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22022.10.

평화통일 창

신뢰받지 못하는
북한의 은행과 금융

은행은 고객이 언제든지 돈을 맡기고 찾을 수 있는 신뢰도가 높은 곳이라야 한다. 그렇지만 북한의 은행과 금융제도는 조금 다른 모양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북한의 은행은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 돈 돌려받을 수 있을까?
지난 2006년 제정된 북한의 『상업은행법』은 2015년 전환점을 맞이했다. 전환의 기본 방향은 기업소 자체자금, 기업소 적립 감가상각금, 주민 유휴 화폐자금 등을 화폐 순환 구조에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상업은행법』을 도입했음에도 실제 그 기능과 운영 방안이 미비한 데다 조선중앙은행의 강력한 통제와 관리·감독을 받고 있어 유명무실한 상태다.

특이한 점은 북한 주민들이 여유자금을 은행에 맡길 수는 있으나 본인이 필요한 때에 예금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북한에서는 고객이 출금을 요청한 지 몇 개월이 지나도 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북한 경제의 어려운 상황이 반영된 탓이다. 또한 예금을 많이 저축할 경우 어떤 경로로 벌어들인 돈인지 북한 당국의 조사를 받기 때문에 주민들이 은행 거래를 꺼리는 실정이다.

북한 당국은 극심한 경제난이 재정난으로 이어지자 추가적인 화폐 발행을 통해 자금 확충을 추진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국경봉쇄로 화폐 용지를 비롯한 특수인쇄 잉크 수입이 불가능해졌고, 지난해 8월과 9월 사이 일시적으로 액면가 5,000원에 해당하는 현금보관증인 ‘중앙은행 돈표’를 발행해 유통시켰다. 올 초에는 고액권인 5만 원권 돈표까지 발행해 유통 중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돈표를 가리켜 “돈표의 질이 실제 돈보다 못하고 나중에 현금으로 바꿔주지 않을 수 있다”며 받지 않거나 액면가보다 할인해서 계산하는 등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또 돈표를 발행한 근거로 생활비 인상을 위해 발행했다거나 화폐교환을 위해 발행했다는 유언비어까지 퍼지면서 북한 당국에서 발행한 돈표에 대한 불신과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북한 5만 원권 돈표 앞면(위)과 뒷면(아래)
어디까지 감시할까? 북한의 보험과 카드
어려운 경제 상황은 보험 상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보험 상품 중 ‘부양자 보험’은 우리의 생명보험과 같이 피보험자가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해당 보험의 가입금은 10만 원부터 50만 원까지 가입 대상자 나이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보험료율은 1~10%, 보험료는 연령에 따라 5,000원에서 5만 원(연 1회) 가량이다.

과거에는 군인, 법적 제재를 받는 자, 불치의 병(각종 암, 뇌출혈, 뇌 혈전, 간 복수)을 앓고 있는 사람, 65세 이상 노인, 여성 등은 가입이 불가능하고 직장인만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1년부터 노인과 여성도 가입할 수 있도록 조건을 변경한 데 이어 주민들에게 부양자 보험의 장점을 선전하면서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해외에서 자금이 유입되지 못하고 내수경제도 어려워짐에 따라 주민들의 호주머니 돈마저 거둬들이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2015년 『상업은행법』 개정 당시 상업은행의 업무에 ‘은행카드 업무’를 추가했다. 카드 사용량이 늘어나면 주민들이 보관하고 있는 현금을 공적인 화폐·금융 시스템을 활용해 흡수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다만 우리와 같은 신용카드 형태가 아닌 충전식 카드이기 때문에 외국화폐나 북한 원화를 충전해 사용해야만 했다. 은행카드는 주민들이나 돈주가 가지고 있는 외화를 일부 흡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일정 금액 이상 충전 시 북한 당국에서 돈 의 유입 출처를 조사하는 경우가 있어 주민들이 충전카드 사용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자 북한 당국은 미화 5,000달러 정도로 조사 기준을 완화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반적인 상거래조차도 감시와 통제를 받는 것이 오늘날 북한 금융거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2016년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지원 반대법』을 신설했다. 법안의 목적에 대해서는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 지원방지 조치를 강화하고 금융정보기관과 감독통제기관의 역할을 높임으로써 국가의 금융제도와 사회의 안정, 경제발전을 보장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이라 밝혔다. 그러나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지원 반대법』은 사실 내부적으로 북한 주민의 금융거래를 통제하고, 외부적으로 외국기업을 유치해 자본주의 국가들의 금융제도를 도입하려는 두 가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극도로 통제된 사회임에도 외국자본 유치와 주민 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와 상업금융 시스템 도입의 필요성을 그 어느 국가보다 뼈저리게 경험하며 혹독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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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희 철 동화연구소 소장, 前 북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