DMZ 평화의 길은 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백마고지에서 시작된다. 백마고지전적비 뒤편에서 출발해 민간인통제구역을 걷는 이 길에서는 남북을 경유하며 흐르는 역곡천, 남북이 함께 유해를 발굴한 화살머리고지 등을 만날 수 있다. 때로는 도보로, 때로는 차량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사람들은 전쟁과 평화, 생태와 공존의 가치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전쟁의 기억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지만 평화의 씨앗을 품고 있기에, 철원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분단을 넘어 날아온 두루미 소리가 뚜루루- 들려온다.

철원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

금강산으로 가는 철도가 지나던 월정리역

백마고지전적비 뒤편으로 이어지는 DMZ 평화의 길 시작점





Mini Interview in 철원

참석 | 김영규(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거주 58년), 박정례(철원군농촌체험관광해설사, 거주 39년),
이근회(철원미래전략기획위원장, 거주 83년), 이지환(대학생, 거주 26년), 홍광문(민주평통 철원군협의회장, 거주 67년)
Q. 내 기억 속의 철원
이근회ㅣ저는 1939년 지금의 북한 철원에서 태어났습니다. 해방 전에 일본 국민학교를 다녔고, 해방 후에는 인민학교를 다녔어요. 과거 번성했던 철원의 모습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 말고는 없을 거예요.

박정례ㅣ제가 여기 처음 시집왔을 때 친구들이 거기서 어떻게 사니 그랬어요. 가족이랑 친척들은 다 울면서 돌아갔죠.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었니 그래요. 철원이 먼 곳인 줄 알았는데 가깝고 발전도 많이 돼서 이런 곳인 줄 몰랐다 그러죠.

김영규ㅣ예전에는 군인들이 상당히 거주하는 지역이라 민간인들이 살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죠. 전방 지역이기 때문에 가지 말아야 될 곳, 가면 위험한 곳도 워낙 많았고요.

이지환ㅣ어릴 때 아침에 알람 소리와 군 부대의 포 소리가 같이 들렸어요. 그때는 모든 지역이 다 그렇게 포 소리가 나는 줄 알았죠. 타지로 나와 보니 아니더라고요.

홍광문ㅣ과거에는 미군들이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사격하면 탄피가 떨어지는데 그걸 주우러 다니기도 했어요. 저는 전방지역이 아니라 그랬는지 무서운 기억보다는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놀러다녔던 기억이 나요.

Q. 평화가 온다면 철원은?
이근회ㅣ한국의 중심지, 미래 수도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금강산이나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경원선도 있고, 경기도 포천·연천과 힘을 합쳐서 한반도 평화통일 수도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하고 있어요.

박정례ㅣ평화가 온다면 한반도에는 굉장히 큰 변화가 올 것 같아요. 북한에 자원이 많다고 들었는데, 우리와 힘을 합친다면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영규ㅣ철원이 접경지역이다 보니 워낙 제약이 많아요. 다른 곳에 비하면 삶의 질이 절반도 안 되죠. 분단으로 인한 피해와 차별, 그리고 전쟁의 위협과 군사적 두려움에서 벗어나 전쟁 전에 번성했던 철원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홍광문ㅣ남북 교류협력의 중심지로서 통일시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의 고향인 함경북도 명천군 하우면을 찾아가 조상님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어요.

이지환ㅣ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전쟁 나면 서울보다 철원에 있는 우리가 먼저 죽을 거 같다. 그래서 평화는 무조건 필요하다.”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평화가 온다면 북한과도 가깝고 서울과도 가까우니까 철원이 교통의 요충지가 되어 경제와 생활이 더 발전할 거 같아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철원군협의회


철원군협의회의 대표적인 활동은 1997년부터 이어져 온 평화통일기원 DMZ 걷기대회다.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노동당사에서 출발해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인 백마고지까지 걷는 코스에서 참가자들은 분단의 아픔을 체험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이 외에도 철원군협의회는 평화통일 소원탑 설치, 예비사회인과 함께하는 통일이야기, 북철원 돕기 쌀 모금, 연탄나누기 등의 활동을 통해 철원에서부터 다시 시작될 평화의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