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922022.10.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 총회에서는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6일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논의한 유엔 안보리 회의 현장 ⓒUN

진단

국제사회 인권외교와 북한인권 접근법

남북 간 인적 왕래로
정책 패러다임 전환해야

북한 주민의 실질적인 인권 개선을 위한 남북관계 차원의 바람직한 접근법을 제안한다.

북한인권은 북한 내부의 인권 문제와 함께 해외로 탈출한 재외 탈북자와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그리고 인도적 사안까지 포함된다. 북한인권 문제는 인류 보편적 관점과 국제사회와의 공조, 그리고 한국의 당사자 입장을 확고히 하고 통일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이후 북한인권 개선 활동은 국내외 NGO와 미국, 캐나다, 일본, 그리고 유럽지역 국가와 유럽연합(EU)이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나, 국제사회의 중심적 역할은 유엔이 수행하고 있다. 유엔 인권 이사회의 전신인 유엔 인권위원회는 2003년 최초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 북한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의 이슈로 공식화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3년부 터 올해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유엔 총회에서도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 활동도 유엔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국제사회, 시민사회와의 유기적인 협력 필요
정부의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은 집권당과 시기별로 차이를 보여왔다. 한국은 2008년부터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해왔지만 2019년부터 공동 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인권의 보편성과 비정치화 원칙을 포기하고 북한인권 문제를 스스로 정치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정부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적극적 제기나 공세적 입장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표출해왔다.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분위기 조성을 우선해 인권 문제에는 소극적, 제한적 입장을 보인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인권 문제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정부는 선거과정과 국정과제를 통해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찬성 및 공동 제안국 참여, 북한인권 NGO 활동 지원, 북한인권재단 설립, 국제사회와의 협력 강화 및 북한인권 대사 임명 등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신화 교수를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로 임명하고 2016년 북한 인권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운영되지 않고 있는 북한 인권재단 설립을 촉구하기 위해 통일부 장관 추천 몫의 재단 이사 2명을 공개 추천했다. 또한 2019년 이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 명단에서 사라진 한국을 올해부터 다시 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인권 NGO와의 협력과 지원에 대해서는 미진한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차년도 사업과 예산논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 그리고 국내외 NGO들의 노력만으로 북한인권을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북한 당국은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 요구에 내정간섭과 부당한 요구라고 주장하며 회피와 무시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대북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수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도 장애인과 같은 특별 주제의 인권 문제와 유엔의 보편적 정례 검토(UPR) 등 북한 당국이 협조적 입장을 갖는 분야나 절차에 대해서는 제한적이지만 수용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인권 개선의 실질적 효과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가 협력해 북한 당국의 인권 개선 의지를 제고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북한인권 문제의 완전한 해결 방법은 통일 외에 대안을 찾기 어렵다. 북한인권 문제의 가장 합리적 해법은 북한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힘으로 해결하거나, 김정은 위원장의 정책적 결정으로도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히 북한인권 문제에서 북한 당국은 ‘가해자이면서 해결의 주체’이기에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권 문제 해결의 주체는 일반적으로 정부와 피해자 집단뿐 아니라 양심적인 지식인 집단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북한인권 문제 해결의 주체 세력은 유엔과 각국 정부, 시민사회만이 아니라 북한 주민과 인권 피해자가 포함돼야 한다. 북한 주민의 인권과 시민의식이 강화될수록 북한 내 인권 침해 문제는 합리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미국과 EU, 일본 등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압력을 가해 북한인권을 개선하는 방안은 차선책은 될 수 있지만 최선의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최근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 중심의 방법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무관심과 소극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주도적인 관심과 개선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북한인권 개선은 외부 세력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9월 2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방안
무엇보다 남북 분단 극복, 남북 주민의 이산 상태 해소, 그리고 북한주민의 실질적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남북관계와 북한인권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1990년 이전 냉전체제에서의 남북관계는 ‘단절된 경쟁의 시대’였고 이후 ‘제한적 접촉과 교류의 시대’로 전환됐으나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교류와 왕래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동서독과 중국·대만관계의 발전은 주민 상호 간의 왕래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정책을 통해 성취됐다. 남북 교류협력과 사회 통합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물적 지원 중심에서 인적 왕래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

남북한 인적 왕래 중심의 정책 추진은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상황에서도 실행이 가능하다. 한반도에는 천만여 명의 이산가족과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가족 재결합권은 인권의 핵심적 사안이기 때문에 인적 왕래 확대는 매우 시급한 사안이다. 남북한은 6·25 전쟁 전후 발생한 이산가족 외에도 비전향 장기수, 억류 국군포로, 납북자, 재입북 희망 탈북자, 북한 억류 남한 주민 등 남(북)한에 살고 있으나, 북(남)한 이주를 희망하는 대상자가 존재한다. 현재까지 남북한 법률은 이와 같은 인권과 인도주의 사안을 획기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며 개별 사안별 해법은 한계를 갖고 있다. 위의 각 대상과 사안들을 일괄적으로 해결하고 북한인권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인적 왕래 확대가 필요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유왕래 선언과 실천이 필요하다.

향후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과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서는 자유왕래만이 아니라 거주이전이 허용돼야 한다. 자유왕래는 남북한이 상호 행사 참여, 투자, 업무 협의, 관광, 가족 상봉 등을 위해 임시적, 일회성 차원의 상호방문을 허용한다는 의미다. 남북한 거주 이전의 자유 확대 적용은 사업, 학업 등을 위한 장기 거주와 가족 재결합 등을 위한 반영구적 거주 이전을 포함하는 것이다. 남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유왕래를 포함한 거주이전의 자유가 한반도 전체에 확대 적용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헌법의 국민 기본권 조항에 근거해 남북 주민의 거주이전 자유가 한반도 전체에 적용된다는 것을 선제적으로 발표할 필요가 있다. 북송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와 탈북자는 거주이전의 자유보장 차원에서 북송 절차를 북한 당국과 협상할 수 있고, 현재 한국 정부에서 명단을 확인한 억류 한국인, 전쟁 전후 납북자, 국군포로, 귀환 희망 이산가족 문제를 북측과 협상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자유왕래는 본질적으로 인도주의 사안이며 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유엔과 국제사회의 호응 가능성이 높다.

향후 대북제재 해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유엔 인권메커니즘을 통해서 북한 당국을 설득하고 지원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 정부는 북한당국이 수용 가능한 수준에서 북한인권 개선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면서도 북한이 스스로 인권 개선 의지를 갖도록 인도적 지원과 남북 경제교류협력을 이어나가야 한다. 북한인권 개선은 피해자 보호와 지원이라는 피해자 우선 원칙하에 국제사회, 한국 정부, 민간단체의 유기적 협업을 통해 북한 당국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면 점진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장애인과 같은 특별 주제의 인권 문제 등 북한 당국이 협조적 입장을 갖는 분야나 절차에 대해서는 제한적이지만 수용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2017년 카타리나 데반다스 아길라 유엔 장애인 인권 특별보고관이 처음으로 평양에 방문한 모습© 연합
윤 여 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