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현장
남남·남북 갈등 예방을 위한 시민들의 선제행동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
남북관계가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격하게 출렁이고 있다. 교착상태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시민들의 마음도 복잡하다. 기대를 걸었던 만큼 실망도 크다. 이전 정부에서 추진해오던 정책을 폐기하고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적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방향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그 결과 국내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고 대외적으로는 우리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과 교섭력 약화가 초래되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이런 상황에서 이전 정권에서 시작돼 새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에 시작된 사회적 대화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이 대화는 이전 정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 이전부터 남북관계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성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독립적인 민간추진기구인 ‘평화·통일 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약칭 통일비전시민회의)는 통일부와 함께 올해 8월부터 9월에 걸쳐 7개 광역시도에서 연인원 800여 명의 평범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국민대화(이하 국민대화)를 진행했다. 10월, 11월 두 달간은 연인원 500명의 보수, 중도, 진보 단체 활동가들의 대화(이하 활동가 대화)를 7개 광역시도에서 추진할 예정이다. 청소년 500여 명이 참여하는 대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이들 프로그램의 정식명칭은 ‘2022 통일·대북정책분야 사회적대화 국민 플랫폼(이하 국민 플랫폼)’ 사업이다.
1) 통일비전시민회의는 보수·중도·진보 시민사회단체들과 7대 종교가 함께 구성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 민간추진기구다. 보수측에서는 범시민사회단체연합(전국 320여 개 회원단체)이, 진보측에서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전국 360여 개 회원단체)가, 중도측으로는 흥사단,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등 오랜 역사를 지닌 시민사회단체들과 대북인도적지원단체 등이, 종교를 대표해서는 7개 종단이 함께 구성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협의회)가 함께하고 있다.
국민참여 플랫폼과 전문가 플랫폼
통일비전시민회의는 통일연구원과 더불어 ‘2022 통일·대북정책분야 사회적대화 전문가 플랫폼(이하 전문가 플랫폼)’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를 기획·운영할 수 있는 지역사회 전문가 및 활동가 그룹을 형성하기 위한 기획이다. 7개 광역시도 각 10명씩으로 구성된 연구자, 활동가 그룹이 국민대화 의제 기획에 참여하고 대화 진행을 모니터하여 개선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시할 예정이다. 2022년 병행 추진되는 국민 플랫폼 사업과 전문가 플랫폼 사업을 바탕으로 2023년부터는 더 넓고 깊게 지역사회로 사회적 대화가 확산될 예정이다.
이와는 별도로 통일비전시민회의는 지난 9월 24일 경기도와 손잡고 경기북부도민 200여 명과 DMZ의 가치와 미래에 관해 숙의하는 ‘2022 Let’s DMZ 경기도민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경기도가 동참함으로써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 광역자치단체는 서울, 인천, 강원, 경기로 늘어났다. 접경지역 모든 광역자치단체가 사회적 대화 기획에 동참한 셈이다.
갈등을 넘어서는 경청의 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회적 대화’는 평화와 통일 문제에 관한 남남갈등을 극복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숙의 프로그램이다. 정치권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지속가능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기가 힘들기에 현재와 미래 한반도의 주인인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시민 주도의 합의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시민들이라고 정쟁에 휘말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도리어 시민사회 스스로 남남갈등과 정쟁의 일부가 돼왔다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접근법이나 원칙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정치권이든 시민이든 불신과 갈등의 늪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새로운 접근은 경청으로부터 시작한다. 사회적 대화에서는 논쟁을 피하지 않고 이견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다만 다양한 생각을 가진 모두에게 안전한 토론의 마당을 제공한 후에 대화에 참여한 각자 각자에게 어떤 이해와 변화가 일어나는지 함께 살피고 공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정쟁에 휘말리지 않는 안전한 대화공간
정권에 관계없이 이 프로그램이 지속되는 이유가 있다면 보수, 중도, 진보 시민사회단체와 7개 대표적인 종교가 함께 통일비전시민회의를 구성하고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는 민간이 독립적으로 주도하고 정부는 지원한다는 원칙 아래 운영되고 있다. 또한 정치적 입장 차이를 치우침 없이 반영하고 세대별, 연령별, 성별, 지역별 차이로 인해 불이익을 겪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왔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나 정부, 그리고 정세의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안전한 대화, 생산적인 숙의의 공간을 열어왔다는 평판을 받아왔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의 만족도도 높다. 내가 이해 받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다툼을 걱정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피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를 선호했는데 이 자리를 계기로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유연성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해서 통일을 위해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대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윗세대는 막혀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든지 유연하게 생각을 바꿀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대화는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지혜와 힘이 있다. 정치권도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시민의 대화를 보장하고 경청과 이해의 테이블에 함께 마주앉아야 한다.
이 태 호
평화·통일 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 공동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