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22022.10.

지난 9월 13일 백악관 앞 잔디밭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기념행사에 참석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

국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경제 안보

글로벌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춘
산업통상 정책 추진

최근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하면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경제 안보 측면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우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코로나19 이후 악화되는 인플레이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지만 자국 산업 보호 및 육성, 공급망 안전 등 경제 안보적 측면이 더 강조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기차 구매에 관한 보조금(세액공제) 지급 조항이다. 이 조항은 미국 전기차와 배터리 및 관련 산업의 육성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우리의 수출 및 생산에는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미국의 경제 안보라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우리의 경제 안보 차원에서는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어 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이 강조된 IRA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자동차 관련 사항은 크게 친환경 승용 신차(배터리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수소연료 전기차)에 대한 지원, 친환경 중고차에 대한 지원, 친환경 상용차에 대한 지원 등이 있다. 이 중 우리 자동차 및 관련 산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친환경 승용 신차에 대한 판매 보조금 지급(세액공제)이다. 최대 7,500달러를 지원하고, 지원 대상은 북미 지역에서 조립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가지고 있어 미국에서의 전기차 생산을유도하는 효과를 가진다. 더불어 내년부터는 배터리 광물 요구 수준을 충족시키는 경우 3,750달러, 배터리 부품 요구 수준을 충족시키는 경우 3,750달러를 지원하는데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7,500달러의 수혜가 가능하다.

먼저 차량에 장착되는 배터리의 광물(리튬, 망간, 니켈, 코발트, 흑연 등)은 미국 내 혹은 미국과 FTA 체결국가에서 추출 및 처리되거나 미국 내에서 재생해 조달한 비율(부가가치 기준)이 2023년 40% 이상, 2024년 50%, 2025년 60%, 2026년 70%, 2027년 이후 80%가 돼야 한다. 또한 북미에서 조립되거나 제조된 부품(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배터리 셀, 배터리 모듈 등)의 가치가 2023년 50%, 2024년, 2025년 60%, 2026년 70%, 2027년 80%, 2028년 90%, 2029년 100% 등이 되는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려외국 집단(a foreign entity of concern)에서 조달하는 배터리 핵심 광물(2025년부터)이나 부품(2024년부터)이 포함되는 경우는 지원에서 제외한다는 규정도 포함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규정은 전기차 생산뿐만 아니라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배터리 생산을 위한 광물 및 소재, 부품 등을 미국과 동맹국 중심으로 생산해 현재 세계 배터리 공급망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중국을 배제하고 전기차 관련 공급망 전반을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 자동차와 부품의 수출·생산에는 부정적
우리 자동차산업은 수출 의존도가 60% 내외로 매우 높다. 북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45%를 상회하고, 미국만 하더라도 40%에 육박한다. 결국 미국 및 북미시장에서 수출이 부진할 경우 자동차의 국내 생산 및 관련 부품 생산 등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자동차산업은 빠르게 친환경차로 전환하고 있다. 작년 친환경차의 국내 생산은 29만 대를 넘어 전체 자동차 생산의 8.5%에 달하고 전체 수출에서 친환경차(19만 대)의 비중은 9.5%에 달한다. 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내연기관을 상회하고 있다. 전기차 판매에서 미국 의존도 또한 점차 증가하고 있다. 현대·기아 자동차의 미국 시장 의존도는 지난해 9.6%에서 올해 1~7월 18.3%로 크게 늘었다. 올해 1~7월 미국 전기차 판매에서 현대·기아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4.8%) 보다 크게 상승한 9.1%로,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 다음으로 전기차를 많이 파는 업체가 됐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전기차 판매는 거의 한국 생산 및 수출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으로 현대·기아차의 판매 증가 추세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단기적으로 우리 자동차 수출 감소뿐만 아니라 국내 자동차업체의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대의 미국 전기차 생산 공장은 2025년에 가동할 예정이기에 남은 기간 동안 현대·기아차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2030년 전기차 판매 목표를 전체의 50%로 설정하고 2035년 대부분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수출 물량을 모두 현지 생산하는 경우 중장기적으로 국내 자동차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 생산 전기차에 대한 지원은 2032년까지로 미국 판매 전기차의 국내 생산 및 수출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기아차는 2030년 국내에서 144만 대의 전기차 생산을 계획했지만 미국 수출에 차질이 생길 경우 국내 생산량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물량의 50%가 전기차로 전환된다고 가정하면 30만 대의 자동차 수출 및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 GM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거의 미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에 장기적인 생산 여부가 더욱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올해 1~7월 친환경차 수출량은 총 30만 5,90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1% 늘었고,
수출액(87억 6,000만 달러)은 같은 기간 역대 최대 규모였다.
사진은 8월 29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와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는 모습ⓒ 연합

