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평화통일 기행
전쟁의 참화 속 희망을 꽃피운
대구로의 시간 여행
대구하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사과, 막창, 따로국밥, 납작만두 등 다양한 먹거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구는 맛있는 음식뿐 아니라 발전된 도심과 이를 둘러싼 팔공산, 비슬산, 낙동강, 금호강 등의 자연환경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 1천 석 이상의 공연장이 7곳이나 마련돼 있고 수많은 소극장이 포진해 오페라, 뮤지컬 등의 공연을 즐기는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세련된 모습 이면에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당시 어느 곳보다 치열하게 저항했던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민족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나라의 운명과 동고동락하며 성장한 대구의 본모습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낡고 녹슨 공구 골목이 힙스터의 성지가 되다 ‘대구 북성로’
‘북성 공구골목’이라 불리는 북성로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의 아픔을 오롯이 감내했던 공간이다. 1907년 대구 읍성을 허문 자리에 신작로를 만들고 일본인 상점들이 입점하면서 북성로의 역사가 시작됐다. 북쪽 성벽이 있었다 하여 북성로라 불린 이곳은 목욕탕, 양복점, 백화점 등이 세워져 6·25 전쟁 이후까지 문화거리로 사랑받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북성로 골목은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 풍경의 중심에는 공구골목이 있다. 광복 후 미군부대에서 사용하던 폐공구 수집상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공구골목으로 변신했다. 북성로는 일제 때의 적산가옥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80년 이상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건축물들은 인테리어 자체이다.
북성로의 쓸쓸한 풍경과 빈티지한 매력은 이곳을 힙스터들의 성지로 만들었다. 쓰러져 가던 적산가옥은 향긋한 커피를 내리는 카페로 변신했고 구상시인이 ‘초토의 시’를 발표했던 꽃자리 다방은 루프탑 카페로 새롭게 태어났다. 화가 이중섭이 은지화에 그림을 그렸던 백록 다방, 한잔의 막걸리로 나라 잃은 설움과 예술 세계를 논했던 막걸리 집이 즐비했던 곳들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1950년대 아날로그 감성 그대로 ‘향촌문화관’
북성로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대구 근현대사의 부침(浮沈)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향촌동이 나온다. 향촌동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희망의 언어로 문학과 예술혼을 꽃피운 중심지였다. 1951년 향촌동에 문을 연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는 외신에 의해 ‘전쟁의 폐허 위에 바흐의 선율이 흐르는 곳’으로 소개된 곳이다.
향촌동에 자리 잡은 향촌문화관은 50년대로 가는 타임머신이다. 이곳에서는 그 공간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한다. 1층과 2층에는 대구 중앙로, 북성로 공구골목, 대구역, 교동시장 등 대구 구도심의 1950년대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전쟁의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는 추억의 장소가 되고 젊은이들에게는 신선함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2014년에 개관해 1년 만에 1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3층과 4층은 대구 문학관이다. 근대문학이 태동하던 192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 문학의 흐름과 발전상을 시대 순으로 감상할 수 있다. 1941년 발간된 ‘현진건 단편선’도, 1951년 백기만 시인이 편찬한 ‘상화와 고월’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온다. 지하 1층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북성로의 음악 감상실 ‘녹향’을 재현해놓았다. 쇼파에 앉아 LP판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아날로그 감성을 느껴볼 수 있다.
향촌문화관 전시실 내 1950년대 막걸리집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공간
향촌문화관 전시실 내 당시 작가들의 어록을 골목에 전시한 ‘작가와의 동행’
6·25 전쟁 최후의 방어선 ‘낙동강 전투’를 기리다
6·25 전쟁 당시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향촌문화관이라면, 낙동강승전기념관은 전쟁의 시작과 끝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6·25 전쟁 당시 대구는 최후의 방어선이자 임시 수도였다. 낙동강 전선이 지켜진 덕분에 전국 각지의 피란민들은 대구로 몰려들었다.
