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22022.10.

윤석열 대통령이 8월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특집

‘담대한 구상’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한반도 문제 주도성 강화하며
세계적 시각에서 접근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경제적 혜택을 담은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담대한 구상’의 의미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담대한 구상’을 제의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대북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북한 내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대북 기술 지원 프로그램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 등이 포함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17일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남북한 관계에 있어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배제한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담대한 구상’과 맥락을 같이하는 대북정책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남북 간의평화로운 공존과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북한의 비핵화를 일관되고 끈기 있게 추진하며 북한이 변화 의지를 보일 때는 그 효과가 확실히 체감될 수 있는 대북지원을 제공하겠다는 메시지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적 비전과 방향 제시한 ‘담대한 구상’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성실히 비핵화를 이행한다는 행동을 보여주면 그에 상응해 북한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각종 남북협력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다. 북한의 비핵화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선결 요건이기는 하지만 ‘先 비핵화’만을 기계적으로 강조하기보다는 북한의 변화에 맞춘 탄력적 대응을 통해 북한의 수용 가능성을 높이려 한 것이다. 북한 핵 문제의 해결 이전에도 남북 간 인도적 사안에 대해서는 협력하겠다는 정부의 방침 역시 이러한 구상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5월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방역 지원 의사를 밝힌 것과 9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당국자 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핵 능력을 점점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북한은 2022년 8월 말까지 총 22차례의 미사일 및 방사포를 발사했고 7차 핵실험 징후를 계속 노출하는 등 핵무기 보유에 대해 여전히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4월 25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핵 선제공격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고 9월 8일에는 ‘핵무력정책’에 대한 법령 선포를 통해 공격적 핵교리를 채택할 뜻을 시사했다. 핵무기 개발에만 매달리는 북한의 계산법을 바꿀 새로운 국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담대한 구상’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중·러의 각축이 전개되는 가운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적 입지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미중 간 전략경쟁 확대와 심화 속에서 주변국들은 한반도 문제 해결보다는 자국 이익의 반영에 주력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면서 중국과 러시아 등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 대상이 아니라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로 활용할 위험성 역시 존재한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우리 자체의 비전과 정책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당사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 ‘담대한 구상’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부정적 반응과 국제사회의 낮은 이해 극복 필요
‘담대한 구상’은 국내외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극복해야 할 장애요인도 존재한다. 우선 ‘담대한 구상’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북한은 ‘담대한 구상’ 발표 나흘 뒤인 8월 19일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를 통해 “어느 누가 자기 운명을 강낭떡 따위와 바꾸자고 하겠는가”라고 반박했다. 북한이 전통적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례가 드물었다는 점과 부정적 반응이 오히려 관심의 표명일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핵 개발이 지속된다는 전반적 맥락에서 김여정 부부장 담화는 우리 구상에 대한 거부의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 시대의 북한이 경제적보상을 바탕으로 한 비핵화 가능성과 남북 경제협력의 효용을 낮게 평가해왔다는 점 역시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9월 8일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북한에 공식 제의했다.
사진은 2018년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마지막 날인 8월 26일 버스 창문 너머로 작별인사를 나누는 이산가족의 모습 ©연합

해외의 정책 서클 및 언론을 중심으로 ‘담대한 구상’에 대한 이해도가 여전히 낮은 편이라는 점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북한에 대화와 협력의 의지를 표명하는 원론적 입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각론의 모호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특히 ‘비핵화 초기’ 단계에서 대북제재를 조기 완화하려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즉 북한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오히려 대북 양보를 모색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음도 감안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워싱턴 및 국제사회에 대해 ‘담대한 구상’이 완고한 先 비핵화나 타협적인 先 보상이 아님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를 통해 일각에서 제기되는 우려와 오해를 해소해야 한다.
‘담대한 구상’ 실현을 위한 고려사항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담대한 구상’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첫째, 무엇을 ‘실질적 비핵화’로 볼 것인가의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이 ‘비핵화 초기단계’로 진입했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는 북한에 대해 구체적인 행동이 있을 때에만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 관련 정책 및 행태 변화를 촉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기존의 비핵화 관련 기준을 적용할 경우 초기 조치로는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와 신뢰할 만한 검증 그리고 핵 동결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이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대량 선제 사용을 골자로 하는 핵 독트린을 채택할 위험성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의 대폭 감축 혹은 제3국 이전 요구 역시 검토할 가치가 있다.

둘째, 북한이 비핵화 전제조건으로 이야기해온 ‘체제안전 보장’과 관련해서도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북한이 기존에 밝힌 체제안전 보장은 사실상 ▲수령독재체제의 안정적 유지 ▲남북한 관계에 있어 북한의 대남 우위 확보 ▲한미 동맹 등 한국의 주요 안보장치 해체 등으로 이는 우리의 정체성 측면에서 수용이 힘든 것들이다. 반면 정권·체제의 급속한 불안정 가능성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해소하는 일부조치들(남북한 간 상호 체제인정, 공존, ‘제2의 선의의 경쟁’ 등)은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실체적 핵 억제력 확보를 위한 우리의 강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비핵화 과정은 향후 남북 및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북한의 핵능력을 완전하게 해체하기 위해서는 비핵화 못지않게 북한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능력의 증강이 필요하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와 함께 한국의 대핵(對核) 능력(counter-nuclear force capability) 발전을 병행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넷째, 실제로 북한이 납득할 수 있는 경제협력 방안을 설계해야 한다. ‘자본의 한국, 노동력과 자원의 북한’의 등식은 다분히 우리 중심적 남북 경제협력의 사고라는 점을 깨닫고 북한과의 협의를 통해 조정될 수 있는 여지를 확대해야 한다. 북한이 현재 선호하는 경제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명심해야 할 것은 ‘글로벌 중추국가’의 맥락에서 ‘담대한 구상’이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동안 한반도 문제 해결과 관련해 자신의 관심사만을 강조했을 뿐 지역 및 세계적 시각에서 공감을 확대하는 데에는 미흡했다. 즉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북한을 다뤄나가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구현한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의 자체적 변화를 기다리고 이를 지원할 의사가 있지만 한국의 국격을 훼손하거나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 국제적 제도와 규범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담대한 구상’이 왜 국제사회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논리가 집중적으로 발전돼야 한다. 즉 북한의 핵 개발 문제가 결국은 한국에 대한 위협 이상으로 국제 비확산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임을 강조하고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가 잠재적 핵 개발 국가들에게 불러올 잘못된 교훈을 차단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인권 문제 해결 역시 ‘담대한 구상’의 일환으로 제기돼야 할 것이다. 세계의 시각에서 한반도 문제를 접근하고 한반도에 고착된 우리의 시선을 넓혀야 ‘담대한 구상’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지원을 확충할 수 있다.

‘담대한 구상’은 한반도에 고착된 시선을 넓혀 지역 및 세계적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1일 외교부와 코이카가 개최한 ‘제15회 서울 ODA 국제회의’ 모습 ⓒ외교부
차 두 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