국내 자동차 생산 감소로 부품산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기차 관련 부품의 매출 감소뿐만 아니라 전기차에 들어가는 기존 자동차 부품업체의 매출도 감소하게 될 것이다. 배터리를 비롯한 전기차 관련 부품업체들도 국내 생산보다 미국 생산을 확대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뿐만 아니라 배터리, 각종 전기차 관련 부품 등의 국내 생산 감소가 예상된다. 한편 중국 중심의 배터리 관련 공급망이 재편됨에 따라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겨날 수도 있다. 배터리 공급망을 독점하고 있는 중국이나 중국 기업이 미국 배터리 광물, 소재, 배터리셀 등의 공급망에서 제외되면 우리 기업이나 우리나라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산업통상환경 변화에 따른 국익 극대화 방안 모색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이 우리 자동차 및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지만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 이에 따라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고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FTA 체결 국가에서 조립된 전기차는 보조금 대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요구된다. 지원 대상에서 우리 수출 전기차를 제외하는 것은 한미 FTA나 WTO 정신에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우리 기업이 가장 큰 피해를 입기는 하지만 독일, 일본 등 주요 자동차 생산 국가도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기에 공동 대응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기업의 단기적인 대응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보조금에 따른 여타 차량과의 가격 차이를 고려해 가격 조정을 하더라도 지속적인 판매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강화되는 미국의 연비 규제 조건 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전기차 판매는 중요하다. 미국 내 생산 공장의 가동을 앞당길 뿐만 아니라 기존생산 라인에서의 전기차 조립도 확대해야 한다. 미국 내 전기차 생산 확대로 인한 국내 생산 감소 등에 대응한 수출선 다변화, 내수 판매 확대 등과 같은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국내 생산 전기차 수출이 어려워진 한국 GM은 기업 존립을 위한 장기 발전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 대한 전기차 수출이 힘들다면 경쟁력 있는 차종을 생산해 미국 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기업은 시장 환경 변화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고 정부는 적절한 글로벌 재편 전략이 이뤄지도록 산업통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우리 기업의 발전을 통해 생산 외 다른 부가가치 창출 영역에서 역할(고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국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자동차와 부품의 연구개발 기지로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자동차와 부품기업은 연구개발 투자에 비해 성과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어서 연구 효율이 매우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저비용 고효율 구조) 구축을 통해 국내 제조 부문의 성장도 요구된다.

8월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관계자들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

세계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표방하는 상황에서 우리 친환경 자동차 지원 정책은 산업발전과 연계해 추진돼야 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을 통해 자국 생산을 강조하고 있고 중국은 각종 정책을 통해 자국 브랜드 육성을 표방(중국 기업 배터리 장착의 경우만 보조금 지급)해왔다. 우리는 친환경자동차 보조금, 공공기관 의무 구매 비율, 환경 친화적 자동차의 구매 목표 등의 정책에서 국내 차량뿐만 아니라 수입 자동차에도 똑같은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이 배제됨에 따라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중요 광물질 추출 및 처리와 관련된 기업의 육성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는 미국 수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기업의 배터리 생산을 위한 광물이나 소재의 국산화뿐만 아니라 수출 산업화도 가능하다. 독자적으로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 광산 소재지 국가, 주요 전기차 생산 국가와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동맹 등과 같은 국제 협력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조 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