낙동강 승전을 기념하고 호국,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관한 낙동강승전기념관은 대구의 진산인 앞산에 위치하고 있다. 단풍 명소로 유명한 앞산에 위치해 있어 가족들과 나들이 오기 좋은 ‘가을 핫플’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실내전시실의 1층에서는 낙동강 전투, 학도병 이야기, 6·25 전쟁관 등이 마련돼 있다. 2층 전시실은 총기와 의복 등의 유물과 전사자의 이름을 새겨놓은 추모관과 분단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통일관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2020년 5월 전면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한 3층 전시실은 전쟁의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가상현실(VR) 체험장으로 조성했다.
야외로 나가보면 기념관을 둘러싼 대규모 야외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북한군의 T-34 전차에 대항해 활약한 M4A3 전차와 SABRE 전투기 등 군사장비들도 전시돼 있어 방문객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저녁에 오면 수려한 앞산 전경과 함께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대구 앞산에 자리한 낙동강승전기념관의 전경
ⓒ대구관광안내
총기, 의복 등을 전시해놓은 낙동강승전기념관 추모관 내부 모습
ⓒ대구관광안내
피란민의 삶을 그대로 재현한‘마당 깊은 집’
굴곡진 현대사의 아픔을 담은 문학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바로 대구 약전 골목에 자리한 문학 체험 전시공간 ‘마당 깊은 집’ 문학관이다. 이곳은 분단 상황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을 입체적으로 재현해놓은 곳이다. 소설 『마당 깊은 집』은 6·25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부터 1년 동안 대구 장관동에 살았던 소설가 자신의 자전적 체험담을 담았다. 소설에서는 13세 주인공 길남이가 고향 진영에서 대구로 올라와 ‘마당 깊은 집’에 세 들어 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냈다. 특히 당시 대구 피란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히 묘사해 문단의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1990년 소설 원작의 8부작 드라마로 제작돼 큰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마당 깊은 집』 작품을 먼저 접하고 2019년 개관한 문학관을 찾는다면 마치 소설 안에 들어온 것 같은 생생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학관을 둘러보면 1950년대 썼을 법한 펌프와 물지게가 마당 한 편에 자리해있다. 길남이네 방에는 길남이 어머니가 재봉틀로 직접 만든 한복과 셋방살이에 필요한 침구류와 식기류 등이 아담한 한옥 지붕 아래 오밀조밀 꾸며져 있다. 나들이 떠나기 좋은 가을 ‘마당 깊은 집’에서 1950년대 대구 피란민의 삶과 애환을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역사란 시간과 공간의 틈새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을 모아놓은 보물창고다’라는 말이 있다. 대구하면 떠오르는 음식에도 대구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담긴 역사가 담겨있다. 6·25 전쟁 때 피란민들의 눈물과 애환이 담긴 따로국밥이 있고, IMF를 이겨내게 해준 막창이 있다. 섬유 공단 노동자들의 술친구가 되어 주던 대구의 다양한 안줏거리도 시대정신과 무관치 않다. 어디 음식뿐이랴. 앞서 소개한 곳 외에도 경상감영공원, 국립신암선열공원 등 곳곳이 살아있는 보물창고다. 대구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보물을 찾아 평화와 통일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대구 피란민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문학 체험 공간 ‘마당 깊은 집’ ⓒ대구관광안내
‘마당 깊은 집’ 안에 재현해 놓은
당시 물 펌프와 가재도구들 ⓒ대구관광안내
Information
향촌문화관: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449
•관람시간: 10시~17시(월요일 휴무)
•관람료: 1,000원(경로, 청소년, 단체 50%할인)
낙동강승전기념관: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574-110
•관람시간: 10시~17시(연중무휴)
•관람료: 무료
마당 깊은 집 문학관: 대구광역시 중구 약령길 33-10
•운영시간: 9시~19시(월요일 휴무)
•관람료: 무료
김 정 자
문화관광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