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한반도
남과 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월경성 철새
‘하늘엔 철조망이 없다’
남북 습지·철새 환경 협력
환경 분야 중장기 법정계획인 ‘국가환경종합계획’을 검토하다 보면 DMZ 중심의 남북협력 실천과제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는 DMZ 일원의 황폐산림 복원, 철새, 습지를 중심으로 계획된 남북협력사업들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가? 작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제기된 다양한 이슈 중 생태환경 보호 및 관리체계 구축 분야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생태환경 분야는 2019년 12월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8개 결정사항 중 세 번째로 이름이 올려져 있기도 하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출범 후 5개의 국제기구 및 협약에 가입했는데 그중 3개가 환경기구다. 우리가 잘 아는 ‘람사르협약’과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 역시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이 크다는 얘기다.
매년 진행되는 평화통일인식 조사에서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북한을 우리와 전혀 다른 이질적인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결과는 필자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그렇게 DMZ의 철조망은 사람들 마음도 닫히게 했다. 그러나 철조망을 바라보던 시선을 서해와 한강하구의 하늘로 돌려보자. 하늘을 날아 남북을 왕래하는 철새와 이들의 서식지인 습지, 그곳엔 철조망이 없다.
습지·철새 환경 협력의 최적지, 서해와 한강하구
2018년 북한은 주요습지보호구 14곳과 주요습지 54곳의 목록이 수록된 「습지목록」을 발간했다. 「습지목록」을 보면 DMZ 내 주요습지보호구는 한 곳도 없다. 강원도 철원과 고성지역에 주요습지 3곳만 지정돼 있을 뿐이다. 주요습지가 가장 많은 곳은 람사르습지인 문덕철새(습지)보호구가 있는 서해연안으로 모두 31곳(57.4%)에 달한다. 특히 서해지역 31곳 중 15곳이 서해 접경수역과 한강하구로 접한 남포시와 황해남도 연안에 몰려있다. 나머지는 내륙과 동해 연안에 있다.
북한 국가과학원 생물다양성연구소는 북한 전역의 습지를 조사해 멸종위기 철새 현황을 발표한다. 작년 10월에는 5곳의 중점습지보호지역을 지정했다. 5곳 중 3곳이 서해 연안이고, 이 중 2곳이 남포시와 황해남도 연안 지역이다. 남포시와 황해남도를 포함한 서해 연안 전 지역이 중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서해 연안 습지를 잠재적 람사르습지로 관리하고 있다. 그만큼 서해 연안은 북한도 주목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다. 이곳에는 매년 멸종 위기종을 포함해 수만 마리의 철새가 날아온다. 서해 접경수역과 한강하구 우리 지역에도 송도 갯벌, 장항 습지, 한강하구 습지 등 람사르습지와 습지보호지역이 있다. 범위를 넓혀보면 지난 5월 충청남도 서천 등 3곳이 ‘람사르습지도시’로 지정됐다. 서해5도에는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 노랑부리 백로를 비롯해 약 30여 종의 멸종위기 조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랑부리백로 ⓒ국립생물자원관
그렇다면 남과 북의 습지에 철새들이 따로따로 서식할까? 우문(愚問)이다.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는 남북을 오가는 대표적인 월경성 멸종위기 철새다. 이외에도 흰죽지수리, 황새, 개리, 알락꼬리마도요 등 여러 종의 멸종위기 철새들도 남북을 오가며 서식한다. 그러나 아직 남북은 철새 이동 공동조사도 못하고 있다. 월경성 철새의 구체적 개체 수와 서식 환경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습지목록」으로 눈을 돌려보자. 여기엔 습지별로 서식하는 동식물, 특히 멸종위기 철새의 관찰현황이 정리돼 있다. 대표적인 월경성 철새인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개리를 비롯해 많은 멸종위기 철새의 관찰지역이 기록돼 있다. 저어새, 노랑부리백로는 강화군 한강하구와 연평도에서 마주하는 예성강, 임진강, 황해남도 연안 그리고 저 멀리 남포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새는 서해와 한강하구의 하늘을 날아 남북을 오간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이들 철새가 어디로 향하는지 위치 추적기를 통해 추정만 할 뿐이다. 철조망을 가로질러 남북을 왕래하는 철새와 습지를 매개로 단절된 남북 생태환경 교류가 필요한 이유이다.
서해 평화자산의 국제화와 남북협력 모멘텀 마련
DMZ에서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따른다. DMZ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는 공동 활용을 위한 새로운 남북합의도 필요하지만 유엔사의 동의라는 산도 넘어야만 한다. 그러나 한강하구와 서해 접경수역은 DMZ와 성격이 다르다. 정전협정 제5항은 한강하구를 남북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중립수역으로 규정한다. 서해 접경수역은 남북정상이 평화지역으로 만들기로 합의한 곳이다. 서해와 한강하구는 남북 월경성 철새와 이들의 서식지인 습지를 매개로 남북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서해와 한강하구의 습지 및 철새 자원 등을 활용해 남북협력을 도모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북한의 호응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서해와 한강하구의 습지 및 철새 자원을 국제사회가 참여하는 다자 플랫폼을 통해 국제적 평화의제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는 녹색기후기금(GCF),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UNESCAP),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 등 15개의 국제기구가 입주해 있다. 동아시아람사르지역센터(RRC-EA)나 한스자이델재단(HSS)과 같은 국제 민간 기구에서는 북한이 참여하는 다양한 생태환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저어새 ⓒ국립생물자원관
생태환경 분야는 국제사회에서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주요 이슈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으로서 협약의 이행을 위해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북한 역시 작년 7월 자발적 국가검토 보고서(VNR)를 통해 생물다양성 유지를 위한 국제협력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서해 연안의 습지생태계는 이미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 북한은 식량난 타개를 위한 ‘새땅찾기’의 일환으로 서해 연안 일대에 대규모 간척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습지와 갯벌이 축소되고생물 다양성 감소도 예상된다. 생태환경 분야는 남과 북에 국한된 어젠다가 아니다. 국제적인 어젠다이다. 서해와 한강하구는 생태환경적 가치가 매우 큰 남북생태환경 협력의 최적지이다. 국제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서해와 한강하구 철새와 습지 국제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고 남북협력의 모멘텀을 마련하자. 언젠가 남북이 세계 철새의 날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는 날을 기대한다.
남 근 우
인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